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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8 20:07 수정 : 2019.04.29 08:51

극단 이슬람 NTJ, 군·경 급습받자
자녀와 함께 집단자살…15명 숨져

영국 식민지 ‘분리 통치’ 여파
싱할라족-타밀족 26년 내전 속
불교·힌두교의 종교 박해 겹쳐
이슬람 근본주의·IS 영향 커져

“(진압 직후) 수색에서 15명의 주검을 발견했다. 그 중에 3명은 여성, 6명은 어린이였다.”

부활절(21일)에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스리랑카 연쇄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5일 만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군·경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15명이 숨졌다. 루완 구나세카라 스리랑카 경찰청 대변인은 27일 “어젯밤 동부 해안 칼뮤나이 근처 마을에서 극단주의 세력이 은신한 민가를 급습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 건물 안에서 세 차례 폭발이 일어나 1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당국은 극단주의 단체 조직원들이 폭탄을 터뜨려 집단적으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스리랑카 기독교인들이 28일, 일주일 전 폭탄테러가 발생한 수도 콜롬보의 성안토니오 교회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콜롬보/EPA 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은 부활절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NTJ) 지도자 자흐란 하심(모하메드 자흐란·40세가량)의 아버지와 두 형제가 이번 폭발로 숨졌다고 이들의 친척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3명은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에서 “불신자들을 파괴하자”며 지하드(성전)를 부르짖는 장면이 나오는 이들이다. 경찰은 이날 극단주의 세력이 은신한 다른 민가에서 7명을 체포하고 자살폭탄 조끼, 폭발물, 드론, 이슬람국가(IS) 깃발, 폭발물 위력을 키우기 위한 쇠구슬을 압수했다.

스리랑카 연쇄 테러의 주모자로 지목된 자흐란 하심.
기독교도와 외국인 253명의 목숨을 빼앗은 스리랑카 극단주의 단체가 어린 자녀들까지 희생양으로 삼고, 추가 테러의 우려까지 커지면서 이들의 범행 동기 및 배경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가 주범으로 지목한 자흐란의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는 스리랑카 동부의 무슬림 거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조직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근본주의적 이슬람 교리인 와하비즘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무슬림들의 과격화에는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긴 내전(1983~2009) 기간에 받은 고통도 배경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들어 다수파인 불교 쪽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등 타종교에 대한 노골적 박해에 나서자 이슬람 극단주의가 파고들 공간이 생겼다.

스리랑카 인구의 74.9%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기원전 5세기께 인도 북부에서 이주해온 이들로 추정된다. 타밀족은 고대에 인도 남부에서 건너온 이들(스리랑카 타밀족)과 영국 식민 통치기에 홍차 재배를 위해 강제로 이주당한 이들(인도 타밀족)로 구성됐다. 영국은 스리랑카를 식민통치하며 소수파 타밀족이 다수파 싱할라족을 지배하는 ‘분리 통치’ 정책을 추진했다. 싱할라족은 농촌에서 가난한 생활을 강요당한 반면, 타밀족은 상대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아 관료가 되거나 상업에 종사하며 부를 쌓았다.

스리랑카가 1948년 영연방 내 자치령으로 독립하자 잠복해 있던 민족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1956년 집권한 솔로몬 반다라나이케와 그가 59년 암살당한 후 정권을 이어받은 아내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가 이끈 스리랑카자유당은 싱할라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삼는 등 싱할라족 우대 정책을 편다. 타밀족은 이에 반발해 1972년 타밀엘람해방호랑이를 창설해 무장투쟁에 나섰다. 두 민족은 1983년 타밀족의 싱할라족 병사 13명 살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내전에 빠져든다.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중간에 낀 무슬림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군은 무슬림 청년들을 타밀족 진압에 투입해 ‘총알받이’로 활용했다. 타밀족도 1990년 10월 ‘민족 정화’를 명분으로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반도에 모여 살던 무슬림들에게 48시간 안에 떠나라고 명령하는 등 박해를 가했다. 무슬림 9만5천여명이 강제 이주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이 행방불명됐다.

내전이 끝난 뒤 이어지던 ‘불안한 평화’는 몇해 전부터 본격화된 싱할라족의 극우 민족주의로 훼손되기 시작했다. 극렬 불교 단체가 무슬림 등 다른 종교를 상대로 한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곳곳의 무슬림 주택과 사원이 공격을 받았고, 일부 무슬림들이 불길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런 혼란 속에서 자흐란 등 일부 무슬림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평화를 사랑하는 스리랑카의 온건 무슬림’이란 이름의 단체는 2014년 낸 성명에서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를 겨냥해 무슬림 공동체에 “빠르게 번지는 암”같은 존재라고 비난했다.

이미 극단주의로 접어들던 이 단체에 2~3년 전 이슬람국가(IS)가 촉수를 뻗어왔다. 인도 정보기관이 이슬람국가 정보원을 심문해, 이슬람국가 조직원들이 자흐란을 교육하고 사상적으로 급진화시켰다는 자백을 받어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스리랑카 수사 당국은 자흐란이 2년 전 잠적한 뒤 인도로 건너가 이슬람국가와 접촉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의 ‘일그러진 분노’로 인해 스리랑카 무슬림들은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됐다. 한 30대 무슬림은 28일치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위협을 받고 고향 네곰보에서 콜롬보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콜롬보의 한 모스크 관계자도 “무슬림들이 집주인에게 쫓겨나거나 가면을 쓴 이들에게 폭행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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