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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1 19:26 수정 : 2019.09.11 20:11

1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전격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워싱턴/AP 연합뉴스

트럼프 “의견 다르다” 전격 경질
“새 안보보좌관 다음주 지명할 것”

군사보다 금전이득 선호하는
트럼프식 미 우선주의 강화될 듯

1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전격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외정책에서 자신과 불화를 빚어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10일(현지시각) 전격 경질했다. 호전적인 ‘슈퍼 매파’ 볼턴 보좌관의 퇴장에 따라, 군사적 압박보다는 금전적 이득을 선호하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무협상 재개 가능성이 높아진 북-미 대화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나는 어젯밤 존 볼턴에게 그의 복무가 더 이상 백악관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알렸다”며 “나는 그에게 사직을 요구했고 사직서는 오늘 아침 내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의 사임은 2018년 4월 직을 맡은 지 17개월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안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그의 제안 중 많은 것에 강하게 의견이 달랐다”고 경질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새 국가안보보좌관을 다음주 지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질 발표로부터 1시간 남짓 뒤인 오후 1시30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함께 공동 브리핑을 할 것으로 이날 오전 백악관이 공지한 상태였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축출’ 발표는 전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볼턴 보좌관의 강경 노선을 놓고 미국 행정부 내 불협화음이 컸던 만큼, 핵심 참모들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테러 관련 행정명령 브리핑에서 “볼턴과 내 의견이 다른 적이 많았다”며 “대통령은 자신이 신뢰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볼턴 보좌관의 사임을 몰랐느냐’는 질문에 “전혀 놀랍지 않다”고 답변하면서 옆에 있던 므누신 장관과 함께 활짝 웃었다. 공식회의 때 외에는 대화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의 ‘파워 게임’에서 볼턴 보좌관이 밀려난 것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장면이다.

볼턴 보좌관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이란, 북한 등의 문제에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견해차를 보여왔다. 특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 지도자들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평화협정에 서명하려 한 것을 놓고 내부 격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에 반대한 볼턴 보좌관이 캠프 데이비드 비밀회동 계획을 언론에 흘리는 등 방해작업을 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이 이에 격분했다는 것이다. <시엔엔>(CNN)은 지난 9일 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캠프 데이비드 회동 취소를 놓고 격한 언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과 대화를 동시에 모색했으나, 볼턴 보좌관은 군사공격과 정권교체 등 압박 일변도의 주장을 폈다.

북한 핵폐기 방식에 관해서도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을 자극해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수습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의미를 축소했으나 볼턴 보좌관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라며 공격적 자세를 취했다.

볼턴 보좌관이 물러남에 따라, 대외정책에서 군사공격까지 주장하는 볼턴식 강경 노선은 약화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하게 떠받들어온 폼페이오 장관의 입김이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볼턴 보좌관의 영향력이 행정부 내에서 이미 약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세계의 어떤 지도자도 우리 중 누군가가 떠난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바뀔 거라고 추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에서도 최근 들어 볼턴 보좌관의 개입이 줄어든 터였다. 그는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일괄타결식 빅딜론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입하면서 ‘노딜’을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뒤 6월 말 판문점 북·미 정상 만남 때는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고 몽골로 향했다.

그럼에도 볼턴 보좌관의 퇴장은 북-미 대화 재개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북한이 그동안 폼페이오 장관과 더불어 북-미 대화의 걸림돌로 지목해온 볼턴 보좌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겨레>에 “북한은 하노이에서보다 나은 합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를 살피기 위해 볼턴 보좌관 경질을 미국과 다시 관여할 기회로 바라볼 것”이라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제안한 대로 9월 하순께 북한이 대화로 복귀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이 북-미 대화 과정에 불쑥불쑥 끼어들어 ‘훼방꾼’ 구실을 했었다는 점에서, 그만큼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볼턴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직간접적으로 사임하라는 요청을 한 적이 없다. 내가 밤새 고민한 뒤 오늘 아침 사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헤어지는 모습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를 드러낸 것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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