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0 19:12
수정 : 2019.03.2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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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19일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에서 대통령직 사퇴를 선언했다. 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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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철권 통치 나자르바예프 전격 사임
소비에트 시대 출신 마지막 권력자 퇴장
반발 고조·질병에 ‘소프트랜딩’ 택한듯
탈소련 5개국 변화에 영향 끼칠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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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19일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에서 대통령직 사퇴를 선언했다. 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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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시대 출신의 마지막 권력자’이자 ‘중앙아시아의 스트롱맨’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79)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 지역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된다.
30년간 집권한 나자르바예프가 텔레비전 연설로 사퇴를 선언한 이튿날인 20일 오전 6시부터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상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나자르바예프는 2017년 초부터 대통령 권한, 특히 경제 분야의 정책 결정권을 단계적으로 의회에 이양했다. 그는 1989년 소련 시절 카자흐스탄공화국 제1서기가 된 뒤 이듬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나자르바예프는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직과 집권 누르오탄당 대표직은 내놓지 않아, 실권은 상당 부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토카예프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자신의 장녀 다리가 나자르바예바 상원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각 정치 계파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면서 점진적으로 실질적 권력 승계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퇴 선언문에서도 “나는 여러분과 계속 함께할 것이다. 나라의 필요 사항과 국민은 계속 나의 관심사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스스로 “쉽지 않은 결정”을 발표한 이튿날, 토카예프 권한대행도 ‘건국의 아버지’가 권력의 중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토카예프 권한대행이 수도 아스타나를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따 ‘누르술탄’으로 개명하자고 제안하고, “그의 의견이 정책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나자르바예프의 딸과 사위 등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거나 거대 기업군을 소유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전격 사임은 에너지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이 유가 하락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뒤 시위가 잇따르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소프트 랜딩’을 도모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건강 악화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에서 소비에트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권력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그가 퇴장의 길로 접어든 것은 크든 작든 이 지역의 체제와 정치에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중앙아시아는 동유럽과 같은 시기에 탈소련화의 길을 걸었지만 장기 독재, 인권 탄압, 부패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60년대에 대거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 발표된 미국 프리덤하우스 보고서를 보면, 민주화 진전을 1~7까지의 점수(낮을수록 민주화 진척)로 표시했을 때 중앙아시아 5개국인 투르크메니스탄(6.96), 우즈베키스탄(6.89), 타지키스탄(6.79), 카자흐스탄(6.71), 키르기스스탄(6.07)은 최하위권에 속했다.
5개국 중에서도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변화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역시 소련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권력을 15년간 유지하던 아스카르 아카예프를 2005년 튤립혁명으로 몰아낸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016년 취임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우즈벡의 봄’으로 불리는 개혁·개방 정책을 편다. 그는 27년간 집권하고 뇌출혈로 숨진 전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정치범 석방 등의 조처로 일단 인기를 얻고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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