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8 20:32
수정 : 2019.06.1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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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1월8일 제4차 북-중 정상회담 때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화동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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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 재개 가시화…시 주석 전격 방북 결정
올초 결정 시 주석 방북…북-미, 미-중 삐걱이며 늦어져
중, 긍정적 역할 부각해 미-중 협력 가능성 강조할듯
제재 완화 목소리보다는 끈끈한 관계 과시에 주력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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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1월8일 제4차 북-중 정상회담 때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화동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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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은 올해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차 방중 때 김 위원장의 초청을 “쾌히 수락”하면서 사실상 확정됐다. 다만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나고 미-중 무역전쟁이 불을 뿜으면서 시 주석의 방북 시기는 가늠하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북핵 협상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이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무역전쟁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좌를 앞둔 시 주석이 방북을 결단한 것은 시기상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무엇을 제공할지가 북-미, 미-중 관계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본다.
시 주석의 방북은 무엇보다 미국의 파상 공세에 맞설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규모 보복관세와 화웨이 제품 불매 캠페인으로 큰 압박을 느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때 무역협상의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면 나머지 중국 상품 연 3000억달러어치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또 미국은 최근 불거진 범죄인 인도 조례에 대한 홍콩인들의 저항 문제도 이번에 의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1~4차 방중이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중국이라는 뒷배를 과시하려는 의도였다면, 이번에는 시 주석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북-미가 협상을 재개할 경우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그동안 북-미 사이의 중재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중국 패싱’을 막고 한반도 문제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방북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다만 아직까지 북-미 간에 의미 있는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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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18일 오전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평양행 고려항공 탑승 수속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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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인식과 판단으로 방북길에 오를 시 주석이 북한에 어떤 ‘선물’을 안길지가 미-중 무역전쟁과 북핵 해결 노력에 큰 함의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북한이라는 지렛대를 미국에 대항하는 쪽으로 사용하려 하고, 미국이 반발한다면 이런 관계들이 경색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중국이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협상’이라는 북한 입장에는 동의하면서도 무리한 제재 완화로 미국과의 대립을 격화시키지는 않으리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시 주석은 미-중 전략 경쟁에서 새로운 변수를 만들기보다는, 새롭게 시작되는 북-미 대화의 판에서 적극적인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 시 주석은 수교 70돌을 맞은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방북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지난해 김 위원장을 만나 “조-중 두 나라는 운명 공동체이고, 변함없는 순치(입술과 이) 관계”, “쌍방의 공통된 전략적 선택” 등의 표현으로 양국 관계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제재 문제에 관한 시 주석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집권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평양을 방문해 양국 관계 강화를 선언하는 것 자체가 큰 외교적 성과다.
또 중국 쪽이 관계 발전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유엔 제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부 경제적 대북 지원이나 인도주의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쌀 1천t과 비료 16만2천t 등을 북에 무상으로 지원했다. 지난달 23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격)가 내놓은 월간 북-중 무역 통계를 보면, 지난 4월 북-중 무역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9% 늘었다. 특히 시계와 가발 등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품목을 중심으로 북한의 수출이 꾸준히 늘었다. 전방위적 제재 속에 중국이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대목은 중국이 제재 행렬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북-미 협상에 관한 북한의 태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효과도 낼 수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박민희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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