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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1 10:51 수정 : 2019.12.12 02:45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 겸 외무장관이 10일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대량학살 혐의를 다루는 재판이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출석해,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로힝야족 학살’ 다룬 국제사법재판소 출석
미얀마 정부 대표로 학살혐의 등 변호 나서
수치, 불교도·군부 의식해 ‘인종청소’ 부인
노벨평화상 받은 민주주의·인권 상징 무너져“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 겸 외무장관이 10일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대량학살 혐의를 다루는 재판이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출석해,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던 아웅산 수치가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옹호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은 10일과 11일, 로힝야족 대량학살 혐의를 받는 미얀마 정부를 변호하기 위해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에 출석했다. 15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군부에 맞서 민주주의 투쟁을 벌여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수치가, 사실상 대량학살의 피고로 전락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10일은 28년 전 오슬로에서 수치 고문의 장남이 노벨 평화상을 대리 수상한 날이다.

미얀마 군경은 2017년 자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수천명 살해했으며, 70만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 가는 난민 사태를 야기했다. 로힝야 사태는 미얀마 정부의 실질적 한 축인 군부가 강경 대처한 결과지만, 미얀마의 다수민족인 버마족 불교도들도 로힝야족에 대한 강경 조처를 반대하지 않고 있다. 수치 역시 로힝야족 문제에서는 다수 국민의 정서에 동조하는데다, 군부와의 협조적인 관계를 의식해 미얀마 정부의 조처를 지지해왔다.

법정 출석 첫날인 10일, 수치는 옹호의 여지가 없는 학살을 방어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일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치는 심리 과정 내내 책상 위에 손을 얹은 채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미얀마 정부의 학살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자 수치는 긴장하는 듯 보였으며, 눈을 빠르게 껌벅거리면서 때때로 재판정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샹들리에를 쳐다보기도 했다.

수치는 심리 이틀째인 11일엔 ‘학살’이 극단주의 세력들의 위협을 막기 위한 정당한 조처였다는 미얀마 정부의 주장을 변호했다. 그는 “일부 사례에선 미얀마군이 국제인도주의법을 무시한 채 부적절한 힘을 사용하고, 전투요원과 민간인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범죄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진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얀마는 내부 무장 갈등에 대처하고 있는 것”이라며 로힝야족 탄압을 ‘내부 문제’로 돌린 뒤 “집단학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이번 재판은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의 지지를 받아 서부 아프리카의 감비아가 제소하면서 성사됐다. 감비아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미얀마 군부가 2016년 10월 및 2017년 8월까지 로힝야족에 대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종)청소 작전”을 시행했다고 고발했다.

감비아의 법무장관인 아부바카르 탐바두는 이날 법정에서 “감비아가 요구하는 것은 이런 몰상식한 살해, 우리의 집단양심에 계속 충격을 주는 이런 야만적 행위, 자국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 등을 멈추라고 미얀마에 명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량학살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진행된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이번 재판에서 피고는 수치가 아니라 미얀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얀마의 지도자인 수치가 로힝야 사태를 막기 위해 그의 권력과 도덕적 권위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심지어 그는 일부 사실로 확인된 미얀마군의 ‘인종청소’ 보도와 주장을 가짜 뉴스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에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해 여러 국가 및 단체가 인권 관련 수상이나 명예시민증 수여 등을 없던 일로 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미얀마를 유죄로 판결해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수치나 미얀마 군부 인사들을 체포하거나 재판에 세울 수 없다. 그러나, 유죄판결은 미얀마에 대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국제사법재판소와는 별도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로힝야 사태에 책임이 있는 개인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어서 수치까지도 번질 수 있다. 지난 11월 수치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자신이 외무장관으로서 직접 출석해 미얀마의 혐의를 반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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