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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6 14:22 수정 : 2018.08.07 14:10

영화 ’카운터스’에 등장하는 도쿄 집회 장면.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도쿄"라고 적혀 있다.

일 우익 혐한 심해지자 일어난 시민운동 ‘카운터스’
“인종 차별 말라” “혐오 없는 일본에 살고 싶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이끈 과정 다큐 제작돼 8월15일 개봉
“일본에 차별주의 대항하는 사람 많다는 걸 한국도 알았으면”

영화 ’카운터스’에 등장하는 도쿄 집회 장면.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도쿄"라고 적혀 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두 가지 개념이 있다.

#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ヘイトスピ?チ) : 일반적으로 특정 인종·민족·국적·출신 지역·종교·성 정체성·성적 지향·장애 등을 이유로 공격할 목적으로 하는 혐오 발언이나 연설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혐한 집회가 늘어나면서 이 단어가 알려진 탓에,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말로도 통용된다.

# 재특회 : ‘재일 한국인들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 해방 전 이주한 한국계 이민자들의 자손 가운데 일본 국적 귀화자 외에 한국 국적 귀화자이거나 무국적(조선적)인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특별 영주 자격이 다른 외국인들과는 다른 특권이라며 박탈하자는 것이 주된 주장이다. 2007년 설립한 극우 민족주의 단체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을 겨냥한 혐오 집회가 극에 달한 것은 2013년 무렵이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6년 5월, 일본 참의원(상원)에서 특정 민족, 즉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됐다. 법안 통과에는 재일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 내 소수 민족들, 성소수자들, 그리고 일본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내가 사는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일본인 활동가 이토 다이스케씨와 시마자키 로디씨, 그리고 가까이에서 이들의 운동 과정을 기록해 영화 <카운터스>를 만든 한국인 이일하 감독을 지난 1일 서울에서 만났다. 운동 모임인 ‘카운터스’의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이토 다이스케씨는 사업가다. ‘카운터스’의 활동을 사진으로 찍어온 시마자키 로디씨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일하 감독은 일본에서 18년 동안 외국인으로 살았다. 영화 <카운터스>는 오는 8월1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차별

-이일하 감독님은 18년 동안 일본에서 한국인이자 외국인으로 살며 차별이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나요?

이일하 감독 : “외국인으로, 특히 아시아계 외국인으로 겪는 약점은 항상 있었어요. 일본에서는 경찰이 길에서 불심검문을 하거든요. 그런데 말하는 거 보면 외국인인 걸 금방 알잖아요. 그러면 그때부터 (검문이) 길어지는 거예요. 일본인은 신분증만 보고 가라고 하지만 외국인이면 가방 뒤지고, 주머니 뒤지고, 한 30분을 호구 조사한 뒤에 아무 것도 없으면 그때서야 가라고. 하루에 서너 번 당한 날도 있었어요. 서양인들한테는 안 그래요. 아시아인한테 더 엄한 게 있어요. 말로 비하 표현을 듣는 일은 거의 없어요. 옛날 기억이 있는 어르신들이 “조센징”하면서 비하하는 걸 들은 적은 있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걸 표현하지는 않아요. 일본은 뒤에서는 욕한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건 수준 낮은 걸로 보는 문화라서요. 하지만 이번에 재특회 집회를 취재하면서 그 현장에서는 많이 느꼈죠. 신체적인 위협도 느꼈고.”

-이토 다이스케씨, 시마자키 로디씨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목격한 적이 있으신가요?

이토 다이스케(이하 ‘이토’) : “제가 사는 현에는 재일 한국인이 별로 없어서 그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 안 건 영화 <박치기>를 보고서예요.”

영화 <박치기> 중에서. 일반 고교와 조선학교 학생들이 함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 <카운터스>에는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학교의 치마 저고리 교복을 입고 길에 나가보는 실험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마자키 로디(이하 ‘로디’) : “저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계속 살아서 주위에 재일 한국인들이 꽤 있었어요. 어릴 때 동네에 조선 소학교가 있어서 같이 어울려 놀았고, 어른이 돼서 생긴 친구들 중에도 재일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제가 일본인이다보니 차별 받는다는 인상은 못 받았어요. 만화나 뉴스를 보고 그런 게 있다고 들어서 알게 된 정도였죠. 그런데 2000년대에 들면서 그런 혐오 움직임의 규모가 커진 거예요.”

-처음 재일한국인 혐오 반대 집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뭐였나요?

