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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30 18:27 수정 : 2005.06.30 18:27

대선 결과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30일 마닐라에서 시위대가 하야를 뜻하는 엄지손가락 신호를 한 채 아로요 대통령의 사진과 그림을 태우고 있다. 마닐라/AP연합


대선조작 의혹·측근비리등 악재연발
남편 출국·각료 사임등 수습책 무력화
지지층 등돌리고 시위격화·탄핵설까지
대선 조작 의혹과 가족들의 비리 혐의로 사면초가에 몰린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56)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사임 요구가 높아지면서 필리핀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정치적 압력을 피하기 위해 비리 의혹을 받아온 남편을 국외에 내보내기로 하고 일부 장관들을 해임하는 등 여러 카드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사임을 요구하는 악화된 여론을 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탄핵 움직임이 일고 있고,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개표 조작 논란은, 지난해 5월 대선 당시 아로요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과 통화하며 상대편 후보와의 표차를 논의하는 녹음 테이프가 6월 초 공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결국 지난 27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선거가 끝난 뒤 자신의 표를 지켜달라고 당부한 것”이라며 결코 선거결과는 조작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사임 압박을 받고 있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11월 남편 호세 미구엘과 함께 멕시코 대통령 관저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AP 자료사진/연합


그러자 오히려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마침내 29일 그는 변호사인 남편을 국외로 보내겠다고 밝히면서도 사임은 거부했다. 그의 남편은 동생·아들과 함께 불법 복권게임 업자들로부터 수십만페소를 받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필리핀 주요 일간지들은 30일 사설을 통해 “초점을 돌리기 위한 불만족스러운 조처”라고 비판했다.

아로요가 다음 카드로 빼든 것은 측근들의 사임이다. 29일에는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로일로 골레스 하원의원이 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탈세 혐의를 받아온 최측근인 아서 얍 농업장관도 30일 사임을 발표했다. 필리핀 <에이비에스-시비엔> 방송은 대통령이 얍 장관 외에 다른 장관 4명과 남편의 측근인 정부 고위 관리 3명도 해임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탄핵안도 의회에 제출됐다. 로단테 마르콜레타 의원은 29일 아로요 대통령의 ‘배임’ 혐의는 탄핵 요건에 해당한다며 한 변호사가 낸 탄핵안에 지지서명을 했다고 밝혔다. 여당이 의회 다수파여서 탄핵안이 하원을 거쳐 상원까지 상정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아로요로부터 등을 돌리는 측근들이 늘어나고 있어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전 대통령의 딸로 유력 가문 출신인 아로요 대통령은 부유층과 군부, 천주교 주교단의 지지를 받아 왔으나 최근 지지세력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필리핀 군부가 이번주 들어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의사를 재확인한 것은 아로요에게 그나마 버팀목이 되고 있다.

30일 수도 마닐라에선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 지지자 등 2천여명이 “사기꾼 대통령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아로요의 사임 요구 시위를 벌였다고 <에이피통신>이 보도했다. 시위는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부터 계속되고 있으나, 시위 규모는 2000년 전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5만명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필리핀 주가는 1.1% 하락했으며, 투자자들은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해럴드트리뷴>이 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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