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0 16:31
수정 : 2019.07.1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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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퇴장하는 '딱정벌레차' (베를린 AP=연합뉴스) '딱정벌레차'로 널리 알려진 독일 폴크스바겐의 비틀 모델 차량들이 2017년 4월 이스라엘 야쿰에서 열린 연례 '비틀 클럽' 행사장에 전시돼 있다. 비틀 모델은 멕시코 푸에블라공장에서 마지막 생산을 마치고 이달 중 단종된다. ymarshal@yna.co.kr/2019-07-10 08:41:04/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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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멕시코 공장에서 마지막 버전 생산
1938년 히틀러의 국민차 프로젝트로 시작
타입1, 뉴비틀…그동안 1~3세대 비틀 모델
“작은 것을 생각하라”(Think small) 파격 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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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퇴장하는 '딱정벌레차' (베를린 AP=연합뉴스) '딱정벌레차'로 널리 알려진 독일 폴크스바겐의 비틀 모델 차량들이 2017년 4월 이스라엘 야쿰에서 열린 연례 '비틀 클럽' 행사장에 전시돼 있다. 비틀 모델은 멕시코 푸에블라공장에서 마지막 생산을 마치고 이달 중 단종된다. ymarshal@yna.co.kr/2019-07-10 08:41:04/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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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딱정벌레차’로 국내에 알려진 독일 폴크스바겐의 소형차 ‘비틀’(Beetle) 모델이 82년간의 자동차 생애를 마치고 10일 생산이 종료됐다.
10일 <에이피>(AP) 통신은 비틀 마지막 생산 버전(총 5961대)이 멕시코 푸에블라 생산공장에서 이날 최종 생산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한 박물관으로 옮겨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비틀은, 결국 실현되지 못한 나치의 위세 자랑을 위한 국민차 프로젝트로 시작돼 독일 역사의 어두운 시절을 부분적으로 상징한다”며 “전세계에 대량으로 팔리고 인정받은 세계화의 상징이자 196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쓴 젊은이들의 반문화 기치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의 클래식 ‘비틀’은 나치에서 히피문화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표상이었으며, 이제 도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것이다.
코카콜라 병에 못지 않게 혁신 디자인의 랜드마크로 평가받는 비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에서 인기 대중모델로 떠오르며 독일 경제부흥과 중산계급의 번영을 상징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며 1968년에는 미국시장에서만 56만3500대가 팔렸다. 당시 광고대행사 도일 대인 번바흐는 비틀 구매자들에게 “작은 것을 생각하라”(Think small)는 유머러스하고 파격적인 광고 카피를 내놓기도 했다. 베른하드 리거는 2013년에 펴낸 책 <국민차>에서 “서독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팔리며 품질과 내구성 면에서 전후 새로운 자동차 규범을 대표했으나, 미국에서는 작은 사이즈와 쇼맨십이 비틀의 특징으로 지배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파격적인 느낌을 제공했다”고 썼다. 미국지역 폴크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 스코트 케오흐는 “비틀이 떠난 폴크스바겐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비틀의 종말이 왔지만 폴크스바겐 브랜드 역사에서 비틀이 했던 역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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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첫 선 보인 '딱정벌레차' 비틀 (베를린 AP=연합뉴스) 1938년 5월 26일 독일 니더작센주 팔러스레벤에서 열린 독일 폴크스바겐 자동차 공장 준공식에 '딱정벌레차'로 알려진 소형차 비틀이 모습을 나타낸 가운데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하고 있다. ymarshal@yna.co.kr/2019-07-10 08:42:07/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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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 생산은 1938년부터 시작됐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의 명망을 높이기 위한 ‘국민차’(Volkswagen) 생산 프로젝트를 지시했고, 가장자리가 둥근 딱정벌레 실루엣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투입된 오스트리아 엔지니어 페르디난드 포르셰가 고안했다. 당시 세상에 처음 선보인 비틀의 모델 이름은 폴크스바겐 ‘타입1’이었다. 히틀러의 국민차 프로젝트는 미국의 국민 대중차이자 20세기 대량생산-대량소비체제의 상징인 포드 ‘모델T’처럼 독일 국민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었다.
비틀의 외관은 체코에서 1937년에 생산된 ‘타트라 T97’을 차용했다. 나치 노동조직의 머릿글자를 딴 ‘KdF-바겐’을 대량생산해 노동자들에게 판매하려 했던 애초 계획은 2차 대전 발발로 취소됐다. 그 대신에 혹독한 노동조건 속에 전 유럽에 걸친 강제노동을 이용해 하노버 동쪽 시골지역에서 전쟁 수행용 비틀 공장이 가동됐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가장 독특한 모델로 손꼽혀온 비틀은 지난 82년 동안 세가지 모델이 생산됐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직후 폴크스바겐 비틀 생산공장은 1949년 독일정부에 다시 이양될 때까지 독일점령 영국당국이 맡았다. 이 때부터 비틀은 상업용 일반 대중차로 재출시됐다. 비틀은 1940년대 말에서 1960년대까지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 1955년에는 1백만번째 비틀이 독일 볼프스부르크 타운의 대량생산 조립공장에서 생산됐다.
이어 미국에서도 1960~70년대에 50만대 이상 팔리는 대중차가 됐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골프’ 같은 더 새로운 프론트 모델이 지배하면서 볼프스부르크에서의 비틀 생산은 1978년에 종료됐다. 당시 유럽생산은 끝났지만 비틀은 아직 죽지 않았다. 멕시코로 공장을 옮겨 생산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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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부 카셀지역의 어느 정원에 서 있는 낡은 비틀 차량. 2009년 11월.(AP Photo/Michael Prob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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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에는 제2세대 ‘뉴비틀’을 출시하면서 과거의 향수를 이어갔다. 뉴비틀은 가장자리가 더욱 둥근 에지와 모던한 감각을 입혔다. 뉴비틀은 미국시장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면서 10여년간의 판매부진을 털고 다시 일어서는 모델이 됐다. 이어 2012년에 출시된 제3세대 비틀 모델은 오리지널 비틀에 좀더 가까웠다. 초기에는 잘 팔려나가는 듯했으나 점차 판매량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결국 폴크스바겐은 작년 9월 비틀 디자인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공식적으로 이날 생산이 종료돼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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