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8 14:10
수정 : 2019.01.2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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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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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 구조적 위기에 접어들었는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미 언론 “백악관 동맹의 중요성 고려하지 않아”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치밀한 중재 노력과 큰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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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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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 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과 일본군 초계기의 ‘위협 비행’ 논란으로 한-일 관계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졌지만, 예전과 달리 양국 갈등을 중재하려는 미국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 직접 대화로 한-미-일 3각 동맹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데다, 국익과 직접 관련 없는 외부 갈등에 대한 관여를 줄여가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미국 우선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27일 전직 관료들을 인용해 그동안 한-일 간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중재해 오던 미국이 “지난 다보스 포럼 때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며 “백악관이 동맹을 조정하고 유지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2~25일 열린 이 포럼 기간에 강경화 외교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미국의 중재 없이 마주 앉았지만 “소통과 교류를 지속해 나가자”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방송은 이를 지적한 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지난달 내놓은 사임 서한에서 이 점(동맹을 중시하는 태도)을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이 다른 부분이라고 지적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부작위’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비교하면 매우 도드라진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갈등하자, 이를 조정하기 위해 치밀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3개국 정상회의를 열겠다고 선언하며, 두 정상을 ‘반 강제적’으로 한 책상 앞에 앉혔다. 이후에도 웬디 셔먼 당시 국무부 사무차관이 2015년 2월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긴 쉽다”며 양국을 향해 작심 발언을 날렸고, 애슈턴 카터 전 국방장관은 4월 “한-일 협력에 의한 잠재적 이익이 과거의 긴장이나 지금의 정치 상황보다 중요하다”고 관계 정상화를 거듭 요구했다. 미국의 이 같은 중재의 결과가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와 2016년 11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였다.
그러나 최근 한-일은 ‘말’로 하는 역사 논쟁을 넘어 양국 군 당국이 동해와 남해 해상에서 직접 대치를 하는 심각한 갈등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미국의 관여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자 정경두 국방장관은 8일 패트릭 새너핸 국방장관 대행과 전화회담,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16일 직접회담에 나서는 등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며 자국에 유리한 외교 환경을 만들려 노력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미국 국방부는 한-일 장관의 전화회담에 대해선 자료를 내지 않았고, 미-일 장관의 회담과 관련해선 한-일 혹은 한-미-일 3각 동맹에 대해선 침묵한 채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기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한-일 갈등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그대신 한국에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일본에 대해선 시장 개방을 위한 상품무역협정(TAG) 체결을 압박하는 등 오로지 자국의 ‘단기적 국익’만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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