이토 : “2013년이었어요. 재일 한국인 혐오 집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차에 트위터에서 노마 야스미치씨가 ‘한국인 차별하자는 혐오 데모가 있으니 방해하러 가자’고 글을 올린 걸 보고 멋지다고 생각하고 합류했어요.”

#노마 야스미치는 재특회의 혐오 집회 저지 운동을 시작한 카운터스 창설자다. 음악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던 중 재특회의 집회가 잇따르는 것을 보고 경찰에 “넷우익(인터넷 극우 세력) 집회를 허락하지 말라”고 전화했다가 “합법 시위는 막지 못 한다”는 답을 듣고 ‘혐오 집회 반대 집회’를 계획했다. 2013년 1월 트위터에 ‘시바키 부대(훈계부대)’를 모으자고 글을 올린 것이 카운터스의 시작이다. 노마는 원전 반대 집회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활동가로, 카운터스 초기 멤버들 중에는 원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로디 : “저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던 중에 양쪽 집회를 모두 보게 됐습니다. 어떻게 이걸 기록할까 고민하다가 행동대 ‘오토코구미’를 보게 됐어요. 이들의 의지나 행동을 제대로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카운터스 편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정하고 쭉 함께 해왔습니다.”

“다 때려눕히겠다”는 아군, 행동대 ‘오토코구미’가 등장하다

오토코구미 회원 몇 명이 집회 중 포즈를 취했다. 사진: 시마자키 로디
-카운터스 회원들 중에는 전직 야쿠자이면서 ‘폭력으로 혐오 세력을 때려눕히면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다카하시씨와 그를 대장 삼은 행동대 ‘오토코구미’가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시민 운동가가 됐는지 궁금한데요.

이일하 : “다카하시씨가 야쿠자를 그만두게 된 계기가 카운터 활동이에요. 사실 카운터스 회원들 대부분 직장인들이에요. 전업 운동가는 거의 없어요. 회사 끝나고 와서 문서 담당은 공문 쓰고, 디자인 잘 하는 사람은 팜플렛이랑 굿즈 만들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하다가 주말에 모여서 차별 반대 집회를 하는 식이었어요. 다카하시씨가 (평범한 직장인들의) 그런 활동들을 보고 ‘아,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이쪽 세상에도 있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릴 때 야쿠자들 보고 멋있다고 느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걸 보고 야쿠자가 됐다가 이제 마침 그만두려던 차에 카운터스를 만난 거죠.”

-다카하시씨는 스스로를 ‘우익’이라고 소개하잖아요. 첫 인상이 어떠셨나요?

이토 : “재특회 집회에도 나갔었다고 해서 저랑은 적대적인 관계였어요. 그런데 익명 뒤에 숨지도 않고, 저 사람과는 뭔가 대화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처음 말을 하게 됐죠.”

이일하 : “다카하시씨는 “내가 진정한 우익”이라고 말해요. 그냥 우익이 아니라 ‘진정한 우익.’ 우익 단체 같은 데 가담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는 애국자니까 그렇다고 말하는 거예요. 전쟁은 반대하지만 선조들에 대한 예의라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거고요. 재특회 집회에 직접 가보고 나서 ‘이 녀석들 가만 두면 안 되겠네’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카운터스에 들어가고 행동대를 만들었다고 해요. ‘나는 정의가 뭔지 모르지만, 걔네들이 하는 짓은 못 봐주겠고, 그래서 주먹을 써서 날려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카운터스 안에서도 (오토코구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영화 〈카운터스〉에 등장한 혐오 집회 모습.

소위 ‘넷우익’이라 불리는 그들이지만, 한때 검은 자동차를 몰면서 일본 거리를 시끄럽게 했던 옛날 우익단체와는 주장도 수단도 많이 다르다(공통점도 많지만). 실제로 ‘재특회’를 비판하는 우익도 있다. … (중략) .. . “우익인데 왜 ‘넷우익’의 시위를 반대하는 겁니까?” 야마구치 유지로씨(28)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들은 애국자가 아니잖아요? 남의 아픔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놈들은 진정한 우익이 아니죠. 일본을 사랑하고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면 왜 남의 심정을 짐작 못합니까? 한국인도 미국인도 자기 나라나 고향을 자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들을 각성시키고 싶은 거죠. 차별하면서 애국자라니 말도 안돼요. 저는 ‘애국심의 폭주’를 멈추고 싶을 뿐입니다.”
-2014년 3월 허프포스트 일본판 기사 ’일본 우익 청년이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이유’ 중에서

-폭력을 써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집회하는 것에 대해서 내부에서 정말 반대가 많았을 것 같아요.

