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2 13:59
수정 : 2019.03.12 20:50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오른쪽)가 11일(현지시각) 워싱턴 로널드레이건빌딩에서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로 열린 핵정책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본 헬렌 쿠퍼 <뉴욕 타임스>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
“트럼프 입장 분명, 미 행정부 입장 완전 일치”
“모든 WMD 제거해야”·“외교의 문은 열려있어”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오른쪽)가 11일(현지시각) 워싱턴 로널드레이건빌딩에서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로 열린 핵정책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본 헬렌 쿠퍼 <뉴욕 타임스>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
북-미 비핵화 협상 창구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점진적 비핵화는 없다”며 강경한 대북 원칙을 천명했다. 열성적 협상파로 꼽혀온 그가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같은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접근법에 미국 행정부가 일치단결한 것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뒤 교착 상태가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비건 대표는 11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주최한 핵정책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은 그 점을 분명히 했고, 행정부는 그 입장에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강경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목표였다”며 “토털 솔루션(완전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공개석상에서 실명으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빅딜이 아닐 바엔 노딜’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공식화하는 의미가 있다. 그가 말한 ‘토털 솔루션’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의 완전한 제거와 제재 해제를 한꺼번에 맞바꾸는 방안을 가리킨다.
사회자인 헬렌 쿠퍼 <뉴욕 타임스> 국방부 출입기자가 ‘미국이 생화학무기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골대를 옮긴 것 아닌가’라고 묻자, 비건 대표는 “내가 이 자리를 맡은 첫날부터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를 가져오는 노력은 모든 대량파괴무기의 제거와 관련돼 있었다”며 “핵무기 위협을 제거하면서 생화학무기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부분적 비핵화를 받고 제재를 해제하면 북한의 다른 대량파괴무기에 돈을 대주는 것이라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완전한 비핵화 전에는 일부 제재 해제도 없다는 논리가 된다.
이 때문에 사회자는 “당신의 (동시적·병행적 이행 방침을 밝힌 1월31일) 스탠퍼드대 발언과, 7일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이 정부의 누구도 스텝 바이 스텝(단계적) 접근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느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비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볼턴 보좌관과 마찬가지로 대화의 여지는 열어놨다. 그는 “외교는 여전히 살아 있다. 외교의 문은 열려 있다”며 “오늘 거기에 도달하기에는 (북-미의 견해) 차이가 아직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과 함께 일한다면 목표들을 1년 안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인터넷 매체 <복스>에 “이런 입장을 걷어내지 않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 북한에 완전한 항복을 먼저 요구하면 합의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미들버리국제문제연구소의 조슈아 폴락 선임연구원은 “교착을 지속하는 공식”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1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영변 핵시설부터 폐기하는 게 현실적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쪽이 조지 부시 행정부 초기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을 앞세워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깨고 이에 북쪽이 반발하는 바람에 ‘2차 북핵위기’가 발발한 선례에서 교훈을 얻어 ‘빅딜’보다 영변 핵시설 폐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조언이다. 그는 또 하노이 회담 이후 정세 해법 모색의 경로로 ①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원포인트 정상회담’→②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정상회담→③9월 유엔총회 계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정상회의 추진을 제안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이제훈 선임기자, 김지은 기자
jaybe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