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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8 09:45 수정 : 2018.03.18 09:53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⑦ 메콩강 변화의 현장 치앙샌

중국과 타이 정부의 폭파 위협을 받아온 메콩강의 콘피이롱 여울 지대. 정문태 제공
“메콩강 두 강둑 역사는 이어져 왔다/ 전설 속 한 피붙이인 타이와 라오스는 함께 살았다/ 이제 크고 작은 물고기들 역사는 자손도 없이 사라진다/ 남겨진 전설은 오직 전설일 뿐/(…)/ 메콩강은 슬퍼하고, 메콩강은 울고/ 타이와 라오스 두 강둑의 심장은 짓밟혔다.”

메콩강을 왼쪽에 끼고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치앙콩으로 가는 한갓진 길을 <메콩 롱 하이> 애타는 가락이 함께 달린다. 우리말로 ‘메콩이 운다’쯤 될 법한 이 노래가 10년 전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잠깐 인연을 맺었던 그 가수가 미워 흘려 넘겼다. 그러다 이번에 메콩강을 따라나선 김에 들어나 보자며 어렵사리 시디(CD)를 구했다. 이 노래는 ‘엣 카라바오’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윤녕 오파꾼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타이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카라바오그룹 리더인 윤녕은 1970년대 타이공산당 무장투쟁에 뛰어들어 라오스 국경을 들락거린 뒤,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성 짙은 노래를 불러왔다. 그 시절 타이의 일본화를 비판한 ‘메이드 인 타일랜드’ 같은 앨범은 4백만 장이나 팔릴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1992년 방콕 민주항쟁 때 앞장선 뒤로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날라리’로 변절했다며 욕도 많이 먹는데, 그만큼 기대가 컸던 인물이 아닌가 싶다. 내 미움도 그런 종류였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쓸데없는 미움들을 메콩강에 흘려보낸다.

메콩강의 중국화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타이와 라오스 국경 메콩강을 오가는 화물선 80%가 중국 선적이다. 정문태 제공

초록과 황토, 산과 강의 어울림

562년 중국 윈난에서 내려온 따이(Tai)족 군주 나카뿐 싱하누왓 나꼰이 세운 고대왕국 수도였던 메콩강 기슭 치앙샌을 거쳐 치앙콩으로 가는 국도 1290도 아주 고즈넉한 길이다. 지난주 이야기했던 버마 국경을 끼고 달리는 매사이-골든트라이앵글 국도 1041 못잖게 아름답다. 치앙샌에서 메콩강을 끼고 잠깐 달리다 보면 이내 사람도 자동차도 없는 산길로 접어든다. 요즘이야 속 시원한 길이 뚫렸지만 1970년대엔 타이공산당과 정부군이 치고받았던 곳이다. 제법 가파른 고개를 오르내리며 27킬로미터쯤 달리고 나면 왼쪽으로 다시 메콩강이 나타난다. 강 건너가 라오스다. 여기서부터 메콩강을 끼고 치앙콩으로 가는 10킬로미터를 국경도로의 백미라 부를 만하다. 빛깔을 쫓는 여행자가 있다면 여기를 권하고 싶다. 초록과 황토, 그 산과 강의 어울림은 서로를 지켜주면서도 넘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차오른다. 네댓 번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언제나 그 빛깔은 변하지 않는 어울림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메콩강 기운에 취할 때쯤이면 바위투성이 콘피이롱이라는 여울이 눈에 든다. ‘귀신이 길을 잃어버린 곳’이란 속뜻을 지닌 이 콘피이롱은 1.6킬로미터쯤 이어지는데, 물살이 워낙 세고 바위가 많아 배를 몰고 지나다닐만한 사공이 이제 열도 채 안 남았다고 한다. 이 험한 콘피이롱이 사실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온갖 물풀들이 자라고, 새들이 집을 짓고, 강사람들 먹을거리가 나오는 심장 같은 곳이다.

