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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3 14:08 수정 : 2018.03.03 14:12

버마의 타칠렉과 마주보는 타이 최북단 국경도시 매사이. 가운데 큰 대문이 타이 출입국사무소다. 정문태 제공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⑤ 마주 보는 두 마을, 매사이와 타칠렉

치앙마이에서 최북단 매사이까지
마약·인신매매 악명 떨치던 곳
아세안·중국 FTA 뒤 ‘환골탈태’
4~8차선 도로엔 대형트럭들 질주

국경무역판 벌어지던 매사이는 한산
연합와주군 놓고 타이-버마 ‘전운’
‘우정의 다리’ 건너면 버마 타칠렉
아웅산수찌 집권 후 분위기 밝아져

버마의 타칠렉과 마주보는 타이 최북단 국경도시 매사이. 가운데 큰 대문이 타이 출입국사무소다. 정문태 제공

버마 국경을 낀 타이 북부 도이 앙캉, 도이 매살롱, 반힌땍 산길을 질릴 만큼 달린 끝에 이제 드문드문 지평선이 보이는 치앙라이에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매사이로 간다. 속이 다 후련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1500미터 산길을 닷새 동안 달린 게 만만찮았던 듯. 길도 길이지만, 온 천지를 둘러봐도 풀빛뿐인 그 지루한 빛깔에 물린 게 아닌가도 싶다. 도시에서 길들여진 온갖 빛깔로 채운 시각이 닷새 동안 풀빛 하나만 받아들이는 통에 좀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치앙라이로 내려오니 빨간 신호등이 다 반갑다. 노란 커피숍이 가슴으로 툭 뛰어든다. 형편 되면 피했던 분홍 간판에도 눈길이 간다. 그동안 풀빛에 미쳤던 삶도, 기어이 풀빛으로 돌아가겠다던 꿈도 기껏 닷새 만에 모두 부풀린 감상쯤으로 드러난 꼴이다.

빛깔을 화두로 잡고 방콕에서 치앙라이를 지나는 국도 1번 종착지이자 타이 최북단 국경인 매사이로 달린다. 2월 초로 접어든 햇볕이 제법 따갑게 쪼아댄다. 두어달짜리 짧은 아열대의 겨울이 물러가는 낌새가 사뭇 아쉽기만 하다. 이맘때면 늘 그랬듯이 타이-버마 국경 하늘은 올해도 어김없이 잿빛으로 뒤덮였다. 화전의 계절이 활활 타오르는 신호다.

치앙라이에서 매사이까지 60킬로미터, 이 길은 수도 없이 달렸지만 때마다 늘 통과의례 같은 남모를 경건함을 느낀다. 꼭 28년 전이었다. 나는 낡아빠진 시골 버스를 타고 이 길을 따라 처음 국경 취재에 오르면서 타이 속담 “십 빠악 와아 마이 타오 따아 헨”을 신주단지처럼 품고 갔다. 우리말로 ‘열 입이 하는 말과 한 눈이 보는 게 다르다’쯤이 될법한데, 내 발로 본 현장이 아니면 기사를 쓰지 않겠다는 병아리 외신기자의 다짐이었다. 그로부터 유혹이 있을 때마다 고달팠던 그 시절 치앙라이-매사이 길을 떠올리며 현장 기자로서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 28년 전 다짐을 데리고 가는 국경 길이 정겹게 다가온다.

“우린 ‘붉은 용’ 손아귀에 든 ‘닭’ 팔자”

치앙마이와 매사이를 잇는 이 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버마에서 넘어오는 마약에다 인신매매에다 온갖 밀수로 악명 떨쳤다. 그러다 1992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들고 나선 대매콩유역(GMS) 개발프로그램의 한 축으로 북남경제통로(NSEC)가 입에 오르내리면서 이 길이 눈길을 끌었다. 1998년부터 닦기 시작한 그 북남경제통로 가운데 하나인 중국(징홍)-버마(멍라-짜이똥-타칠렉)를 잇는 이른바 루트3비(R3B)가 타이의 매사이-치앙라이를 종착지로 삼은 까닭이다. 그 뒤로도 말만 많았지 여전히 심심했던 이 시골길이 제대로 터진 건 2010년 아세안-중국 자유무역협정 뒤 중국이 인도차이나로 밀고 내려오면서부터다. 이어 2015년 무관세를 바탕 삼아 경제통합을 내건 아세안경제공동체(AEC)가 출범하면서 이 길의 가치가 부쩍 높아졌다. 울퉁불퉁했던 2차선은 사라지고 이제 4~8차선 고속도로에는 대형 트럭들이 정신없이 내달린다. 손바닥만했던 치앙라이 도심도 북부 매사이 국경 쪽으로 한껏 뻗어나가는 중이다. 치앙라이에서 매사이로 가는 길가에는 멋들어진 커피숍, 식당, 상가들이 즐비하고 공장에다 고급 주택단지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벼가 자라는 논이었다.
버마와 타이 국경을 가르는 매남사이(사이강). 왼쪽이 매사이게스트하우스가 보이는 타이고 오른쪽이 버마의 타칠렉이다. 정문태 제공

