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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0 11:21 수정 : 2018.03.10 11:50

‘범죄도시'란 별명이 붙은 킹스로먼스 카지노는 골든트라이앵글의 라오스 쪽 메콩강둑에 자리 잡았다. 지난 1월30일 미국 재무부와 마약단속국은 마약 밀매, 아동 성매매, 인신매매, 야생동물 판매 혐의로 이 카지노 대표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정문태 제공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⑥ 골든트라이앵글

‘범죄도시'란 별명이 붙은 킹스로먼스 카지노는 골든트라이앵글의 라오스 쪽 메콩강둑에 자리 잡았다. 지난 1월30일 미국 재무부와 마약단속국은 마약 밀매, 아동 성매매, 인신매매, 야생동물 판매 혐의로 이 카지노 대표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정문태 제공

매사이에서 타이와 버마 국경을 가르는 루악강을 왼쪽에 끼고 국도 1041을 달린다. 골든트라이앵글로 가는 이 30킬로미터 옛길은 타이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국경도로가 아닌가 싶다. 이 길을 천천히 달리다보면 생각도 느려지고 마음도 아늑해진다. 열두어 번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늘 그랬다. 이 길에 오르면 애써 가부좌 틀고 벽과 마주 앉을 일도 없다. 길은 세상 모든 인연이 오는 곳이고 가는 곳이며, 그 인연의 처음과 끝일 테니. 걸망 하나 달랑 매고 지는 해를 따라 이 길을 걷는 노승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20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걷겠다던 다짐을 또 미루며 오늘도 바쁜 취재를 핑계 삼아 자동차로 달린다. 대낮인데도 마주치는 자동차가 드물다. 3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기껏 열서너 대쯤 보았을까. 옛날부터 사람들은 버마 국경을 넘나드는 도둑떼가 설친다며 이 길을 잘 안 다녔다. 한 때 마약루트가 걸려 온갖 군벌들이 득실댔던 국경 무인지대니 그럴 만도 했지만, 이젠 다 흘러간 이야기다.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꾼들이 어느 길인들 마다하랴. 재주가 좋아 안 잡혔거나 사연이 있어 안 잡았거나, 어쨌든 한 10년 넘게 조용했다는 말이다.

타이-버마-라오스 세 나라 맞댄 지역
중국 국민당 잔당, CIA 비호 받으며
반공 대가로 아편 생산과 운용 특혜
군벌 쿤사와 치열한 패권 다툼 벌여

2000년대 들어 카지노 열풍의 진원지
라오스, 특구 지정해 ‘중화제국’ 건설
매매춘과 마약 밀매 등 ‘범죄도시’ 오명
헤로인·필로폰 생산기지 지위 여전

매사이와 국경을 맞댄 버마 쪽 타칠렉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쯤 함께 달려온 루악강 황토물이 거대한 메콩강으로 빨려 들어간다. 흔히들 이 두 강을 끼고 타이, 버마, 라오스 세 나라가 맞댄 곳을 골든트라이앵글이라 불러왔다. 근데 이 지명은 타이 관광업계가 선전용으로 만든 말이고, 사회·정치적 용어로 골든트라이앵글은 타이의 치앙라이주, 버마의 샨주, 라오스 북부를 아우르는 양귀비 재배 지역을 일컫는다. 좀 더 넓혀 타이 북부 전역과 중국 남부 윈난에다 베트남 북부까지 잡으면 한반도 다섯 배 가까운 95만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애초 이 골든트라이앵글이란 말은 1950년대부터 버마 마약 군벌들이 타이,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타칠렉에서 아편을 금괴와 바꿔가면서 생긴 별명인데, 기록으로는 1971년 미국 국무차관 마샬 그린이 마약 관련 기자회견에서 처음 쓴 게 아닌가 싶다.

