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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6 23:08 수정 : 2016.10.16 23:08

미얀마 정부 소수민족 인정 안해
종교적으로도 소수인 무슬림
2012년 유혈분쟁 뒤 해상난민 되기도

지난해 5월 타이 남부 리뻬섬 부근에서 타이 군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로힝야 난민들이 탄 배를 향해 식량을 떨어뜨려주자, 난민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식량을 줍고 있다. 리뻬/AFP 연합뉴스
로힝야의 비극은 미얀마에서 국민 그리고 소수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시작한다. 미얀마는 버마족이 주류이지만 정부가 인정하는 민족만 130여개에 이르는 다민족 국가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가 인정한 미얀마 구성 민족 중 로힝야라는 이름은 없다. 로힝야는 자신들이 7세기 라카인주에 정착한 아랍 무슬림 상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불법 이주자들로 간주한다. 로힝야는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서 80만명, 방글라데시에 약 20만명이 산다. 종교는 미얀마 다수 종교인 불교가 아니라 이슬람이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방글라데시 불법 이주자라는 뜻이 담긴 ‘벵갈리’라고 부른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으며 지난해 총선 승리로 정부를 사실상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치도 로힝야에 대한 기본 시각은 군사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로힝야에 대한 박해가 가혹해진 계기는 2011년 군사정권의 부분적 민주화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부분적 민주화 이후 미얀마 각지에서 종교적, 민족적 목소리가 커졌다. 2012년에는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족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로힝야 200여명이 학살당했다. 정부는 라카인 유혈 분쟁 이후 로힝야를 외따로 떨어진 캠프에 집단 수용했다.

견디다 못한 로힝야들이 지난해 다른 동남아 국가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탔다가, 각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수천명이 해상난민으로 바다를 떠도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친족, 카린족 등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무장투쟁을 벌여왔으나, 로힝야는 조직적 무장투쟁을 벌인 적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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