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16 18:11 수정 : 2005.10.16 18:11

대만 원주민 전통의상 차림의 진쑤메이(가운데) 의원이 지난 6월 식민지 시절 강제징용된 대만 원주민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도쿄 야스쿠니신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시아사람들] 야스쿠니 참배 위헌판결 주역


“일본군국주의 만행 계속 알릴것”

“이번 판결은 일본이 군국주의 만행이 인류에게 끼친 위험을 바로 봤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아직도 일본이 당시 대만 원주민에게 끼친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을 직시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앞으로도 전세계에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계속 알릴 것이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성하고, 사과·배상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지난달 30일 오사카 고등법원의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대만 입법의원 진쑤메이(40)는 판결 이후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진쑤메이는 리안 감독의 <결혼피로연>(1993)의 여주인공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가냘픈 몸매의 진쑤메이가 가수와 배우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2000년 대만 총통 선거 당시 천수이볜과의 염문설로 입방아에 오르내린 게 결정적이었다. 2001년 진쑤메이는 결백을 입증하고 무분별한 폭로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아버지는 안휘성 출신이지만 어머니는 대만 원주민 출신인 진쑤메이는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구에서 출마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됐다. 고산족으로도 불리는 원주민은 대만에 원래 거주해오던 토착인들로 국공내전 이전에 들어온 본성인과 그 이후에 들어온 외성인들에게 심한 홀대를 받아오고 있다. 진쑤메이는 자신은 더 이상 미개한 원주민이 아니라 일본의 폭거에 항거하며 민족 존엄을 지킨 자랑스러운 타이야족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했다. 이름도 어머니의 성을 따라 ‘지와스 아리’, 대만 이름으론 ‘가오진쑤메이’로 바꿨다.

천수이벤 염문설 깨려 출마
원주민 정체성 찾고 맹렬 활동

의원이 된 진쑤메이가 주력한 활동 중의 하나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대만 원주민 혼령의 반환운동이다. 야스쿠니 쪽에 반환을 요구하던 진쑤메이는 2003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헌법에 위반한다며 대만 원주민 등 188명의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번 판결을 얻어낸 것이다. 청일전쟁으로 대만의 식민통치를 공식화했던 일본은 1896년 원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몰수했고, 1930년에는 완강히 일본에 항거하는 원주민들에게 독가스를 사용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은 또 1940년대엔 원주민들을 강제연행해 남양군도 등으로 내몰았고, 이 가운데 2만8천명의 대만인 혼령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해 왔다.


재선에 성공한 그는 현 민진당 정부의 원주민 홀대정책에도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대만의 원주민 입장에서는 외성인이든 본성인이든 심지어 일본 통치자들 모두 ‘외래정권’”이라며 “본성인, 외성인, 원주민을 구분하는 정책은 대만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해악”이라고 주장한다.

타이베이/양태근 통신원 coolytk@hanmail.net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