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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9 19:53 수정 : 2005.08.09 19:59

지난 6월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청 앞에서 주민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전쟁을 찬미하는 교과서 채택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양심’ 이 극우바람 잠재웠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공민교과서 채택전이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9일 일본 시민단체가 중간집계한 결과를 보면, 왜곡 교과서 저지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런 추세라면 왜곡 교과서 채택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묶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타와라 1곳만 후소사 교과서 채택 확인
‘위험지구’ 중심으로 끈질기게 채택반대 활동

내년부터 사용할 교과서 종류를 이미 결정한 곳은 현재 전국 584개 채택지구 가운데 60~7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후소사 출판 역사·공민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확인된 지구는 도치기현 오타와라시뿐이다. 채택지구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극우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의 영향력이 강한 도쿄도 교육위가 도립 중고일관교와 장애인학교 중학부에서 사용할 교과서로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들 학교의 내년 신입생 수는 오타와라시 12개 학교 530명, 도쿄도 중고일관교 4곳 600명, 장애인학교 21곳 150명 등이다. 전체 중학교 신입생 118만명의 0.1% 남짓이다.

채택지구 60∼70% 결정

채택 결정이 내려진 지구들 가운데 결과가 확인된 지구는 100여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들은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한 다른 지구는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라면 선정 위원 가운데 새역모 관련 인사가 포함돼 있기 마련이고, 그럴 경우 결과가 극우 언론에 보도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새역모 쪽은 오타와라시 채택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도쿄도 교육위의 결정을 과거에 비해 한달 가량 앞당기도록 하는 등 왜곡 교과서 채택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왔다.

한때 ‘새역모 10%’ 우려도


‘양심’이 극우바람 잠재웠다
특히 시민단체들에게 고무적인 것은 애초 새역모 교과서 채택 가능성이 높아 위험지구로 꼽혔던 지구에서 저지 성공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점이다. 지난 5일 위험지구였던 도쿄도 마치다시 교육위는 오사카서적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날 교육위 회의에서는 새역모 교과서 지지 발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교과서 전시회를 둘러본 시민들의 다수 의견이 새역모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자 위원들의 선정 투표에선 새역모 교과서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와 함께 도쿄도의 시나가와·도시마, 도치기현의 아시카가시 등에서도 저지에 성공했으며, 극우 야마다 히로시 구청장이 교육위원을 우파인사로 교체한 스기나미구에선 결정이 일단 유보됐다.

시민단체 ‘1% 미만’ 총력전

지난달 13일 오타와라시 채택 결과가 나왔을 때 새역모 쪽이 목표치로 내세운 10% 채택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가 고조됐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들은 흔들리지 않고 위험지구를 중심으로 교육위원 면담, 홍보물 배포, 서명운동 등을 활발하게 펴왔다. 오타와라시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고 채택 번복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의 끈질긴 반대활동이 새역모 교과서의 확산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승세를 굳힌 것으로 보고 새역모 교과서의 최종 채택률이 1%를 밑돌 수 있도록 총력을 쏟을 작정이다. 4년 전의 새역모 교과서 채택률은 0.039%였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한달새 6억여원 모아 신문광고, 일 국민에 ‘채택저지’ 직접 호소

국내서는…

‘방어율 0%대를 사수하라!’

일본에서 후소사판 왜곡 역사교과서의 채택을 막기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는 2001년에 이어 또다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국내에서는 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공동대표 서중석 이용득 이수호 이수일 황석영)가 전면에 나섰다. 여러 노력 가운데 한·중·일 3국 공동 역사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의 출간은 기념비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 책은 2001년 후소사판의 교과서가 검정에서 통과한 뒤, 침략주의적이고 자국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쓰인 교과서에 대한 대안으로 출간이 추진됐다. 3국의 학자들이 4년여의 공동연구 끝에 5월 내놓은 이 책은 객관적이면서도 평화주의적인 시각을 성공적으로 담아내, 침략을 정당화한 후소사판 교과서의 몰상식을 폭로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됐다.

3국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운동도 달아올랐다. 한·일 시민단체들과 중국사회과학원 등은 6월 공동 심포지엄을 통해 후소사판 저지를 위한 지혜를 모았다. 이 때 방한한 일본의 후소사판 채택 위험지구 시민단체들은 각기 한국의 자매결연 지방자치단체들을 찾아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국내 지자체들은 일본 지자체들에게 후소사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역사교육연대와 전교조 지부,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은 일본 각지를 돌며 현지 시민단체들과 공동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비정부기구대회에서도 후소사판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역사교육연대는 일본인들의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마지막 방안으로 신문광고 게재 운동을 벌였다. 지난달 초 시작한 일간지 광고비 모금운동은 초기에는 반응이 미지근했지만, 월 말로 접어들면서 교육계와 시민의 호응이 일어나면서 9일 현재 5억9천여만원의 돈이 모였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의 10여개 중앙·지방일간지에 후소사판을 반대하는 한국민들의 뜻이 실렸다.

김준하 역사교육연대 국제협력부장은 “3~4월에는 독도 문제와 맞물리면서 후소사판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가, 이후 관심권에서 멀어지는 듯해 염려스러웠다”며 “그러나 최근 시민의 모금 참여가 활발해진 것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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