솝루악 마을에서 본 골든트라이앵글. 사진 앞쪽 선착장이 타이, 왼쪽이 루악강 합류지, 한 가운데 주홍색 지붕 건물이 있는 숲이 버마, 오른쪽이 라오스다. 정문태 제공
한패로 엮인 자본과 정치의 조합

루악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곳, 좀 더 또렷이 말하면 동쪽 라오스를 마주보는 마을 반솝루악 들머리가 그 관광용 골든트라이앵글 전망대쯤 되는 셈이다. 강 하나를 끼고 한 자리에서 세 나라 국경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여기에 서면 도도한 메콩강 기운도 느낄 수 있고 다 좋은데, 딱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 있다. 북으로 한 2킬로미터 떨어진 버마 쪽 완쁘흐삭에 똬리 튼 요새처럼 생긴 투박한 건물이 풍경을 삼켜버린다. 전망대에서 한 가운데라 안 보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흉물덩어리가 골든트라이앵글 파라다이스 카지노다. 애초 타이꾼들을 겨냥한 이 카지노는 2000년대 초부터 버마 군사정권과 손잡은 타이 정치인 쁘라싯 포타수톤의 돈세탁용 기지라며 말들이 많았다. 골든트라이앵글을 마카오처럼 만들겠다는 이 ‘포타수톤 패밀리’가 메콩강을 따라 불어 닥친 카지노 열풍의 시조쯤 되는 셈이다. 메콩강과 카지노, 이 불쾌한 조합은 자본과 정치가 한패로 그려낸 최악의 국경 풍경화다.

솝루악 마을로 들어서면 보물선에 앉은 대형 부처, 아편박물관, 호텔, 기념품 가게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300미터 남짓 강둑길을 낀 이 마을을 지나는 사이 인증샷에 정신 팔린 관광객들과 심심찮게 부딪치고, 여기저기 아무개를 부르는 소리에 혼이 빠진다. 관광객들을 피해 선착장 옆구리에 앉아 메콩강에 손을 적시면 맞은편 라오스 마을 반콴 숲에서 음모와 배반의 골든트라이앵글 역사가 밀려온다.

1950년 초,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인민해방군에 쫓겨 버마 국경을 넘은 장제스의 국민당 잔당을 반공 용병으로 부리며 그 대가로 잔당의 아편 생산과 운송을 도왔다. 한편 19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버마의 네윈은 까끄웨예(KKY, 지역 군벌 방위대)를 조직해 샨주연합혁명군(SURA) 같은 반군에 맞섰고, 그 대가로 쿤사를 비롯한 군벌들의 아편 밀매를 눈감아줬다. 그로부터 국민당 잔당과 쿤사는 마약루트를 놓고 다투며 골든트라이앵글을 세계 최대 아편 생산지로 만들었다.

그 둘 사이에 결전의 날이 왔다. 1967년 6월, 쿤사는 샨주에서 50만 달러치 아편 16톤을 노새 300마리에 실은 무장수송대 800명을 320킬로미터 떨어진 반콴으로 보냈다. 쿤사한테는 카빈 소총 1000자루를 살 수 있고, 2000 병력을 3000으로 늘려 국민당 잔당 3200에 맞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야심찬 한탕이었다. 그 아편 주문자는 라오스 육군 사령관으로 반콴에 마약 정제소를 지닌 오운 랏띠꼰 장군이었다.

아편 이권을 놓고 서로 으르렁댔던 국민당 잔당 제3군 리원환 장군과 제5군 돤시원 장군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국민당 잔당 정보부대인 제1독립부대 마쥔궈 장군 주선으로 리원환과 돤시원은 1000여 병력을 샨주로 보내 쩽뚱을 지나 라오스로 향하던 쿤사의 수송대를 공격했다. 전투 끝에 쿤사의 수송대는 메콩강을 건너 7월17일 반콴에 진을 쳤다. 이어 7월24일 국민당 잔당이 반콴에 닿자마자 두 진영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그 날 오운은 국민당 잔당과 쿤사 수송대에게 라오스를 떠나라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두 진영이 경고를 무시한 채 치고 받던 7월29일 정오, 라오스 공군 T28 전투기 여섯 대가 반콴을 무차별 폭격했다. 오운은 반콴 남쪽에 제2공수대대, 북쪽에 2개 보병 대대, 메콩강에 해병 함정 2척을 투입해 두 진영을 치고 들어갔다. 배신당한 쿤사의 마약수송대는 82명 전사자를 낸 채 아편을 남겨두고 강 건너 버마로 탈출했다. 오운은 그 아편을 자신의 마약 정제소가 있는 후이사이로 실어갔다. 70명 전사자를 낸 국민당 잔당은 퇴로가 막히자 오운한테 배상금 7500달러를 내고 강을 건넌 뒤 전세 버스 18대에 나눠 타고 제5군 본부인 타이 북부 도이매살롱으로 되돌아갔다. 1967년 아편전쟁을 끝장낸 이른바 반콴전투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지원을 받은 국민당 잔당은 1970년대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 루트 90%를 손에 넣었다. 1967년 아편전쟁 때 전선으로 가는 국민당 잔당 제5군. 친이후이 제공
아편이 주민들의 일상이었던 골든트라이앵글은 2000년대 초까지 세계 아편 최대 생산지였다. 정문태 제공
1970년대 연간 1000톤 아편 생산