이일하 : “처음이고 끝이고 계속 반대가 있었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행동대인 오토코구미 덕에 집회에 나오기 쉬워졌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처음에 혐오 반대 집회에 나선 사람들은 수가 적어서 혐오 집회 나온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맞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토코구미는 일단 맨 앞에서 혐오 집회와 카운터스 사이에 서 주고, 또 이미지 싸움을 해요. 건장한 사람들이 나가서 처단하겠다고 욕을 하는 거죠. 실제로 혐오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때려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선 훨씬 더 무서운 이미지를 띄우는 거죠. 그러니까 저쪽에서 무서워서 앞으로 못 나오기도 하고, 이쪽에선 든든해져서 우리도 나갈 수 있겠다, 하고 참가자가 늘기도 했어요.”

이토 : “반대가 많고 폭력성에 대한 비난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나서서 상대 쪽의 폭력을 말려주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2016년 MBC 다큐스페셜에서 방송된 다카하시의 인터뷰 장면 갈무리.

실제로 오토코구미 활동을 하면서 재일 한국인 상인들이 감사하다고 할 때마다, 다카하시는 멋쩍어했다. “가부키초에서는 상인들이 날 슬슬 피하는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다녔다고.” 돌아서며 작게 내뱉는 한 마디가 다카하시의 예전 생활을 짐작하게 했다. 다카하시의 생활은 오토코구미를 만들면서 180도 변했다. 시위 현장에서 다카하시를 마주칠 때마다 의아한 것이 있었다. 종종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다카하시는 급히 오느라 옷조차 갈아입기 어려울 만큼 직장 생활 때문에 바빴다. 시간을 내기도 어렵지만, 카운터스 활동을 하느라 들어가는 교통비도 부담스러울 만큼 빠듯한 수입이라고 했다. 야쿠자로 살 때는 경험하지 못한 생계 걱정이었다.
-책 <카운터스>(이일하 씀, 2017) 중에서

연대로 이끌어낸 ‘혐오 발언 제지법’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LGBT 운동 진영과 일본 내 다른 소수민족 쪽에서 재일 한국인 차별 반대를 위해 카운터스와 연대하는 장면입니다. 연대가 이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시나요?

이일하 : “카운터스 멤버 중에 성소수자가 실제로 많아요. 그 분들은 한국에서 퀴어퍼레이드 할 때마다 행진하는 차를 타러 옵니다. ‘나도 소수자고, 재일 한국인도 소수자다, 수 적은 사람들끼리 힘을 모으자.’ 연대를 해야 힘이 생기잖아요. 서로 의지도 되고, 전략적으로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고요. 원래 이렇게 모이면 그 안에서 싸움도 많이 일어나는데, 카운터스는 인종주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콘셉트 하나로 잘 모였어요. 이 운동은 연대로 굉장히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주위의 일본인들은 카운터스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이토 : “제 친구들은 제가 현장에 나가는 걸 봤기 때문에 집회에 와주기도 하고, 서명을 받아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도 좋아해줬죠.”

로디 : “제 친구나 지인들은 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일본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겪는 일이 아니니까요. 또 인권 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요.”

이토 다이스케씨. 영화 <카운터스> 중에서.
과연 어떤 게 ‘혐오 발언’일까?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된 게 2016년 5월입니다. 법이 생기면서 ‘헤이트 스피치’, 즉 ‘혐오 발언’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어본 일본인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일하 : “그렇죠. 사실 일본에서 ‘유행어대상’이라고, 연말에 1년 동안 뜬 유행어 순위를 톱 10위까지 매기는 행사가 있는데 2013년에 ‘헤이트 스피치’가 들어갔어요. 이후에 법이 생기고 언론 보도가 많이 되니까 관심이 더 높아진 계기가 됐죠.”

#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원 명칭은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처의 추진에 관한 법률’. 2016년 5월 여야 합의로 일본 참의원을 통과했다. 일본 법무성은 법이 생긴 배경에 대해 “특정 민족이나 국적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차별적 언동, 증오 연설은 사람들에게 불안감이나 혐오감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손상시키거나 차별 의식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인종이나 국적의 사람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하자고 선동하거나, 직접 해를 끼치는 행동을 없애자는 법이다. 일본 법무성은 “ㅇㅇㅇ(지역명) 사람은 나가라”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 “죽여라” “바다에 던져라” 등을 혐오 발언의 예로 누리집에 적어두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도 처벌이나 구금이 따르는 ‘금지법’이 아니라는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 그러나 혐오 발언에 대한 문제 의식을 법에 명기해 놓았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참고: 일본 법무성 누리집)

영화 <카운터스> 중에서. 경찰 저지선 바깥으로 혐오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서 있다.
영화 <카운터스> 중에서.
-‘헤이트 스피치’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도 ‘혐오 발언’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요.

