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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2 18:47 수정 : 2019.10.23 02:10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도쿄 지요다구 왕궁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즉위 선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마사코 왕비가 서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 기원”
아키히토 상왕 모델 견지 의지

아베 “자긍심이 있는 일본의 미래”
보수적 색채 선명히 드러내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도쿄 지요다구 왕궁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즉위 선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마사코 왕비가 서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비가 흩뿌리는 22일 오후 1시12분께 일본 도쿄 지요다구 왕궁 안의 일왕 접견실인 ‘마쓰노마’(소나무의 방)에 설치된 ‘다카미쿠라’(대좌)의 보라색 장막이 걷혔다. 장막이 걷히자 황색 옷을 입은 나루히토 일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카미쿠라’는 즉위식 등 중요 행사 때 사용하는 구조물로, 전체 높이가 6.5m에 이르러 일왕의 모습을 장엄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루히토 일왕은 선 채로 시종이 건네준 종이에 적힌 즉위 선언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지난 5월1일 즉위를 시작으로 계속된 나루히토의 즉위 관련 의식은 이날 이를 나라 안팎에 알리는 즉위식으로 절정을 맞았다. 30분간 진행된 즉위식에는 일본 왕실, 정부와 각계 대표 인사 1600여명과 183개국에서 파견한 외국 원수 및 축하 사절 약 500명 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전후 세대 첫 일왕인 나루히토는 즉위식에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게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며 “국민의 예지와 해이해지지 않는 노력에 의해 우리나라가 한층 발전을 이루고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말했다. 5월1일 즉위 첫날 발언과 맥락이 같다.

그는 아키히토 상왕이 일왕으로 30년 이상 재위하는 동안 “항상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시며, 어떠한 때에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그런 마음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아키히토 상왕은 무릎을 꿇고 이재민과 대화하는 등 국민에게 다가서는 행보를 보였다. 이를 통해 2차 대전 이전의 신격화된 ‘천황제’와는 다른 현재의 ‘상징 천황제’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나루히토 일왕도 이런 모델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식 때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해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을 언급한 점도 아키히토 상왕의 모델을 이어받은 부분이다. 아키히토 상왕은 ‘평화헌법’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줘, 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이라고 말했던 아베 신조 총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다만, 나루히토의 발언은 아키히토 상왕이 즉위식 때 한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표현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아베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 발언 뒤 축사에서 “평화롭고 희망으로 가득 차며, 자긍심이 있는 일본의 빛나는 미래,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모으는 가운데 문화가 태어나 자라는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5월1일 일왕 즉위 때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긍심” “일본의 빛나는 미래”라는 말을 통해 보수적 색채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루히토 일왕보다 1m 정도 낮은 위치에 있던 아베 총리는 발언 뒤 각료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했고 왕궁 근처 공원에 있던 자위대가 예포 21발을 쏘는 것으로 즉위식은 마무리됐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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