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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1 14:38 수정 : 2020.01.11 17:38

11일 오전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EPA 연합뉴스

대만 총통·입법위원 동시 선거, 11일 오전 8시 개시

청년세대 투표율 만큼 중요한 고령층의 표심
민진당 정부 과거사 청산, 노년층 거센 반발 불러

선거 때마다 귀국하는 1950년생 범띠 미국 교민 ‘팅’
“민진당 편가르기 사악…중국 변할 때까지 우호관계 유지를”

11일 오전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제15대 총통과 10대 입법위원을 뽑는 대만 동시 선거가 11일 오전 8시 시작됐다. 1931만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은 총통 투표와 함께 지역구 입법위원과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 투표 등 3개의 표를 던지게 된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투표가 오후 4시에 일찌감치 마감되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총통 직선제 실시 이후 2000년 선거에서 8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한 이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강 곡선을 그려왔다. 지난 2016년 선거에선 사상 처음으로 투표율이 60%대로 떨어졌는데, 이번엔 어느 정도의 투표율을 보일지도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관심은 118만명에 이르는 23살 이하 첫 유권자층에 집중됐다. 전체 유권자의 6% 남짓에 불과하지만, 대만의 미래를 만들어갈 세대이기 때문이다. ‘대만인’이란 정체성으로 무장한 이들 연령대 절대다수는 차이잉원 현 총통을 지지한다. 집권 민진당이 ‘1월11일, 집에 가서 투표하자’ 운동에 집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30대 이하 청년층 유권자는 전체의 34%다. 40~50대 중장년층 유권자가 38%로 가장 많고, 60대 이상 노년층 유권자도 전체의 28%에 이른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청년층 유권자보다 중장년층 유권자의 표심이 더욱 중요하다. 20대 청년 유권자(16%) 만큼이나 70대 이상 고령 유권자(12%)의 투표율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또한, 역대 선거에서 20~30대 청년층 투표율은 평균 투표율보다 낮았던 반면, 60대 이상 노년층의 투표율은 평균치를 10~20% 웃돌았다.

지난 9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만 타이베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팅’(70)을 만났다. 미국 보스턴에서 40여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2016년을 빼고, 선거 때마다 귀국해 투표했다”며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노인 상당수가 나처럼 투표하러 귀국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에는 해외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다.

팅의 가족은 1949년 ‘국-공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옮겨올 때 이주한 이른바 ‘외성인’이다. 하지만 팅은 자신을 ‘본성인’(대만에서 나고 자란 사람. 1949년 이전부터 대만에서 살던 사람)이라 여긴다. 그는 “나는 1950년생 호랑이 띠로,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미국 생활에도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대만 국적을 유지한 채 대만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대만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팅의 생각과 달리 그의 가족은 전형적인 외성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아버지는 군인이셨다. 군 생활을 마친 뒤에는 공직으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말했다. 국민당 일당 통치 시절 ‘군인’과 ‘공무원’은 사실상 외성인이 독점했다. 1949년 5월 대만으로 옮겨온 이후 국민당은 1987년 7월까지 38년2개월여 동안 ‘계엄’ 상태에서 통치했다. 국민당 이외 정당은 불법이었다. 민진당도 1986년 9월 창당 당시 계엄령에 따라 ‘불법 정당’이었다.

팅은 “젊어선 민진당에 정치자금도 보내고 지지활동도 열심히 했다. 다당제가 대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국민당 지지자로 돌아갔다. 이번 선거에서도 한궈위 국민당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당도 대만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정당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당 지도부는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떠났고, 대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지도부를 장악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녹색당’(민진당의 상징인 초록색)은 ‘청색당’(국민당의 상징인 파란색)을 대륙 출신자들의 정당이라고 매도한다. 대만 사회의 분열을 부추겨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악한 짓이다.”

대만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본성인과 외성인 사이의 갈등은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도드라진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민진당 지지자들은 ‘대만인’이란 정체성이 강하다. 반면 국민당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라고 여긴다.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주리시 국립정치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애초 대만인은 국가 정체성도, 민족 정체성도 명확하지 않았다. 청나라 푸젠성에 딸린 1개 현이었던 대만은 19세기 말 청-일 전쟁 이후 일본에 할양했다. 일본이 패망한 뒤엔 대륙에서 옮겨온 국민당이 통치했다. 근대적 국가관이 정립될 기회가 없었다. 대만은 다민족 사회다. 명나라 시절부터 대만으로 건너와 살기 시작한 본성인과 국민당과 함께 옮겨온 내성인 외에도, 대만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원주민들도 있다. ‘대만인’이란 정체성이 커진 것은 ‘일국양제’를 앞세워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온 중국 탓이 크다.”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팅의 평가는 냉정했다. 재원 고갈에 따른 미래 세대의 부담을 우려해 지난 2018년 실행에 들어간 군인·공무원·교사 등 3대 연금개혁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미래 세대를 앞세워, 평생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에 헌신한 이들의 것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국민당이 군부독재 시절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부당당산처리위원회’를 비롯한 차이 정부의 과거사 청산 노력도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었을까? 노년층 유권자 가운데 팅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5월 대만이 아시아 대륙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도 노년층 유권자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국민당은 이번 선거 으뜸 구호로 ‘대만안정, 인민유전’을 내세웠다.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경제와 민생을 발전시키겠다는 주장이다. 그 종착점에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개의 체제) 원칙에 따른 통일이 있다. 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나는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다. 언젠가는 대만과 중국이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콩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만과 중국의 통일을 당장 추진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팅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민진당의 대립노선 대신 국민당의 협력노선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대만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하면, 최악의 경우 중국과 무력 충돌이 벌어지거나 아예 흡수통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민주적으로 바뀔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만-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중국’에 대한 판단은 팅과 젊은 세대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대만 중앙선관위 자료를 보면, 외국에 거주하면서 투표를 위해 귀국하겠다고 등록한 유권자(이중국적자)는 5천여명에 이른다. 팅처럼 대만 국적만 보유한 이들은 사전 등록이 필요 없이 투표가 가능하단다. 노년층만 귀국 투표에 나선 건 아니다. 유학생을 비롯한 외국 거주 청년층 사이에서도 ‘집에 가서 투표하자’는 바람이 분 모양이다. 10일 밤 대만 남부 가오슝에서 열린 민진당의 선거 전야 유세에선 세계 각국의 지명이 적힌 손팻말을 든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무대에 올라 환하게 웃으며 춤을 췄다. 타이베이/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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