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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3 18:45 수정 : 2006.02.13 18:45

왜냐면

국민들은 사교육 없이 학교 공부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아니 대학에 가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병술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온통 ‘사회 양극화 해소’다. 가장 시류에 민감한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언론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양극화 해소, 비법은 없는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에서 올해를 ‘교육격차 해소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2006년 주요 업무계획을 내놓았다.

교육부 처방전의 내용을 핵심만 요약해서 옮겨 쓰면 “향후 5년 동안 총 8조원을 투입해 저소득층, 낙후지역, 소외계층의 교육격차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1군 1우수고’ 점진적 확대, ‘방과후학교’ 전면 시행, 그리고 저소득층 자녀의 수강료를 지원하기 위한 바우처 제도 2007년 도입 등을 제시하고 있다.

언뜻 보면 금방이라도 교육복지가 실현될 것처럼 눈이 부시다.(눈이 부셔야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교육격차 해소 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를 찬찬히 살펴보라. 완곡어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부는 결국 학교는 민영화하고 교육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웅변하고 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첫째, 5년간 고작 8조원의 돈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고 선언한 것 자체가 ‘5·31 표심’을 의식한 입에 발린 말이다. 너그러움을 한껏 발휘해서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교육격차 해소에 도움이 된다손 치자.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2005년 기준으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 개악으로 16개 시·도 교육청이 떠안은 빚만 3조원이 넘는다. 대통령의 ‘지디피 대비 교육재정 6%’ 공약은 이미 공수표임이 판명 나, 지난해 4.19%까지 곤두박질쳤다. 현재로선 이런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전혀 없다. 도대체 무슨 재원으로 5년간 8조원을 쏟아붓는단 말인가.

둘째, ‘시혜 베풀기’식 교육정책으로는 사회 양극화 해소는 물론, 교육격차 줄이기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깟 학원 수강료 몇 푼 지원해 준다고 저소득층 가정이 부유층의 고품질 사교육을 흉내 낼 수조차 있는가.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사업도 마찬가지다. ‘공교육 재정 획기적 감축’이란 비난을 면하기 위해 전국 30곳에 시혜 베풀듯이 겨우 몇백억 지원하는 것은 생색내기의 전형이다.

셋째, 정부는 학교 시장화 정책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정부는 지금 국민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 있다. 교육부가 아닌 기획예산처에서 ‘고교 진학 선택제’ 도입 방침을 발표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는가. 보통교육에서 학교 선택권을 부여한 영국의 자율학교는 학생 골라뽑기, 계층간 불평등 심화 등의 부작용 때문에 노동당 집권 이듬해인 1998년에 제도 폐지를 선언한 바 있다. 현재 정부가 ‘방과후학교’ 등에 도입하려고 하는 바우처시스템이 1964년에 이미 미국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사실을 아는가?

시골 군 단위에 우수고(입시명문고)를 만들어 지원하면, 순창 옥천인재숙처럼 관립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인재유출을 방지하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학교에 못 들어간 나머지 보통 아이들의 멍든 가슴은 어찌 치유하는가. 교육부는 지금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국민들은 사교육 없이 학교공부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아니 대학에 가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공교육 재정의 획기적 확충과 학력에 따른 서열화 구조 철폐 없이 교육복지는 한낱 허상일 뿐이다.


신정섭/전교조대전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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