이토 :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헤이트 스피치가 ‘표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욕이나 나쁜 단어 같은 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확히 말하면 인종이나 젠더 측면에서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냥 욕과는 다릅니다.”

로디 : “저는 헤이트 스피치란 ‘차별을 선동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다수자’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선동하기 때문에 (표현의 범주를 넘는) 질이 나쁜 표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일하 “인간이 혐오의 감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걸 도로에 나와서 발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까지 국가가 관리하면 안 되지만, 밖으로 나와서 표현할 때는 그 표현하는 행위에 의해서 실질적인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어, “조선인은 죽어라”, “가스실에 넣자”는 표현은 무섭거든요. 저도 무섭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게 피해죠.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혐오 발언 피해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혐오 발언이 없는 사회가 제가 살기에 더 좋은 사회 같아요. 옆에서 누군가가 “ㅇㅇ를 죽여라”라고 말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를 생각해보면. 최근 한국을 생각해봐도 ‘예멘 난민들은 나가라’는 집회가 있는 사회보다는 그런 집회가 없는 사회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법안 통과 당시에 ‘표현의 자유 침해’가 문제가 됐었습니다.

이일하 :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반대하는 쪽의 근거였어요. 법조계에서도 반대한 사람이 많았고요. 야당, 진보 쪽에서도 이거 좀 심한 거 아니냐고 반대해서 처음엔 힘들었죠. 그런데 여당, 야당 하나씩 설득하고 끌어들여서 여야 합의로 통과가 됐어요. 마지막에 반대표 던진 쪽은 헤이트 스피치 제지에는 찬성하지만 한국인뿐 아니라 오키나와, 홋카이도의 소수 민족도 다 포함하는 넓은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념적으로 반대한 거였고요. 그런데 그 분들도 사실은 법안 만들 때 많이 도움주셨던 분들이에요.”

이일하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법안 통과를 계기로 일본 내 분위기가 실제로 바뀌었나요?

이일하 :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은 그걸로 벌금을 때리거나 잡아가둘 수는 없어요. 다만 국회에서 ‘혐오 발언이 나쁜 겁니다’라고 말을 해둔 거예요. 이게 어떤 의미가 있냐면, 재특회가 집회 신고하면서 어떤 도로나 정부 소유 건물을 쓰겠다고 신청하는데 지방정부가 그걸 빌려주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거예요. 또 경찰들도 예전엔 집회가 열리면 카운터스 쪽을 제지했어요.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말썽 안 생기고 잘 끝나서 조용히 들어가게 하는 게 목표니까. 그런데 이 법이 생긴 후에는 재특회가 하는 합법 집회에서 혐오 발언이 나왔을 때 경찰이 그쪽을 제지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예요. 또 일반인들에게도 ‘이런 법이 생겼습니다,’ 하고 홍보물 같은 게 나오니까 ‘이게 나쁜 것이구나’ 하는 인식이 좀 향상됐다고 할까요?”

로디 : “사실 이 법이 생기기 전이나 후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봐 왔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아주 나아졌다고 할 순 없고요. 앞으로 나아지는 걸 보고 싶습니다.”

이토 : “2013년에 처음 카운터스 활동을 시작할 때는 법을 만드는 데 10년, 20년 걸릴 거라고 생각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동안 계속 활동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힘도 빠졌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법이 제정된 거거든요. 상상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 법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힘을 발휘하고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동영상과 가짜뉴스로 활동 범위 넓힌 ‘넷우익’

-카운터스는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나요?

이일하 :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모이고 있어요. 혐오 집회 참가자들이 이제는 “조선인 죽어라”는 말은 안 하지만, “돌아가십시오” 이런 식으로 비꼼을 섞은 표현으로 바꿔서 지금도 집회를 하거든요. 다만 그 쪽도 세력이 저하됐고, 카운터들도 훨씬 적은 사람들이 나가죠. 그 중에 한 팀은 일본 입국관리국에서 심한 처우를 받은 외국인이 스스로 목숨 끊은 사건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항의를 입국관리국 앞에서 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이슈는, 얼마 전에 자민당 의원이 LGBT(성소수자)에 대해서 한 차별 발언이라 그것에 항의하는 집회도 하고 있어요.”

