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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3 09:46 수정 : 2019.03.13 09:51

3월 타계한 로이터 야니스 베라키스의 30년 ‘난민’ 기록

시리아 난민이 2015년 9월10일 비바람 속에 그리스의 이도메니 마을에서 마케도니아 국경을 향해 걷던 중 딸의 뺨에 입 맞추고 있다. 암 투병 끝에 3월2일 타계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야니스 베라키스는 이 사진을 비롯한 난민 취재 사진으로 자신의 팀과 함께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30년 넘게 지구촌의 전쟁과 갈등, 그 틈바구니에서 고통받는 난민을 사진으로 기록한 그리스의 야니스 베라키스가 3월2일 타계했다.

1960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베라키스는, 영국 미들섹스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한 뒤 1987년 <로이터통신>에서 사진 취재를 시작했다. 그는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 장례식, 동유럽과 발칸반도의 탈소비에트 사태, 크로아티아·보스니아와 코소보 전쟁, 체첸,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1·2차 걸프전, 아랍의 봄, 우크라이나 내전, 시리아의 ISIS(이슬람국가(IS)의 옛 이름) 공격 등 끊임없는 세계의 분쟁과 갈등 그리고 뉴스 현장을 취재했다.

2000년 <로이터통신> 커트 쇼크, 〈AP통신〉 미겔 모레노와 함께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를 나섰던 베라키스는, 매복해 있던 반군의 공격을 당했다. 두 기자는 살해당했고 베라키스는 무장한 반군이 사라질 때까지 밀림에 숨어 버텼다. 살아남은 그는 길을 떠나기에 앞서 이 순간을 스스로 찍어 남겼다.

사선을 넘나드는 종군 취재를 이어온 그는 코소보에서의 작업으로 2000년 ‘월드 프레스 포토’의 제너럴 뉴스 스토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유럽 난민 위기를 취재해 <로이터통신> 사진팀과 함께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곤궁하고 참혹한 삶의 벼랑에 내몰린 난민들의 실상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증언한 그는, 퓰리처상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임무는 당신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다음에 무얼 할 지 결정토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나는 미처 몰랐다’고 말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베라키스는 아테네에서 암과 싸우던 중 58살의 나이로 역사의 증언을 마감했다.

사진 야니스 베라키스, 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시리아 난민들이 정원을 넘겨 빼곡히 탄 작은 배가 2015년 8월11일 그리스 코스섬 주변에서 모터가 꺼져 터키와 그리스 사이 에게해를 표류하고 있다. 그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한 시리아 난민이 2015년 9월24일 터키에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다 넘어져 아이가 물에 빠지자 놀라 붙잡고 있다.

터키 이시크베렌 난민캠프의 의료 천막에서 1991년 4월16일 한 아기가 주사기로 포도당을 공급받고 있다.

굶주림에 지친 소말리아 어린이가 1992년 12월14일 소말리아 바이도아 지역 난민캠프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보스니아 어린이들이 1993년 8월29일 사라예보에 폭풍우가 지나간 뒤 웅덩이에서 물을 길어 병에 담고 있다.

소말리아의 한 운전기사가 1992년 12월9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항구에서 미국 해병이 ‘희망 회복 작전’이란 상륙작전을 펼치는 동안 보안검색을 받느라 엎드려 있다.

이슬람 전통의상 부르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2001년 11월4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북쪽으로 60여㎞ 떨어진 지역에서 아프간 깃발을 단 북부동맹 장갑차가 지나는 도로를 걷고 있다.

시에라리온 정부군 장교가 2000년 5월15일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70여㎞ 북동쪽 마시아카에서 살해된 반군의 주검을 살피고 있다.

시에라리온 클라인 난민캠프에서 2000년 5월12일 한 여성이 생후 6주 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이 여성은 반군의 공격을 피해 마시아카 마을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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