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혁명, 에너지 지도를 바꾸다] ① 가스 수출 날개 펴는 미국
셰일에너지가 세계 에너지 지정학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셰일 혁명’을 주도하는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경쟁력에 힘입어 제조업 부활의 날개도 펼치고 있다. 이는 주요 2개국(G2)의 경쟁국인 중국, 기존 주요 에너지 수출지역인 중동과 러시아에 거대한 여파를 몰고 오고 있다. 에너지 판도의 대전환은 세계 정치·경제의 틀을 새로 구성할 주요한 열쇳말이다. 셰일에너지 개발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미국·유럽·캐나다 등의 현장 취재로 4회에 걸쳐 그 의미를 짚는다.미국의 ‘에너지 수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남쪽으로 약 100㎞를 달려가면, 멕시코만의 해안선을 따라 석유와 가스 저장시설, 파이프라인, 석유화학 공장의 거대한 설비들이 숲을 이룬다. 2005년 이 지역의 퀸타나섬에 프리포트엘엔지가 액화천연가스(LNG·엘엔지)를 수입할 대규모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시설이 막 가동을 시작했을 때, 이곳은 버려져 녹슬어가야 할 처지가 됐다. 미국 곳곳에서 셰일가스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 가스 수입 수요가 사라진 탓이다. 이제 이 회사는 이곳을 미국산 셰일가스를 외국으로 수출하는 시설로 전환하는 대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 휴스턴 중심가의 프리포트엘엔지 본사에서 만난 마이클 스미스 사장은 “2002년까지만 해도 미국 천연가스 생산이 계속 줄고 있어서 수십억달러를 들여 엘엔지 수입 시설을 건설했지만, 완공이 됐을 때 불어닥친 셰일가스 붐 때문에 기다리던 수입 엘엔지 선박은 오지 않게 되었다. 실망이 컸다. 우리는 차라리 이 설비들을 활용해 생산량이 크게 늘고 있는 미국의 가스를 수출할 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셰일가스 뽑아내며
미, 세계 최대 가스 생산국 등극
멕시코만 일대 거대 설비 숲 이뤄
“2030년엔 세계 LNG 수출 20% 차지” 중동·러시아 에너지 패권 흔들
한국엔 값싼 에너지 수입 기회
“인류 100년 쓸 만큼의 에너지
한국도 직접개발 역량 키워야” 2014년 초에 공사를 시작해 2018년께부터 수출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이미 고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국 에스케이(SK) 그룹의 도시가스·발전 회사인 에스케이 이앤에스(SK E&S)는 프리포트의 시설을 이용해 2019년부터 20년 동안 매년 220만t의 셰일가스를 한국에 도입하기로 지난 9월 계약을 맺었다. 일본의 도시바, 추부전력, 오사카전력 등도 이 회사와 셰일가스 도입을 위한 엘엔지 시설 이용 계약을 맺었다. 미국 남부 멕시코만 일대는 셰일에너지(셰일가스와 셰일오일) 붐에 힘입어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미국의 천지개벽을 상징하는 현장이다. 약 30개의 컨소시엄이 미국 정부에 가스 수출 승인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프리포트, 셰니어에너지 등 4개 프로젝트가 이미 승인을 받아 엘엔지 수출시설 공사를 시작했거나 곧 착공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가스 수입국의 하나이던 상황은 이제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셰일에너지 붐은 세계 에너지 지정학에도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1973년 아랍국가들의 석유금수 조처 이후 에너지 안보는 미국 외교안보의 우선 목표였다. 리처드 닉슨 이래 미국 대통령들은 수입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에너지 독립’을 외쳤지만 한번도 현실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셰일에너지 붐이 시작된 이후 미국은 2009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가스 생산국으로 변모했다. 셰일가스는 이미 미국 전체 가스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2030년대에 미국이 에너지를 거의 자급자족하리라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망했다. 2016년께 미국이 셰일가스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사우디 아메리카’가 되리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셰일가스 혁명의 2막이 열리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셰일에너지 생산이 폭발적으로 는 것이 1막이었다면, 이제 북미 셰일가스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넘쳐나는 가스를 주요 소비처인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수출하는 것이다. 셰일가스가 너무 많이 쏟아져나와 가격이 급락해, 새로운 시장 개척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셰일가스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량)당 8~9달러 선이던 북미 가스 가격은 셰일가스 생산이 급증하자 2~3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미국 에너지기업들은 셰일가스를 냉각해 액체 상태의 엘엔지로 만들어 아시아로 수출하는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엘엔지 수입용 선박을 제작해온 휴스턴의 엑셀러레이트에너지도 최근 엘엔지 수출 선박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지난 10월 말 휴스턴의 본사에서 만난 엑셀러레이트의 롭 브링겔슨 사장은 “바다에 떠있는 엘엔지 수출시설에 대한 아이디어는 2003년 회사 설립 때부터 있었지만, 갑자기 셰일가스 생산이 급증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 건설 과정에서 2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운영 단계에서 180명을 직접 고용해 연간 18억달러어치를 수출해 미국의 무역균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저렴해진 가스를 활용해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수출이 시작되면 가스 가격이 올라 제조업이 타격을 입게 된다며 강한 반대 로비를 펼치고 있다. 찬반양론의 한가운데 놓인 미국 정부는 적정한 가스 수출 규모를 계속 저울질하고 있다. 프리포트엘엔지의 스미스 사장은 “현재 업체들이 가스 수출 승인을 신청한 양을 합하면 하루 300억큐빅피트가 넘는데 그만큼 많은 양이 모두 수출 승인을 받을 수는 없다”며 ”1단계에서는 (30개 업체중) 5~6개만 승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가스공사 출신으로 현재 미국 엘엔지 기업 셈프라의 수석엔지니어인 피터 정(정만진)은 “지난해 세계 엘엔지 교역량은 2억5000만t정도였고 2030년에는 5억t이 될 것으로 추산되는 데, 이때 미국이 1억t을 수출하리란 전망치를 고려하면 미국이 세계 엘엔지 교역의 약 2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세계 최대의 엘엔지 생산국인 카타르의 연 수출량 7700만t보다도 많다”며 “미국이 셰일가스를 액화해 엘엔지 수출을 본격화하면 세계 가스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지만, 미국이 셰일가스 수출을 추진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전략과 관련돼 있다. 세계에서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고 중동,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가스 수출은 이미 세계 에너지 시장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가스 수출국으로 변신할 채비를 하는 사이, 캐나다·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도 주요 시장인 아시아를 붙잡으려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는 지금까지 국제 에너지 시장을 좌우해온 러시아와 중동국가들의 에너지 패권을 뒤흔들게 된다. 러시아는 유럽국가들이 사용하는 가스의 4분의 1 이상을 공급하며, 이를 무기 삼아 유럽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아시아 국가들은 공급국들의 요구대로 석유 가격에 연동한 비싼 가격으로 장기계약을 맺어 가스를 들여와야 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가 본격적으로 셰일가스 수출을 시작하면 이런 구조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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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에너지 기업인 프리포트엘엔지의 마이클 스미스 사장이 지난 10월 말 휴스턴 본사에서 인터뷰하며 셰일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시설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휴스턴/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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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에너지
입자가 미세한 진흙이 퇴적된 뒤 탈수돼 굳은 암석인 진흙퇴적암층(셰일)에 스민 천연가스가 셰일가스이고, 석유는 셰일오일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수평채굴법과 수압파쇄 등 기술 발전에 따른 개발로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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