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9 18:35
수정 : 2006.02.09 18:35
왜냐면
지역 사회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자체의 예산 편성과 집행을 감시하기는커녕 선심성 예산 배정을 요구하거나, 걸핏하면 의원 연수를 명분으로 외국관광에 주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올해부터 지방의원에게도 연봉 기준의 보수를 지급하는 유급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주장을 보면 지방의원의 전문성과 자질 향상을 위해 도입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각종 예산 낭비나 공직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현행처럼 무보수 명예직으로 활동하는 것에 비해 월급을 받고 활동을 하면 책임감과 전문성을 발휘하여 의정활동을 잘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 제도가 정부의 주장처럼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효과를 낳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첫째, 현재 지방의원에게 지급되는 연간 보수액은 전국 평균 950억원 정도인데, 유급제를 도입하면 의원 1인당 기초의원은 6천만원, 광역의원은 7천만원의 연봉을 받게 되어 전국적으로 최하 600억원에서 최고 2천억원의 추가 재정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추가 재정은 지방자치단체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과반수의 찬성으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오로지 지자체의 몫이다.
하지만 “전국 250개의 지자체 중 84%(211곳)는 재정 자립도가 50% 미만이고, 16%(41곳)는 자체 수입으로 의원 인건비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지방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 배가 채워져도 남의 배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지방의원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의원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상대적 소외를 해소하려고 의원 보수를 증액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혈세로 충당하는 길밖에 없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지방자치인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역개발과 주민복지 예산을 희생해서라도 의원 봉급만은 챙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주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땀을 흘려서 의원 봉급까지 마련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둘째, 현행 무보수 명예직에 비해 고소득의 월급을 준다고 의원들의 전문성과 자질이 향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도 지방의원은 의정활동비, 여비, 회기수당 등 연간 3천만원 안팎의 보수를 받고 있다. 전문성과 자질 향상은 고소득의 월급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의원들의 도덕성과 철학의 부재 현상이 더 큰 문제다. 국회의원의 세비를 인상했지만 그들이 어디 국민의 목소리를 올곧게 대변하고 있던가? 정쟁으로 국회를 공전시키며 구태를 반복할 뿐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말이다.
전문성과 자질 향상은 지방의원의 사회 봉사직적 성격을 강화하고 의원 출마 요건을 완화하는 데서 찾아야 옳다. 주민소환제나 의원 불신임 제도를 도입한다거나, 돈이 없어도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고 지역사회의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출마할 수 있는 완화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조처 아니겠는가. 지금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유전이면 지방의원이고 무전이면 붓두껍 신세”라는 냉소가 신화화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셋째, 지자체의 예산 낭비와 공직자의 각종 부정비리를 막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실을 직시하면 오히려 지방의원이 앞장서서 예산 낭비를 부추기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지역 사회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자체의 예산 편성과 집행을 감시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선심성 예산 배정을 요구하거나, 걸핏하면 의원 연수를 명분으로 외국관광에 주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건설사업이나 인허가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지자체에 압력을 넣거나 도덕적 추태와 같은 부정비리 사건들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지방의원들에게 고소득의 월급을 주어야 한다면 이는 그동안 지방의원들의 청렴성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의원들의 청렴성과 도덕성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방의원직은 그 성격상 개인의 정치적 출세를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주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회 봉사직이다. 지방자치제 도입 당시부터 무보수 명예직을 전제로 출발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과 지자체도 일정액의 활동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급제 도입은 주민 불신과 지역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며 지방자치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정당성 없는 정책일 뿐이다.
박명섭/전남 곡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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