그 반콴전투의 최후 승자는 오운이었다. CIA 도움을 받으며 마약사업을 해온 오운은 영토를 지킨 영웅으로 국가최고훈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쿤사한테 빼앗은 아편으로 엄청난 돈까지 챙겼다. 재정적·군사적으로 큰 피해를 본 쿤사는 세력 복구를 노리며 샨주 반군들과 협상하다 1969년 버마군에 체포당했으나 부하들이 러시아 의사를 납치해 교환조건으로 내걸면서 1973년 풀려났다. 그 뒤 쿤사는 샨연합군(SUA)을 조직해 버마와 타이 국경을 오가며 1996년 버마 정부에 투항할 때까지 다시 국제마약시장을 주물렀다. 국민당 잔당은 타이 군부와 CIA 도움을 받으며 쿤사가 밀려난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루트 90퍼센트를 손에 쥐었다. 그렇게 국민당 잔당과 쿤사가 날뛰면서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연간 60톤에 지나지 않던 골든트라이앵글의 아편 생산량이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1000톤을 웃돌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서는 양귀밭을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정문태 제공
솝루악에서 메콩강을 따라 치앙샌으로 2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라오스 쪽 돈사오섬 조금 못 미친 강둑에 대형 왕관을 뒤집어쓴 아주 비현실적인 건물이 나타난다. 킹스로먼스 카지노다. 여기가 반콴전투 격전지였다. 2008년 라오스 정부는 이 지역을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홍콩 회사 킹스로먼스인터내셔널과 30억 달러 투자 조건으로 102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땅을 99년 동안 임대했다. 그로부터 이 지역엔 중화제국이 들어섰다. 카지노, 호텔, 술집, 식당 같은 모든 업소를 중국인이 운영하고 거리엔 중국 경찰차가 돌아다닌다. 그 사이 ‘범죄도시’란 별명을 얻은 이 킹스로먼스 카지노는 마약 밀매, 매매춘, 인신매매에다 호랑이와 곰 요리까지 팔며 악명 떨쳤다. 아주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1월30일 미국 재무부와 마약단속국(DEA)이 킹스로먼스 대표 짜오웨이를 비롯한 관련자 4명을 아동 성매매, 마약 밀매, 야생 동물 밀매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렸다. 오래 전부터 동네 아이들도 다 아는 이 범죄도시 실상을 라오스나 미국 정부가 몰랐을까?

잔챙이 마약꾼만 잡아들였을 뿐

마약의 정치경제학이 그 답이다. 19세기 두 차례 아편전쟁을 통해 온 세상을 마약으로 물들인 주범이 영국 정부였듯이, 20세기 골든트라이앵글을 키운 것도 버마, 타이, 라오스 정부와 비밀스레 그 뒤를 받친 미국과 타이완 정부였다. 정치판과 군과 경찰을 낀 그 전통적인 마약 커넥션은 여전히 대물림하고 있다. 그동안 잔챙이 마약꾼을 수도 없이 잡아가두고 쏘아 죽였지만 마약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골든트라이앵글을 보라. 비록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아편 생산지 자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내줬지만 헤로인과 필로폰을 비롯한 마약 생산기지로서는 아직도 까딱없다. 가장 최근 통계인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한 아편이 762톤이었다. 헤로인 76톤을 만들 수 있고 시가로 따져 163억 달러(18조원)에 이른다. 요즘 국제 마약 카르텔이 연간 굴리는 돈을 300~350억 달러로 잡는데, 골든트라이앵글이 그 반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이건 한 마디로 정부 조직이나 정치판 도움 없이 굴릴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마약을 박멸하겠다면 어디를 손봐야 하는지 그 답은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었다. 손보지 않았을 뿐. 골든트라이앵글이 70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은 까닭이다.

해거름 뒤로 숨어드는 골든트라이앵글을 버리고 메콩강 국경을 따라 치앙콩으로 간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메콩강 친구들을 떠올리며 설렘이 저 만치 앞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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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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