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무장한 다른 남성들을 배경으로 서서 “로힝야 지하드”를 촉구하고 있는 영상 중 일부. 최근 로힝야 지하드를 촉구하는 영상 여러 개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지난주 국경초소 무장괴한 공격 SNS에 “로힝야 지하드” 동영상 대통령실은 “테러리스트” 규정 로힝야 거주지 ’군 작전 지역’ 선포 군경, 현장 사살· 방화…사망자 속출 2012년 유혈분쟁 이후 사태 최악
한 남성이 무장한 다른 남성들을 배경으로 서서 “로힝야 지하드”를 촉구하고 있는 영상 중 일부. 최근 로힝야 지하드를 촉구하는 영상 여러 개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미얀마의 박해받는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9일 새벽 2시께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 마웅도에 위치한 국경 경찰 초소가 무장괴한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어 새벽 5시45분까지 이웃한 라테다웅과 마웅도에서 두 차례 더 공격이 발생했다. 이날 공격으로 국경 경찰 9명과 무장괴한 8명이 숨졌다. 미얀마 대통령실은 14일 성명을 통해 괴한들이 탈취한 총기류와 탄환, 총검 등을 모두 수거할 때까지 로힝야 타운십 지역 세곳을 ‘군 작전지역’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첫 공격지 마웅도는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닿은 곳이며 라카인주에서 로힝야가 많이 거주하는 3개의 타운십(한국의 ‘구’ 정도에 해당) 중 하나다.
공격자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가운데 11일 <한겨레>가 제보자로 부터 건네받은 2분50초짜리 동영상은 로힝야어를 말하는 지도자격 인물이 최소 10여명의 무장한 남성들을 배경으로 “로힝야 지하드”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미얀마군이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우리를 수색하고 있다”며 “헬리콥터 따위엔 신경쓰지 않는다. 알라 만이 우리의 힘”이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오른 또 다른 영상에는 같은 인물을 선두로 해 수백명 규모로 가늠되는 로힝야 젊은이들이 질퍽한 산길을 맨발로 행진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그리고 15일 ‘아라칸(라카인주의 또다른 이름) 신앙운동의 보도자료’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공개됐다.
더빙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로 낭독된 영문 성명은 로힝야 시민권 회복, 피란민(IDPs) 캠프 난민들을 모두 석방할 것, 국가가 파괴한 (이슬람) 종교시설을 재건하고 아웅산 수치 민주정부는 사과할 것, 모든 소수민족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 등 정치적 성격이 짙은 요구사항 6가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는 어떤 형태의 테러로부터도 자유로운 독립적 조직”이라고 밝혔다. 라카인주 주도 시트웨 외곽에 있는 난민캠프에는 2012년 라카인족 불교도들과의 폭력 사태 이래 피난한 14만명가량의 로힝야 난민들이 사실상 아파르트 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권이 자행했던 인종격리를 통한 인종차별 정책) 상황에 갇혀 지내고 있다.
지난 2013년 미얀마 라카인주 시트웨의 아웅 밍갈라 지역에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 미얀마 정부는 2012년 라카인주에서 로힝야와 라카인족이 충돌해 200여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자, 로힝야를 따로 떨어진 곳에 분리 수용하거나 거주지역 감시를 강화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미얀마 자문위원인 리차드 호시는 비디오가 진짜일 것이라고 봤다. 그는 15일 일본에서 발행되는 아시아 시사저널 <닛케이 아시안 리뷰> 기고를 통해 “(로힝야들에게) 최근 몇년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고조된 것 같다”고 썼다. 또 “타이과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난민선 단속까지 이어지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공격의 이면을 분석했다.
9일 공격 직후 시작된 미얀마 군경의 군사작전은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13일 오전 기준 미얀마 정부가 밝힌 사상자 통계는 사망한 군경 13명, ‘공격자’(로힝야) 쪽은 30명이다. 그러나 로힝야 쪽 정보를 종합해보면 현장 사살과 고문, 방화 등이 연일 계속되고 있고 피해 규모는 훨씬 심각하다.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언론 <로힝야 비전 텔레비전>이 마을별 사상자, 불탄 가옥, 피난민 수 등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15일 기준 최소 91명 이상이 사망하고 17명이 체포됐으며 최소 7곳 이상의 마을에 대한 군의 방화로 가옥 890곳이 불탔다. 특히, 마웅도 북부 체요핀 마을은 700개 가옥 중 600개의 가옥이 모두 불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피난민 규모는 최소 2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방송의 국장 안와르는 시시각각 사상자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는 그동안 로힝야 문제에 대한 침묵과 방관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다 지난 8월 “라카인 주민들의 복지향상”을 내걸고 ‘라카인 자문 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라카인’은 주의 이름이며 이 지역 주류 민족의 이름이기도 하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표로 임명됐고 그를 포함하여 외국인 3명과 라카인족 3명 등 9인 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라카인 불교도들은 외국인이 포함된 위원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로힝야 쪽도 로힝야 지도자들이 단 1명도 포함되지 않은 위원회 구성을 비판했다. 14일 라카인 위원회는 이번 공격과 관련한 성명에서 경찰에 대한 괴한들의 공격을 강하게 비난하고 ‘로힝야’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독일에 망명 중인 로힝야 활동가 로 네 산 르윈은 “2명의 전 국가인권위원을 포함해 절반 이상이 로힝야에 적대적인 인물이다. 이번 성명을 읽은 후 위원회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고 단언했다.
라카인위원회뿐 아니라 유엔과 유럽연합 등 그동안 로힝야 인권 문제에 목소리 높였던 국제사회의 성명도 현재진행형인 군사작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사망한 경찰가족에 대한 애도로 끝을 맺었다.
이런 가운데 14일 대통령실이 9일 공격자들을 400명 규모의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건 의미심장하다. 미얀마 정부가 “테러리스트”라 부르지 않는 미얀마 20여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다르게 접근하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불교도-무슬림 갈등으로 200여명이 학살(대부분 로힝야)당한 2012년 폭력사태 이후 최악의 사태다. 무슬림 증오 스피치로 악명 높은 극단주의 승려 위라투는 공격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벵갈리들의) 3차 지하드가 선포됐다”며 반 이슬람주의 정서에 불을 지폈다. 라카인주 분쟁구도도 매우 복잡해질 전망이다. 라카인 불교도로 구성됐으며 라카인주의 자치를 요구하는 아라칸 군(AA)이 이미 지난해 4월부터 게릴라전을 벌이며 정부군과 꾸준히 충돌해왔다. 그러나 이 두 세력 모두 ‘대 로힝야’ 전선에서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로힝야의 무장저항이 일회성 공격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경우 세 집단간의 유혈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방콕/글·사진 이유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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