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날 시내 병원 2곳을 방문한 후 원폭의 특이성을 눈치챈다. 가벼운 화상인데도 팔과 발에 붉은 반점이 생겨 고생하는 여성과 코에 피가 들어차거나 머리가 빠진 어린이들을 보고는 네덜란드 군의의 말을 빌려 "증상 X"라고불렀다. 9일자 기사에서는 일본인 의사를 취재해 `증상 X'가 방사선 피폭에 의한 원폭증이며 폭탄투하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후에도 사망자가 나오는 원인이 그 때문이라고확신한다. 웰라 기자는 "환자들은 엑스선에 노출돼 화상을 입은 환자와는 달리 별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4-5일 후 증세가 악화돼 죽는다. 사후에 조사해 보면 각종장기는 정상이다. 그런데도 죽는다"고 썼다. 아들 앤서니씨에 따르면 웰라 기자는 이 원고를 GHQ에 보냈지만 게재가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 원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이니치는 당시 이 르포가 보도됐더라면 핵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커져 그후의핵무기개발 경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전쟁보도에 대한 미국의 보도통제는 2차대전 이후에도 모양을 달리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라크전을 예로 들었다. 2003년 이라크전 때 이집트취재 종군기자로 걸프만에 배치된 항모 키티호크에승선했던 마이니치 기자는 "검열과 정보통제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공습에 참가하는 조종사에 대한 취재는 홍보담당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허용되지않았으며 장교식당에서 오간 잡담내용을 허가없이 기사화했다가 `하선시키겠다'는경고를 받은 언론사도 있었다. 사후검열에 그치지 않는다. 항모를 관할하는 전투사령실 취재때는 당국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검사해 지우도록 명령하는 `사전검열'도 실시됐다. 또 종군기자에게는 실명보도를 의무화해 정보원을 익명으로 할 수 없도록 하는 취재원칙을 승무원들에게도 주지시켰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기자들에게도 실시한 가스마스크 착용훈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은 화학무기의 위협을 강조하는 효과를 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
나가사키 원폭 르포 미공개 원고 발견 |
나가사키 원폭 투하(1945년 8월 9일)다음 달인 1945년 9월 외국인 기자로는 처음으로 현장을 취재한 당시 미국 시카고데일리 뉴스(폐간) 기자의 미공개 르포 원고가 발견됐다.
마이니치신문이 당시 현장을 취재한 조지 웰라 기자의 아들을 통해 발굴,17일 공개한 원고와 사진은 폐허로 변한 나가사키시와 원폭후유증에 시달리는 시민의 참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웰라 기자의 르포기사와 사진은 그러나 연합군총사령부(GHQ) 검열에 막혀 빛을보지 못했다.
원고와 사진은 웰라 기자가 만년을 보낸 로마 근교 아파트에서 아들인 작가 앤서니 웰라에 의해 발견됐다.
기사작성때 복사지를 대고 타이핑해 남은 부본으로 누렇게 변색된 A4용지 75매,2만5천단어에 이르는 장문의 기사다.
나가사키 시내를 촬영한 사진 25장도 발견됐다.
웰라 기자는 원폭 투하 한달후인 45년 9월 6일 가고시마에서 모터보트와 철도를 이용해 나가사키에 들어갔으며 2주일 동안 피폭지와 규슈 북부를취재했다.
르포기사는 9월 6일자부터 시작하고 있으나 8일자 기사에서만해도 원폭의 방사선 피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 "섬광이 퍼지면서 강력한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제외하면 원폭이 다른 폭탄과 다르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나 이날 시내 병원 2곳을 방문한 후 원폭의 특이성을 눈치챈다. 가벼운 화상인데도 팔과 발에 붉은 반점이 생겨 고생하는 여성과 코에 피가 들어차거나 머리가 빠진 어린이들을 보고는 네덜란드 군의의 말을 빌려 "증상 X"라고불렀다. 9일자 기사에서는 일본인 의사를 취재해 `증상 X'가 방사선 피폭에 의한 원폭증이며 폭탄투하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후에도 사망자가 나오는 원인이 그 때문이라고확신한다. 웰라 기자는 "환자들은 엑스선에 노출돼 화상을 입은 환자와는 달리 별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4-5일 후 증세가 악화돼 죽는다. 사후에 조사해 보면 각종장기는 정상이다. 그런데도 죽는다"고 썼다. 아들 앤서니씨에 따르면 웰라 기자는 이 원고를 GHQ에 보냈지만 게재가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 원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이니치는 당시 이 르포가 보도됐더라면 핵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커져 그후의핵무기개발 경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전쟁보도에 대한 미국의 보도통제는 2차대전 이후에도 모양을 달리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라크전을 예로 들었다. 2003년 이라크전 때 이집트취재 종군기자로 걸프만에 배치된 항모 키티호크에승선했던 마이니치 기자는 "검열과 정보통제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공습에 참가하는 조종사에 대한 취재는 홍보담당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허용되지않았으며 장교식당에서 오간 잡담내용을 허가없이 기사화했다가 `하선시키겠다'는경고를 받은 언론사도 있었다. 사후검열에 그치지 않는다. 항모를 관할하는 전투사령실 취재때는 당국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검사해 지우도록 명령하는 `사전검열'도 실시됐다. 또 종군기자에게는 실명보도를 의무화해 정보원을 익명으로 할 수 없도록 하는 취재원칙을 승무원들에게도 주지시켰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기자들에게도 실시한 가스마스크 착용훈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은 화학무기의 위협을 강조하는 효과를 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도쿄/연합뉴스)
그러나 이날 시내 병원 2곳을 방문한 후 원폭의 특이성을 눈치챈다. 가벼운 화상인데도 팔과 발에 붉은 반점이 생겨 고생하는 여성과 코에 피가 들어차거나 머리가 빠진 어린이들을 보고는 네덜란드 군의의 말을 빌려 "증상 X"라고불렀다. 9일자 기사에서는 일본인 의사를 취재해 `증상 X'가 방사선 피폭에 의한 원폭증이며 폭탄투하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후에도 사망자가 나오는 원인이 그 때문이라고확신한다. 웰라 기자는 "환자들은 엑스선에 노출돼 화상을 입은 환자와는 달리 별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4-5일 후 증세가 악화돼 죽는다. 사후에 조사해 보면 각종장기는 정상이다. 그런데도 죽는다"고 썼다. 아들 앤서니씨에 따르면 웰라 기자는 이 원고를 GHQ에 보냈지만 게재가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 원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이니치는 당시 이 르포가 보도됐더라면 핵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커져 그후의핵무기개발 경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전쟁보도에 대한 미국의 보도통제는 2차대전 이후에도 모양을 달리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라크전을 예로 들었다. 2003년 이라크전 때 이집트취재 종군기자로 걸프만에 배치된 항모 키티호크에승선했던 마이니치 기자는 "검열과 정보통제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공습에 참가하는 조종사에 대한 취재는 홍보담당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허용되지않았으며 장교식당에서 오간 잡담내용을 허가없이 기사화했다가 `하선시키겠다'는경고를 받은 언론사도 있었다. 사후검열에 그치지 않는다. 항모를 관할하는 전투사령실 취재때는 당국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검사해 지우도록 명령하는 `사전검열'도 실시됐다. 또 종군기자에게는 실명보도를 의무화해 정보원을 익명으로 할 수 없도록 하는 취재원칙을 승무원들에게도 주지시켰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기자들에게도 실시한 가스마스크 착용훈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은 화학무기의 위협을 강조하는 효과를 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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