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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1 19:14 수정 : 2019.02.01 23:25

2015년 10월19일 도쿄 남쪽 사가미만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의 관함식에 한국 대조영함이 참석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깃발인 욱일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가미만/길윤형 기자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2015년 10월19일 도쿄 남쪽 사가미만에서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의 관함식에 한국 대조영함이 참석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깃발인 욱일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가미만/길윤형 기자

‘올해는 뭐라고 말할까.’

지난 28일 오후 2시. 일본 중의원 인터넷 동영상 중계 사이트에 접속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시정방침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일본 총리는 매년 1월 말~2월 초 시작되는 정기국회 개원 첫날, 이 연설을 통해 그해 국정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올해 연설이 유독 관심을 끈 이유는 자명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자위대 초계기의 ‘위협 비행’ 논란으로 한-일 관계가 뼈와 뼈가 부딪히는 ‘구조적 갈등’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초인 2013~2014년엔 한국을 “자유와 민주주의 등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정의했다.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말엔 한-일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친구’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같은 가치를 믿는 이와는 세계관을 공유하기에 국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략적 갈등을 벌이지 않는다.

이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두 나라가 한바탕 ‘외교전’을 벌인 뒤인 2016~2017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나라”로 바뀌게 된다. ‘기본적 가치’라는 표현이 삭제된 데서 일본이 한국을 더 이상 친구로 여기지 않게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중요한 이웃나라’였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라는 안보 위협 속에서 한-일 또는 한-미-일 군사 협력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는 서로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귀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격하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8년엔 “지금까지 양국 간 국제적 약속과 상호 신뢰를 쌓아 올리는 기초 위에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협력 관계를 심화시켜가겠다”는 ‘묘한 표현’이 등장했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양국 간 국제적 약속’이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12·28 합의를 뜻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한국이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내리지 않고, 위안부 합의를 지킨다면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일본도 한-일 관계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아베 총리의 경고에 한국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단상에 오른 아베 총리는 50여분간 연설을 진행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연설의 마지막 장인 ‘전후 일본 외교의 총결산’에 담겼다. 예년과 달리 한국을 별도로 거론하지 않고,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 한국과 연대하겠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이는 일본 정부 고유의 논리 구조 속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지막 경고마저 무시한, 더 이상 친구가 아니게 된 옆 나라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국을 ‘생략’한 파격을 놓고 일본 내에서도 적지 않은 뒷말이 오갔다. 그러자 아베 총리 주변에선 “한국이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뭐라 쓸 방법이 없었다”(<아사히신문> 1월30일치)는 해명을 내놨다. 아베 총리 자신도 30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일·한 양국이 쌓아 올린 관계의 전제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져 매우 유감”이라는 불만을 쏟아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는 지난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불화라는 ‘원심력’과 상호 협력을 강제했던 냉전체제라는 ‘구심력’ 사이의 미묘한 균형 속에서 유지됐다. 이 균형에 결정적인 금이 간 것은 냉전의 해체와 한국의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됐던 1990년대 초였다. 1991년 8월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실명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의 첫 외침이 나왔다. 김 할머니의 용기는 전시 여성에게 가해진 성폭력에 대한 인류의 무지를 일깨우는 거대한 사건이었지만, ‘일본 사회의 우경화’라는 반동적 흐름을 함께 이끌어냈다. 이 흐름의 정점에 선 인물이 다름 아닌 아베 총리다.

한-일 관계의 원심력은 커졌으나 구심력의 근거는 희박해지고 있다. 한-일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며, 지난해 시작된 북-미 대화 이후 북한의 핵위협 감소로 ‘비즈니스’의 여지도 크게 줄었다. 한-일의 불화는 구조적 단계로 접어들었다. 개헌을 ‘필생의 과업’이라 말한 ‘아베의 일본’과 한국의 갈등은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갈등은 앞으로 이어질 ‘거대한 파국’의 서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길윤형 국제뉴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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