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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3 18:40 수정 : 2006.02.13 18:40

왜냐면

합의사항 파기에 항의하는 노조 간부들이 대부분 구속돼 재판을 받는데, 합의을 우롱하며 부당노동행위하는 사용자들은 왜 형사처벌하지 않는가?

2003년 6월, 5일 동안 전산망 마비 직전까지 들어갔던 조흥은행의 파업사태는 노·사·정의 합의로 새벽에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합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경제부총리가 진두지휘하여 타결된 이 합의는 정부가 그 이행을 보증한 셈이었다. 당시 조흥노조의 파업 쟁점은 통합과정의 인적 구조조정 등 근로조건에 관한 것과 국내 최초 은행으로서의 조흥은행의 독자 생존 주장이었다. 국가적 관심사였고 공적기관인 은행에 관련된 노사정 합의는 새로운 합의 모델로, 정부가 이행을 보증한 일종의 사회적 협약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흔히 사회적 협약의 원조로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을 든다.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정부는 제도적 지원을 함과 동시에 노사간의 타협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네덜란드 경제를 구하였고, 이것은 그 이후 대립적 노사관계를 해결하는 새로운 본보기가 되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노사간 심각한 대립을 거쳐 얻은 노사정 합의를 파업이 종료된 이후에는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

신한금융지주회사는 2003년 9월 조흥은행을 자회사로 편입시킨 뒤 2005년 2월부터 본격적인 통합 작업을 추진하였다. 명예퇴직이란 명목으로 482명을 사실상 강제퇴직시켰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노조 지부장과 간부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지부장은 현재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통합은행의 명칭을 조흥은행이 아닌 신한은행으로 정했고, 직급조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 노사정 합의에 반하는 것이다. 신한금융지주는 기업가치를 지키기 위해 합의 내용을 지킬 수 없다고 한다. 아예 명시적으로 합의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은 통합은행의 명칭 결정은 주주총회나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데, 노사정 합의 당시 이 점에 관하여 주주총회나 이사회의 결의가 없었으므로 노사정 합의의 효력을 강제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결국 합의 당사자들이 권한없이 합의서에 서명하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당시 사건의 성격이나 중요성으로 보아, 위에서 합의된 내용은 사전에 회사 내부적인 결의를 거쳤다든가 사후에 그 내용을 추인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구나 합의 당사자인 예금보험공사는 조흥은행 주식의 80.04%를 보유한 대주주였다. 나이가 합의 과정을 볼 때도 신한금융지주나 조흥은행으로서는 합의서를 이행할 신의칙상의 의무가 있음이 명백하다. 신한금융지주나 신한은행은 위 합의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합의 내용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조흥은행을 인수·합병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지주나 조흥은행은 합의서 이행 거부에서 더 나아가, 합의서 이행을 요구하는 여하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쟁의행의에 지배·개입하는 부당 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쟁의기간 중임에도 집회나 쟁의복 착용조차 못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노동조합의 지침에 동조하는 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해 왔고, 중간 간부들을 통하여 노조 활동이나 그 참여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 한 복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행위는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합의사항 파기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노조 간부들이 대부분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데, 합의 사항을 우롱하며 부당 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사용자들에 대하여는 왜 아무런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 것인가?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노사정 합의가 이처럼 휴짓조각으로 취급되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최근 현대 하이스코 사건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본다. 급할 때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합의 형식으로 파업을 종료시키지만, 파업이 끝난 뒤에는 사용자가 태도를 돌변하여 합의의 취지를 뒤집는 것이다. 파업을 원만히 타결하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노사정 또는 노사간의 합의로 파업이 종료되었다면 그 합의는 끝까지 존중되고 지켜져야 할 것이다. 어렵게 얻어낸 합의가 손바닥 뒤집듯 번복된다면 어떻게 대화를 통한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경우/법무법인 한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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