‘귀신이 길을 잃어버린 곳’ 뜻 지닌
물살 거세고 바위 많은 여울지대
강사람들 먹을거리 내주는 ‘심장’

중국의 ‘란창-메콩협력’ 발표 이후
바위 없애 뱃길 넓히려는 움직임
치앙샌 일대엔 중국 화물선만 오가

근데 이 콘피이롱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2016년 11월 중국 정부가 메콩강을 낀 중국, 버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아우르는 여섯 나라 상호연결과 협력을 내건 이른바 란창-메콩협력(LMC)을 들고 나섰다. 2014년 쿠데타로 튀어나온 타이 군사정부는 곧장 콘피이롱을 없애 뱃길을 넓히겠다고 화답했다. 그 결정은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메콩강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락치앙콩을 비롯한 메콩강 지역 스무 개 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2017년 한해 내내 메콩강은 온통 콘피이롱을 폭파하니 마니로 들썩댔다. 돌이켜보면 타이 정부가 콘피이롱 바위 폭파 계획을 흘렸다가 말썽이 나면 슬그머니 접곤 했던 게 20년도 더 된 일이다.

한마디로 이 콘피이롱을 없앤다는 건 중국 화물선들이 메콩강을 따라 버마와 타이를 거쳐 라오스 루앙쁘라방까지 다닐 수 있게 뱃길을 열겠다는 뜻이다. 메콩강을 오가는 최대 300톤짜리 배를 500톤짜리로 늘리겠다는 게 중국 꿈이다. 콘피이롱을 폭파하려는 까닭이다. 란창강이라 부르는 메콩강의 중국 쪽은 이미 걸리적거리는 바위들을 모조리 폭파했다. 중국 정부가 온 세상 땅과 바다를 한데 묶겠다는 이다이이루(一帶一路) 계획에 메콩강 뱃길을 밝힌 적은 없지만, 그 한 고리란 걸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앙쁘라방까지 일사천리 뱃길 열리나

중국의 소리 없는 전선이 바로 메콩강이다. 메콩강의 중국화, 치앙샌이 좋은 본보기다. 치앙샌은 메콩강 무역의 타이 쪽 심장인데, 2016년 세관을 거친 3500척 가운데 타이 화물선 딱 하나를 빼고는 모두 중국 화물선이었다. 7억400만 밧(240억 원) 수입품 99퍼센트가 중국제였다. 치앙샌은 중국 화물선을 겨냥해 2011년 대규모 제2항까지 열었고, 중국은 아예 치앙샌에 선착장 셋을 지닌 하치앙항을 독자적으로 꾸려왔다. 하치앙항 작업감독 수멧 마니안 말을 들어보자. “여긴 중국 배만 댈 수 있고 한 달에 100척쯤 드나든다. 중국에서는 주로 생강이나 호박 같은 채소를 싣고 들어온다. 되돌아가는 300톤짜리 배는 유류를 싣고, 500톤짜리 배는 냉동 닭과 돼지고기 같은 일반 화물을 싣는다.” 그동안 메콩강을 오가는 최대 화물선이 300톤으로 알려져 왔으나, 치앙샌까지는 이미 500톤짜리 배가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건 아주 새로운 사실이다. 왜 중국과 타이 정부가 치앙샌에서 3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이 콘피이롱 폭파에 목을 매는지 드러난 셈이다. 콘피이롱만 지나면 루앙쁘라방까지는 일사천리 뱃길이 열린다.

치앙콩을 코앞에 둔 콘피이롱에서 발길이 안 떨어진다. 강가에 앉아 한참 동안 바위를 보고, 물살을 본다. 바위덩어리가 애처롭게 보이는 건 난생 첫 경험이다. 운전기사 닦달 소리가 몇 번이나 등짝을 때린다. 약속 시간에 대려면 떠나야 한다는데, 콘피이롱이 놓아주질 않는다. 티벳을 떠나 인도차이나 여섯 나라를 거쳐 남중국해로 빠져나가는 435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7천만을 먹여 살려온 메콩강이 진짜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엣카라바오 노래마따나.

콘피이롱 잔상 속으로 치앙콩이 나타난다. 메콩강 전사를 빨리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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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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