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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5 17:14 수정 : 2005.01.05 17:14

철도에는 88명의 해고자가 있다. 철도 정책의 미비점을 파헤치고 개선하라며 저항했다는 게 해고 이유다. 새로 출범한 한국철도공사가 지난 어둠을 뚫고 미래로 가는 희망의 철도가 되기 위해서도 해고자 복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2005년 1월1일 한국철도공사가 출범했다. 철도공사가 출범하면서 내건 구호는 ‘친근한 벗, 미래로 가는 희망의 철도’다. 철도청은 전국 주요 역에서 행사를 열고 철도공사 출범을 자축했다. 그러나 철도공사가 쏘아 올린 축포의 이면에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철도에는 88명의 해고자가 있다. 해고 사유도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엉뚱(?)하다. 어떤 이는 ‘8시간 노동제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다가 해고됐고, 또 어떤 이는 ‘열차 탈선 위험을 언론에 알렸다’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했다. 6명의 해고자가 발생한 1999년엔 ‘노조위원장을 조합원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해고의 사유가 되기도 했다.

철도 해고자는 정부의 철도 구조개혁이 본격화된 2002년이 되면서 큰 폭으로 증가한다.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을 위해 노사가 노력한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3조2교대로 바꾼다’는 합의를 얻은 대가로 19명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철도 민영화 방침을 철회하고 철도 개혁은 충분한 합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합의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61명이 해고됐다. 따지고 보면 철도 안 민주적 요소를 키우고, 철도 정책의 미비점을 파헤치고 개선하라며 저항했다는 게 88명이 해고되어야 할 이유의 전부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철도청은 공사 출범을 앞두고 진행된 2004년 철도노사의 특별단체교섭에서도 해고자 복직만은 철저히 외면했다. ‘88명 중 5명만 신규채용으로 복직한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운 안의 전부였다. 결국 철도 해고자들은 연말을 앞두고 서울역 대합실 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 해고자들은 새벽 6시면 기상하여 주변을 정리하고 농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밤 12시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울역 대합실에서 취침에 들어간다.

‘텅 빈 대합실.’ 그러나 그 텅 빈 대합실만큼이나 해고자들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왜, 해고됐냐?”는 자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처럼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다만 “열차의 안전이 소중했고 철도 사기업화만은 막아야 하며 모든 국민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운영체계를 바꾸고 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때에 따라선 저항을 했을 뿐이었다. 이런 요구가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쫓겨나야 할 정도의 중죄(?)에 해당하는지 철도 해고자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공사 출범 이후 유아 무임승차 연령이 6살에서 3살로 낮춰지고 노인 할인이 주중으로 대폭 축소되는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요금정책이 실종되는 현실에서 철도 해고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한국철도공사의 출범은 100년이 넘는 철도 역사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또한 정권교체 때마다 되풀이되었던 철도 구조개혁이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철도의 공공성과 열차의 안전만은 결코 변해선 안 된다. ‘아차!’ 하는 순간, 2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숱한 논란과 시행착오를 겪은 갈등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 역시 해결하고 넘어가는 게 순리일 것이다. 특히, 구조개혁 과정에서 희생당한 철도 해고자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복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한국철도공사가 지난날의 어둠을 뚫고 미래로 가는 희망의 철도가 되기 위해서라도 해고자 복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백남희/전국철도노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선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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