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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5 19:11 수정 : 2005.05.05 19:11

일중등 교과서 ‘개악’ 1달

5일은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개악된 일본의 중등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된 지 한달이 되는 날이다. 발표 당시의 격앙됐던 분위기가 잦아들면서, 이 문제가 또다시 관심권 밖으로 잊혀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단호한 대처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악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도 이제부터 본격화할 태세이다. 일본 교과서 검정 한달 한국과 일본의 기류와 움직임을 점검해봤다.

“일 반성없인 화해없다”
한국 장기전 태세 돌입

정부는 일본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반성하고 있음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까지는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 기획단’을 출범시켜, 장기전 태세를 갖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결연한 자세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일본 정부는 오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전승 60년 기념행사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으나, 정부가 화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까지 넣어 한-중-일 정상회담을 열자는 일본 정부의 구상에도, 성사 가능성이 낮다며 일찌감치 발을 뺐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중단돼야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5일 방한한 일본 집권 연립여당 간사장들의 노 대통령 면담 요청도 애초 성사가 불투명했다가, 뒤늦게 6일로 일정이 잡혔다.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주변에서는 이들이 집권 여당 간사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과 ‘망향의 동산’을 방문하기로 한 ‘성의’가 고려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6월 중 열릴 예정인 한-일 셔틀 정상외교에도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정부는 애초 고이즈미 총리를 한류 열풍을 일으킨 텔레비전 드라마 <겨울소나타>의 무대인 춘천이나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추진 중인 평창으로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그런 장소는 한-일 관계가 좋았을 때 얘기”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역설적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이 쉽게 시정될 수 없는 난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 정부는 한-일 관계의 재정립을 선언했지만, 일본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한·중·일 시민단체들의 연대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있는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도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한·중·일 시민사회 공동 대응의 신호탄은 역사교과서 출간이다. 동아시아 공동역사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는 오는 27일 세 나라에서 동시에 발간된다. 한국에서는 26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과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과 출판기념회가 각각 열린다. 시민·교육단체들은 또 6월12일 한·중·일 시민들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평화기원 시민달리기 대회’를 시작으로, 일본 현지 시민단체와 함께 석달 동안 일본 전국을 돌며 ‘후소사판 교과서 불채택 순회 캠페인’을 벌인다. 후소사판 역사교과서는 지난 2001년 채택률 0.039%에 그친 바 있다.

유강문 안수찬 기자 moon@hani.co.kr




10%채택”―“100%저지”
일 새역모―시민단체 사활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 이후 일본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다. 민간 차원에서는 교과서 채택을 둘러싸고 출판사 쪽과 시민단체들의 치열한 공방이 진행중이고, 정부 차원에서는 외국 역사교과서 실태조사를 통한 반격이 준비되고 있다.

왜곡 교과서를 펴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과 이 교과서의 채택 저지에 나선 일본 시민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심포지엄과 강연회 등을 열고 있다.

후소사 교과서 채택률 10%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총력전에 들어간 새역모는 지역 단위의 홍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검정에 통과한 다른 7종 교과서 때리기에 초점을 맞춘 순회 패널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새역모는 30여장의 패널을 통해 다른 교과서들을 극우의 관점에서 분석한 뒤, “너무 심한 역사교과서”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왜곡 교과서 반대운동을 벌이는 단체들과 공산당의 연계설을 제기하는 등 ‘색깔공세’도 서슴지 않았다.

새역모는 집권 자민당의 조직적 지원을 등에 업고, 채택권을 행사하는 교육위원회 공략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언론 취재를 거부해온 새역모는 오는 10일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이는 왜곡 교과서 문제가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와 맞물려 국제사회의 논란거리로 떠오르자, 외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선 시민단체들의 채택저지 운동 또한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지난달 24일 도쿄에서 첫 집회를 열고 ‘왜곡 교과서 채택률 0 운동’에 들어갔다. 4년 전 채택률이 0.039%에 그쳤던 후소사 교과서를 아예 학교현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교과서 일제 채택이 예정된 8월까지 전국에서 2천여 차례의 모임을 열어 반대여론을 확산시킬 방침이다. 시민단체들은 새역모 교과서의 위험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채택해서는 안되는 새역모 교과서’라는 제목의 한장짜리 전단(10엔)의 100만장 배포 운동도 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해 더이상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공격만 당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외무성과 문부과학성이 최근 제2차 세계대전과 영토 문제 등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 등 20여개국 교과서에 대한 비교 조사에 들어간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국과 중국 교과서에선 근현대사 부분이 조사대상이다.

일본 정부는 또 일본 역사교과서를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역해 배포·공표하거나 해외공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의 검정제도를 설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일본 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오해와 선입견에 따른 것이며, 실제 따지고 보면 한·중 교과서가 더 문제가 많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공세적 조처로 보인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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