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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15:44 수정 : 2005.10.27 15:44

19세기 프랑스 무대 삼은 소설 '장송' 출간

"신이 없는 시대에 인간의 구원문제를 다루고자 했습니다."

장편소설 '장송'(ㆍ문학동네ㆍ전2권)의 한국 출간을 계기로 방한한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ㆍ30)는 27일 서울 인사동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일본 도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묘사된 19세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분위기를 닮았다"고 말했다. 종교가 쇠퇴하고 돈만 있으면 뭣이든 된다고 여긴 19세기 유럽의 상황과 일본의 지금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소설 '장송'은 이처럼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쇼팽, 들라크루아, 조르주 상드 등 역사상 실존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쇼팽이 1846년 11월 연인 조르주 상드와 지냈던 노앙을 떠나 파리로 돌아온 날부터 그가 죽음에 이르는 3년여의 시간을 다뤘다.

"한 살 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한 후 '죽음'의 문제는 제게 가장 큰 인생의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쇼팽이 조국 폴란드에서 망명해 파리에서 세상을 뜰 때까지 삶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소설에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히라노는 "일본이 메이지 시대 이후 유럽의 근대문명을 아무런 비판없이 무조건 받아들여 현재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물질주의 만연, 허무주의, 도덕의 붕괴 등은 일본인들이 신을 믿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의 측면에서도 내가 문단에 등단한 시기는 '소설이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시기"라며 "이런 문제들을 그 시대로 돌아가 생각해보기 위해 소설이 가장 발달한 19세기를 '장송'의 무대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이 소설에서 음악가 쇼팽과 들라크루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 대해 그는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쇼팽의 행적을 따라가면 당시 유럽의 정황을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며, 들라크루아는 쇼팽과 친분이 두터웠을 뿐 아니라 르네상스 이후 회화를 모더니즘으로 연결시킨 중요한 작가여서 함께 다뤘다"고 설명했다.

그는 19세기 유럽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발자크나 플로베르 등 당대 작가들의 방법론을 끌어들여 '장송'을 썼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소설은 19세기 프랑스를 무대로 삼은 역사소설이자 낭만주의 예술철학을 담아낸 예술가 소설, 나아가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미묘한 사랑을 다룬 심리소설이자 당시 파리의 살롱을 되살린 풍속소설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다.


"아무런 종교도 믿지 않는 일본의 무신론적 분위기는 모든 것을 경제적 승패로 판단하려 합니다. 아이들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지'라고 오히려 의문을 갖는 시대가 됐습니다. 일본인들은 아이들에게 도덕적으로 (살인은) 안 된다고만 설득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을 정말로 설득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살인뿐 아니라 제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작가로서 갖고 있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풀어내기 위해 차기작 주제로 '살인'을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교시대에는 살인을 저지르면 지옥에 간다는 명쾌한 답이 존재했습니다. 신이 없는 시대에 살인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차기작에서 다뤄 보고자 합니다."

히라노는 교토대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1989년 '일식'으로 당시로선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의 샛별로 떠올랐다. 이어 1999년 메이지 시대 젊은 시인의 탐미적 환상을 그린 두 번째 소설 '달'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교토에서 10여 년간 살았다. 지난해 1년간 프랑스 연수를 다녀온 뒤 지난 8월부터 도쿄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방한 기간인 27-28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이연홀과 고려대 인촌기념관 1층 대회의실에서 문학강연을 한 뒤 29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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