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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7 11:12 수정 : 2019.03.17 11:30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5일 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15일 폼페이오 장관 “대화 지속” 발언 뒤 침묵
북 ‘행동’에 나서면 트럼프 외교 성과 물거품
“북-미 모두 말과 행동 자제해야” 주문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5일 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북한이 ‘대화 중단 고려’ 카드를 꺼내며 미국에 공을 넘김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미국은 일단 공격적인 대응을 자제한 채 “북한과 협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신호를 보냈다. 대화 판이 깨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면서,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전날 기자회견에 대해 ‘대화 유지’와 ‘약속 이행’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내놓은 뒤로, 주말인 16일 추가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무력화하는 의회 결의안에 15일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국내 이슈에 주력한 채, 북한 문제에는 16일까지 공개적 반응을 자제했다.

현재까지 나타난 미 정부의 반응은 자극적 대응보다는 대화 분위기 유지 쪽에 무게가 실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난을 자제한 채, ‘대화를 지속해나가고 싶다’,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지 말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애초 이날 회견은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에 대한 미군의 지원을 끝내라는 상원의 결의안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를 비판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은 전날 밤 나온 최선희 부상의 발언에 초점이 맞춰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 부상의 기자회견을 봤느냐’는 질문에 “봤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점을 우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싱가포르와 하노이 사이에서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억류자들이 돌아왔고 북한은 미사일과 핵 실험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대화와 협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나는 최 부상의 발언을 봤다. 그녀는 협상이 지속될 가능성을 분명히 열어뒀다”고 말했다. 최 부상이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가 대화를 지속하는 게 미 행정부의 소망이다”라는 말도 했다.

최 부상이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협상 결렬의 주범으로 겨냥한 것에 대해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부인하면서도 역시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들(북한)은 그 부분에 대해 틀렸다. 나는 거기(하노이)에 있었고 나와 김영철의 관계는 프로페셔널하다. 우리는 세부적인 대화를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가 그걸 지속하기를 바란다. 그(김영철)는 북한이 내 앞으로 내놓은 카운터파트다”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 부상이 ‘강도 같은 태도’라고 비판한 데 대해서는 “그게 처음은 아니다”라며 “내가 과거 방북했을 때도 ‘강도 같다’고 불린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도 우리는 아주 프로페셔널한 대화를 계속했다. 우리가 계속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충분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인을 겨냥한 북한의 공격에 개의치 않고, ‘폼페이오-김영철’ 고위급 라인 유지 등 대화 채널이 계속 가동되기 바란다는 희망을 거듭 내비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과 대화가 지속돼왔다고 하는데, 어떤 레벨에서 해왔느냐’는 질문에 “협상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그것들은 진행중이다”라고 말해, 대화를 위한 물밑 접촉 시도 가능성도 내비쳤다.

볼턴 보좌관도 최 부상이 자신을 회담 결렬의 원인으로 지목한 데 대해 15일 기자들에게 “부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비난 수위를 높이지는 않은 채 “우리가 반응하기 전에 미 정부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 상태를 깨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하노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이건 김 위원장의 약속이다. 북한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충분한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약속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반드시 지킬 것을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대북 정책의 대표적 성과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꼽으며 “실험이 없는 한 서두를 것 없다”고까지 말했다. 이 때문에 만일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재개에 나선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성과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는 셈이 된다. 미국으로서는 우선 북한의 실험 재개를 막는 데 노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물론이고 초강경 매파인 볼턴 보좌관도 북한 자극을 자제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를 거부하고 영변 외 모든 핵시설과 대량파괴무기(WMD) 제거까지 포함한 ‘일괄 타결’로 기준선을 명확히 한 미국이 당장 물러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14일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을 만나 대북 제재 이행을 단속하는 등 ‘비핵화 때까지 제재 유지’라는 방침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북-미 양쪽의 밀고당기기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 부상이 공언한 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핵·미사일 실험 재개 여부 등에 관해 직접적 공표가 이뤄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그 전에 북-미 사이에 직접적인, 또는 한국 정부의 중재를 통한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북-미가 모두 말과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미 시사지 <디 애틀랜틱>은 16일 ‘북-미가 다시 거친 발언으로 돌아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양쪽의 강경파인 최 부상과 볼턴 보좌관이 전면에 등장한 최근 상황을 짚었다. 이 매체는 강경파의 등장은 각각 국내 강경파의 목소리를 무마하려는 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그러나 압박을 가하는 것과 연약하고 악화하는 외교 과정을 산산조각내는 사이에는 미세한 선(차이)이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무산시킬 뻔했던 최 부상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입씨름을 거론하며 지적한 것처럼, 협상을 되살리는 데는 말과 행동의 상호 자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협상을 궤도에서 이탈하게 하고 잠재적 대재앙을 촉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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