자민당 스기타 미오 의원은 지난 7월, 아이 낳지 않는 성소수자는 생산성이 없으므로 세금 쓰는 게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해 논란이 됐다. 자민당은 논란 일주일 만에 누리집을 통해 “자민당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며 스기타 의원에 주의를 주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토 : “지금은 현장에 나가기보다는 다른 쪽 일들을 해요. 재특회가 이제 정치에 눈을 돌리고 있거든요. 재특회 창설자인 사쿠라이 마코토도 도쿄 시장 선거에 나왔었고요. 이제는 그 사람들의 선출을 어떻게 막느냐,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IMAGE11%%] 로디 : “저도 한국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는 혐오 집회도, 혐오 반대 집회도 참가자가 많이 줄었다고 말하긴 했는데요. 그게 정확한 대답은 아닙니다. 카운터 활동이라는 게 겉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굉장히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거든요. 지금 법을 (더 넓게) 개정하려고 국회의원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가 사는 곳에 혐오 반대 집회가 오지 않게 동네 차원에서 막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토씨는 트위터로 자신을 협박한 차별주의자들과 재판을 벌이고 있는 중이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넷우익들의 동영상을 삭제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카운터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토씨는 어떤 재판을 하고 계신 건가요?

이토 : “지금까지 총 세 건의 재판을 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을 협박해서 제가 차별 집회 반대 활동을 못 하게 만들려던 사람에 대한 재판도 있었는데 둘 다 승소했고요. 세 번째는 다음 달에 판결이 납니다. 명예훼손 고발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쪽에서 한 일은 본인들이 차별을 계속 하려고 차별을 반대하는 저를 막으려고 한 활동이었죠.”

-재특회의 지지 세력 다수가 ‘넷우익’이라고 하죠. 차별주의자들이 ‘호슈소쿠호(보수속보)’라는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고요.

이일하 : “일본 젊은 세대들이 많이 우경화됐어요. 재특회가 처음 목표로 잡은 게 인터넷이었거든요. 특히 동영상. 우익들이 가짜뉴스 같은 걸 발신하면서 인터넷을 많이 잡고 있어요.”

이토 : “(재일한국인 활동가) 리신혜씨가 그 사이트에 광고를 붙이지 말자는 소송을 해서 최근에 승소했어요. 혐오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승소해서 지금은 그 사이트에 광고가 하나도 없는 상태예요.”

[%%IMAGE12%%] “혐오 발언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매우 미묘한 문제다”

-이일하 감독님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두 곳에서 모두 긴 시간을 사셨는데요. 한국에도 법으로 혐오 발언을 제지하는 게 필요할까요?

이일하 : “굉장히 미묘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O, X를 선명하게 가를 수 없고 상황에 따라서, 표현에 따라서 다를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죠. 예를 들어, 사회 구성원이 100명인데, 99명이 생각하기에 이상한 논리가 나왔다고 쳐요. 그렇다고 그 논리를 법으로 누르는 건 잘못 된 거죠, 논리는 반박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을 괴롭히거나 상처를 주는 순간에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에 재일 한국인들이 동네를 이루고 사는 곳이 있는데, 그런 데 가서 재특회가 집회하는 것 같은 경우가 그래요. 시민사회에서 자정이 되지 않는다면 법의 힘을 빌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예멘 난민을 어떻게 대하느냐, 받아주느냐, 혹은 얼마나 받아주느냐에 대한 주장들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아까 말씀하신대로 난민 수용 반대 집회도 열렸고요.

이일하 : “한국은 국제적인 위치에 있고, 또 동의해서 만든 난민법이란 게 존재하잖아요. 그냥 법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까, 외국에서 이런이런 대우를 받기를 원하면서 우리는 왜 그런 대우에 걸맞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지, 싶어요. 난민 반대하는 댓글 보면서 어떻게 재특회가 우리한테 했던 말이랑 이렇게 똑같냐고 생각했어요. “조선인들이 맨날 여자 성폭행하고 다닌다”, “조선인 늘면 범죄율 늘어난다”는 말 등 재특회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놨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통계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제는 국제적인 세상이니까, 혐오는 그만하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하는 소감은요?

이토 : “사실 일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봐주길 바라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개봉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일본에 차별주의자도 많지만 대항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디 : “양국이 사이 좋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영화 <카운터스> 예고 영상

*인터뷰는 이일하 감독 따로, 이토 씨와 로디 씨를 통역과 함께 따로 진행했습니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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