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9.11 19:54 수정 : 2005.09.12 03:15

한편의 사무라이극, 일본 9·11 총선

9·11 일본 총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반란과 축출, 자객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일본 전국시대의 사무라이극을 방불케 했다. 일본 언론들이 ‘고이즈미 극장’이라고 이름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압도적 승리를 낳은 고이즈미식 선거전술의 요체는 ‘이미지 정치’다. 개혁의 알맹이가 아니라 기득권층과의 투쟁 이미지만으로 개혁파의 지위를 독점하는 수법이다. 고이즈미가 ‘올인’한 우정 민영화는 국민들의 관심도에서 낮은 순위에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우정 민영화를 개혁의 상징으로 탈바꿈시켰다. 반대파에 저항세력이란 딱지를 붙여 ‘개혁 대 반개혁’ 구도를 연출해냈다.

타고난 승부사=고이즈미식 이미지 정치의 바탕에는 표심을 읽어내는 뛰어난 능력과 돌파력, 치밀한 사전계획이 자리잡고 있다.
일 총선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 인사들이 ‘분열선거는 필패’라며 거듭 만류했지만 고이즈미가 주저없이 중의원 해산이란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개혁 퍼포먼스’가 먹혀들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특히 과감한 개혁은 원하지만 복잡한 사고는 싫어하는 대도시 젊은층의 눈높이에 맞춰 ‘우정 민영화 찬반’이라는 단순명쾌한 양자택일로 접근했다.

유권자들의 호응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청중이 몇천명씩 몰리고, 그의 모습을 카메라폰으로 찍어대는 등 2001년의 고이즈미 열풍이 재현됐다. <일본형 포퓰리즘>의 저자 오타케 히데오 교토대 교수(정치학)는 “일본의 포퓰리즘(대중영합정치)은 부정부패 등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이라며 “두드러진 사건도 없는 상황에서 선악의 이분법을 성공시킨 것은 전후 일본 역사에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11일 밤 고이즈미 준이치로(왼쪽)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 압승이 확정적으로 나타난 가운데 당사에 나와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
이번 선거의 흥미를 한층 더해준 ‘반대파 죽이기’는 그의 탁월한 선거감각과 뚝심을 잘 보여준다. 고이즈미가 대항후보 전원 공천을 강행한 것은 기득권 세력과 전면 투쟁한다는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켰다. 특히 ‘여성 자객단’ 투입은 고이즈미가 아니면 생각해내기 어려운 ‘깜짝쇼’다. 중의원이 해산되기 무섭게 고이즈미가 지명도 높은 전문직 여성 후보들을 직접 만나 출마를 설득한 것은 일찍부터 시나리오가 짜여 있었다는 방증이다. 또 자민당 대다수가 반대파 축출로 30석 남짓을 잃을 것이라는 데 주목한 반면, 고이즈미는 선거판을 훨씬 크게 보고 있었다. 전체 300개 소선거구의 10%에 불과한 이들 의석을 모두 버리더라도 나머지에서 반대급부를 얻으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그의 계산은 완전히 적중했다.

고이즈미의 마술?=고이즈미식 이미지 정치를 두고선 우정 민영화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우세하다. 삶에 훨씬 큰 영향을 끼치는 연금·사회보장·의료제도는 물론이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롯한 아시아 외교, 이라크 파병과 헌법 개정 등 주요 현안들을 매몰시켰기 때문이다.

스즈키 유가 조치대 교수(언론학)는 “양자택일을 강요해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의 마술에 취해 있다”는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의 주장처럼 정책공약을 중시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이미지에 휘둘려온 유권자들의 태도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고이즈미식 정치는 파벌·금권·유착이 판치는 해묵은 정치행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민당은 물론 일본 정치판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10월께 야스쿠니 참배할 듯

고이즈미 향후 행보

새 정권 우파색깔 강화
개헌 논의 힘 받고
북-일 수교 가속 관측도

집권 이후 지난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우경화 행보를 보여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이번 총선의 압승을 등에 업고 우경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고이즈미 총리의 다음 행보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다. 애초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 선거 과정에서 우정 민영화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선 되도록 언급을 피했다. 그렇지만 총선 승리가 유력해지면서 그의 발언은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9일 대표 토론회에선 “나의 실적을 보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해마다 해온 참배를 계속할 뜻을 비쳤다. 지난 4일 <후지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선 “정말로 외국으로부터 (전몰자 추도라는) 마음의 문제까지 개입당해도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총리실과 자민당에선 그가 올해 안에 야스쿠니 참배를 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이번에 국민들의 확고한 신임을 확인한 터여서 주변국의 압박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정 민영화와 야스쿠니 참배가 고이즈미 총리의 대표적 공약인 만큼 우정 민영화에 버금가는 관철 의지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민당의 의석이 워낙 크게 늘어나 연립여당 안에서 견제를 해온 공명당 의존도가 줄어들게 된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참배 예상 시기로는 일단 야스쿠니 가을대제(10월17~20일) 기간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이즈미 정부와 자민당은 올해 말 만료되는 이라크 파병 시한 연장 문제에서도 연장하는 쪽으로 방침을 굳혀갈 것으로 보인다. 대내적으로는 그동안 선거로 지연돼온 헌법 개정 논의에도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자민당 내분 과정에서 온건파의 힘은 더욱 약화됐고, 호헌파인 사민·공산당은 이번 선거 결과 생존조차 걱정해야 할 판이어서 당 안팎에서 견제세력이 거의 공중분해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자위대의 해외활동 확대와 북한·중국을 겨냥한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주일미군 재편 움직임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다만 북-일 관계에선 고이즈미 총리가 수교에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차례 방북을 단행한 그는 대북 수교만큼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