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3 18:20
수정 : 2005.06.13 18:20
‘대선 결과조작’ 테이프 공개
대선 결과가 조작됐음을 보여주는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면서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56·사진) 필리핀 대통령이 2001년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5월 대선 당시 아로요 대통령이 상대편 페르난도 포 후보에게 100만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도록 선거담당 관리에게 지시하는 내용의 도청 테이프가 지난주 공개된 뒤 11일에는 수도 마닐라에서 5천여명이 아로요의 사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연정을 구성한 여당 상원의원들과 필리핀 정치권에 큰 발언권을 가진 천주교 주교단도 아로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13일 보도했다.
문제가 된 테이프는 아로요 대통령이 “표차가 100만표 이상 나겠느냐”고 묻자 선거관리위원회 관리가 “표차가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정보국(NBI)의 2인자였던 사무엘 옹은 자신이 군부의 정보요원한테서 이 테이프들을 넘겨 받아 공개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테이프가 조작됐으며 아로요의 개혁을 방해하려는 음모라고 해명했지만, 민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주 초에는 아로요의 가족들이 불법 복권업자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긴 사건도 폭로됐다. 상원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한 도박업자는 아로요의 아들과 남편, 시동생에게 수십만페소를 주었다고 증언했다.
전 대통령의 딸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아로요는 2001년 경제를 회생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며 당선됐다. 그러나 심각한 빈부격차와 빈곤, 치솟는 물가, 계속되는 부정부패 등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로요에 대한 지지도는 26%로 1986년 국민들의 시위로 쫓겨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쿠데타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12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독립기념일 시위가 취소됐으며 6000여명의 군인들이 마닐라의 주요 시설에 배치됐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