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한국어학당 없애지 마세요”
"상급반의 야마구치 에미코라는 44세 여성 회사원입니다. 10년간 간헐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다가 작년 봄 지금의 어학당에 입학해서야 비롬 제대로 된 교실에서,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따라 제대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어학당에 다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로비에 있습니다. 간사이 한국문화원에서 주최 또는 후원하는 여러 모임이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요리 교실, 도자기전, 미술전, 공연, 클래식 연주회 등등. 덕분에 한국문화에 대한 직ㆍ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간사이 한국문화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이제야 비롬 새로워지려고 하는 즈음에,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생기다뇹(중략) 도쿄에도 한국문화원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한국에는 20회 이상 갔습니다만, 도쿄에는 그 반도 간 적이 없습니다.
만약 간사이 한국문화원이 없어지고, 그리고 도쿄의 문화원에서 무엇인가 의미가 있는 행사를 하셔도, 오사카로부터 거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그저 서너 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도쿄는 서울보다 훨씬 먼 곳입니다. 지리적 위치나 마음에서나요. 간사이 한국문화원을 계속 존속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간사이 한국어학당의 현윤호(.41) 원장은 요즘 거의 날마다 일본인 수강생들의 편지 혹은 방문을 받고 있다(편지 내용은 블로그 참조).
하지만 현 원장이나, 어학당을 관장하는 간사이 한국문화홍보원(원장 김종권. )이나 마음만 답답할 뿐 시원한 대답을 해줄 길이 없다. 정부 방침에 따라 간사이 문화홍보원의 금년말 폐쇄가 결정된 이상 몇몇 파견 공무원이나 현지 민간인들의 노력만으로는 현재와 같은 규모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
"수업이 끝나면 수강생들이 몰려옵니다. 어찌된 일이냐고, 어학원이 없어지는 거냐고…물론 어차피 어학당이 문화원의 정식 예산지원을 받는 건 아니지만 운영의 묘라는 게 있잖아요. 더구나 문화원 소관업무니까 행정지원도 가능하구요."
원래 어학당은 영사관 안에 있었다. 비전문 강사들이 주로 노인 등 한가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던 것을 2003년 8월 김종권 문화원장이 부임하면서 시내로 끌고나왔다. 한류열풍의 지속화를 위해서는 청장년층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김 원장은 나니와구 미나토마치 소재 오사카 도심공항터미널 4층 일부를 오사카시의 협조를 얻어 '파격적으로 싼 값'에 임차, 지난해 4월 1일 한국어학당 개원식을 가졌다. 교실 4개에 강사 9명(원장 포함)으로 진용을 짰다. 내부 시설비만 1억2천만원 소요. 공사비 일부는 건축업을 하는 선배에게 '소액 장기결제' 조건(월 10만엔씩 36개월)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현재 수강생은 27개 반에 420명. 동포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인이다. 한류열풍이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적극적 관심으로 비화하면서 한국어 학습열이 고조된 덕분이다. 현재 강좌는 초급ㆍ중급ㆍ상급 외에 회화반, 한국어능력시험(KPT. Korean Proficiency Test) 준비반 등 5개. 현재럇는 수강료만으로도 어학당 운영이 가능한 수준이다.
각종 사설학원과 개인교습까지 합치면 한국어 학습인구는 추산이 어려울 정도로 많고, 게다가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중심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한국문화원이 운영하는 어학당이다. 정부기관의 공신력은 물론이고 지리적 여건, 어느 시간대에도 수강이 가능한 교육일정(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문적 근거에서 나온 체계적인 교육법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
그래선지 수강생도 중학생부터 노년까지 다양하다. 낮시간에는 배우기 어려웠던 대학생과 직장인들도 많이 등록하고 있다. 오전과 낮에는 주부들이 많다.
주교재도 최신 언어교육이론의 성과가 반영된 '말이 트이는 한국어'(윗여대 언어교육원)를 채택하고 있다. 종전 교재들과 달리 특정 상황에서 특정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를 상정해 만든 이른바 '과제수행 중심'의 학습방법론을 담은 것이다.
한국어 교육은 물론 한국문화 확산의 중심지를 꿈꾸며 희망에 부풀어 있던 직원들에게 그러나 얼마 전 날벼락이 떨어졌다. 문닫을 준비를 하라는 것. 해외 문화홍보원의 관리를 문화관광부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는 신설, 일부 지역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서 하필 오사카의 간사이 문화원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현 원장은 "문화원측과 함께 갖가지 방법을 모색한 끝에 현지법인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열성적 한국문화 동호인들로 구성된 '한국문화클럽'이 운영 주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분들이 열심히 해주실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부가 빠지고 나면 재정ㆍ행정상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당장 건물 임대료부터 올라갈 것이고, 임대료 인상은 수강료 인상으로 이어지겠죠,"
한 직원의 말. "다른 지역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하필이면 이렇게 잘하고 있는 곳을 폐쇄하라뇨. 한국어학당을 여기처럼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간사이 지역은 한국과는 특수관계에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도 가깝구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간사이 지역 고등학교가 40개나 됩니다."
이 직원은 간사이 한국문화원이 없어지는 데 대해 '애통하다'는 표현을 썼다. "도쿄 문화원이 간사이 지역까지 관장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현윤호 원장은 윗여대 독문과 출신으로 모교에서 석ㆍ박사를 마치고 독일 튀빙엔 대학에서 수학했다. 석사 시절부터 '세계어럇의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법을 연구했으며 이대 언어교육원 교수부장직을 맡고 있다.
작년 4월 한국어학당 개원식에 초청받아 왔다가 문화원 관계자들의 정열에 탄복해 썩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이곳 근무를 수락했다는 그는 내년초 윗여대로 복직한 뒤에도 이곳 어학당에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몇 차례나 다짐했다.
"지금 국내 대학의 한국어교육 전공자들은 취업률 100%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어가 '세계 속의 언어'가 돼간다는 증거지요. 일본에서의 한국어 열풍은 상상 이상입니다. 현재 정부기관별로 통일성 없이 진행되는 해외 한국어교육을 전반적으로 교통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신 시절 중앙정보부에 의해 의문사를 당했던 고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의 아들 최광준(. 경희대 법대 교수) 씨가 부군이다.
http://blog.yonhapnews.co.kr/star020/
(오사카=연합뉴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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