치앙라이에서 1시간쯤 달려 버마 국경을 마주보는 매사이에 닿는다. 매사이는 8차선 도로를 끼고 양쪽에 3~4층짜리 상가건물들이 한 300미터 늘어선 시장통쯤으로만 보이지만, 사실은 10만 주민을 지닌 적잖은 국경도시(군)다. 그 시장통 맨 안쪽에 우뚝 선 5층 높이 초대형 대문이 세관과 출입국사무소 들머리다. 근데 정작 그 대문 뒤엔 콧구멍만한 사무실 서너 개가 다다. 나는 매사이에 올 때마다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이 대문 앞에서 정체불명 가분수의 미학을 의심한다. ‘크기’에 목숨 건 공무원들 습성은 세상 어디든 다를 바가 없는 듯.

어쨌든 이 대문을 통해 하루 4천여 장사꾼이 버마 국경을 넘나들고, 지난해 8억3000만 밧(282억 원) 웃도는 국경 무역판을 벌였다. 근데 요즘 매사이 기운이 영 신통찮아 보인다. 경기의 잣대인 대형 트럭들은 드물고 보따리 짐차들만 넘나든다. 시장통도 마찬가지다. 2월이면 관광객이 넘칠 만도 한데 가게들은 파리만 날린다. 사람들이 북적여야 제맛인 저녁 장터마저 쓸쓸하다.

치앙라이 상공회의소 부소장이자 매사이 대표인 빠까이마스 위에라는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니다. 짯(버마 돈)이 너무 약한데다 버마의 멍라 쪽이 막혀 중국과 거래도 힘들다”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버마 와주의 소수민족 무장 세력인 연합와주군(UWSA)이 중국과 국경을 맞댄 멍라를 막아버려 R3B가 마비된 탓이다. 연합와주군은 2만 웃도는 병력을 지닌 세계 최대 마약 군벌로 버마 내 비휴전그룹-7 가운데 하나다. 버마 연방과 자치를 외쳐온 까친이나 까렌 같은 소수민족 해방세력들과 달리 연합와주군은 2015년 와주 독립을 선포한 채 버마 정부군에 맞서 왔다.

“이 동네 경제란 게 워낙 정치적인 문제다 보니 중국 정부가 나서야 풀 수 있다. 우린 ‘붉은 용’ 손아귀에 든 ‘닭’ 팔자다.” 빠끼아마스 말마따나 그동안 중국 정부는 몰래 와주를 지원하면서 버마 정부를 으르고 달래 왔다. 그게 이제 타이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타이는 그동안 전통적인 최대 교역국이었던 미국 자리에 중국을 대신 앉혔다. 2017년 타이의 대 중국 교역량만도 수출 294억 달러와 수입 370억 달러를 합쳐 664억 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온 세상 땅과 바다를 한 경제권으로 묶겠다는 이다이일루(一帶一路) 구상의 동남아시아 발판을 방콕에 박으면서 타이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급격히 키워왔다. 한 4~5년 전부터 방콕은 말할 것도 없고 치앙라이와 매사이까지 중국어 간판이 빼곡히 들어서고 식당마다 중국어 차림표가 넘쳐나는 풍경을 눈여겨 볼만하다. 학교나 직장에 불어 닥친 중국어 배우기 열풍이란 것도 느닷없는 일이 아니다.

타이의 매사이와 버마의 타칠렉을 잇는 우정의 다리. 타칠렉 쪽에서 매사이를 바라본 풍경이다. 정문태 제공

시장통 물건은 대부분 중국제

매사이 시장통에 굴러다니는 물건들도 사실은 거의 모두 중국제다. 매사이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무겁게 사들고 가는 것들이 제 손으로 만든 중국제란 뜻이다. 더구나 매사이의 중국제 가운데 80%는 가까운 R3B 250킬로미터 길을 두고 방콕항을 통해 수입해서 887킬로미터를 다시 육로로 실어온 것들이다. 경제 논리를 따지며 헷갈릴 건 없다. 이미 중국제가 타이 전역을 뒤덮었으니까.

그러니 요즘 타이의 중국화를 걱정하는 소리도 만만찮다. “우린 몰려드는 중국제와 엄청난 자본에 맞설 수 없다. 두렵다. 머잖아 타이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독립성까지 잃을 것이다.” 치앙라이 상공회의소 소장 뽄텝 인타짜이 말이다. 몇 해 전부터 터져 나오는 반중국 정서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뽄텝은 “치앙마이, 치앙라이, 매사이에서는 중국 관광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고 했다. 관광산업에 목을 맨 지역이고 보면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타이를 찾은 중국 관광객 980만 명이 뿌린 돈만도 5240억 밧(17조8000억 원)에 이르고, 그 가운데 3백만 웃도는 이들이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로 몰려들어 지역경제에 크게 한몫했다.

이제 타칠렉의 기억을 쫓아 국경을 넘는다. 나는 1990년대 초에 몇 차례 타칠렉을 찾은 뒤로는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다. 버마 군사정부에 찍혀 1995년부터 18년 동안 비자를 못 받는 신세였던 탓이다. 그러다 2007년인가 “출입국사무소 컴퓨터에 먼지만 쌓였더라”는 네덜란드 기자 친구 말을 듣고 호기심으로 다시 타칠렉을 찾았다. 말 그대로 컴퓨터는 천에 가려 있었고 블랙리스트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비록 랭군에는 갈 수 없는 몸이었지만 몇 차례 타칠렉을 찾아 버마 공기를 마시곤 했다.

그 해묵은 기억 탓에 뻣뻣한 긴장으로 버마 출입국사무소를 지나 폭 10미터 남짓한 매남사이(사이강)에 걸린 ‘우정의 다리’를 건넌다. 여긴 우정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두 정부가 걸핏하면 열고 닫기를 거듭해온 정치적인 다리다. 수틀리면 주민도 교역도 없다. 2001년엔 타이와 버마 정부군이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포격전을 벌여 매사이와 타칠렉 주민을 상호 살해하면서 두 지역 모두 소개령까지 내리는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버마 반군인 샨주군(SSA)이 타이 영내를 발판 삼아 타칠렉을 공격했다며 버마 정부군이 매사이를 향해 포를 날리자 타이 정부군이 타칠렉으로 되받아친 활극이었다.

늘 따라붙던 감시눈길도 사라져

이 다리 한복판, 두 나라 국기가 맞닿는 지점이 바로 타이와 버마의 국경선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다리 한가운데서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타이 쪽에서 느끼는 널널함이 여기서부터 팽팽해졌다. 버마 쪽 군인들과 카메라를 놓고 실랑이 벌이기 일쑤였고, 다리를 건너면 이내 따가운 정보원들 눈길이 따라붙곤 했다. 관광객 흉내를 내보지만 외신기자들은 여권에 타이 정부가 발급한 저널리스트 비자가 박혀 헛일이 되고 만다.

근데 이번엔 타칠렉이 영 딴판이다. 늘 시무룩했던 세관이나 출입국사무소 공무원들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고, 두어 시간 타칠렉을 돌아다녔지만 따라붙는 감시 눈길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 모습에서도 전엔 볼 수 없던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타칠렉에서 면세점 사업을 하는 빠끼아마스는 “2016년 아웅산수찌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달라지는 분위기를 느낀다”고 했다.

매사이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 호객꾼이 달라붙는다. “바이아그라, 말보로, 썸띵 모어?” 마약도 판다는 이야기다. 아, 여긴 아직 타칠렉이었다.

해거름을 따라 20년째 드나든 매사이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다. 국경을 가르는 매남사이 둑 위에 앉은 이 집은 예나 이제나 달라진 게 없다. 마당에 서 있는 국경 경계비도, 방도, 정원도, 정자도 모두 그대로다. 손에 잡힐 듯한 강 너머 타칠렉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변하지 않는 이 풍경들이 고맙다. 이 멈춘 시간이 포근하다. 온갖 상상이 국경선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국경의 밤은 깊어간다.

※필자의 요청으로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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