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3국 실태보고 학생·어린이까지 무임노동 강제동원
민중 고혈 짠 수익 지배계급 몫으로
‘미래없는’ 빈농들 도시·이슬람 선택 지난주말 유혈진압의 희생자가 된 우즈베키스탄 안디잔 시위대의 대부분은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구호는 구금 중인 이 지역 무슬림 기업가들을 석방하라는 것이었지만, 거기엔 자신들을 지독한 가난에 빠뜨린 정부에 대한 분노가 배어 있다. 세계 3대 면화 생산국인 우즈베크 농민들의 주된 생계수단은 면화 재배다. 면화는 이 나라의 최대 수출품이다.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인근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제는 노동이 거의 강제동원 형태로 이뤄지고, 여기서 나오는 막대한 수입은 대부분 고위관료들이나 소수의 기업가들 몫이라는 점이다. 이 바람에 과거 비단길의 요충지로 밀과 쌀, 포도, 야채 등이 다양하게 재배됐던 이 지역은 지금은 대부분이 한달 소득이 30달러도 채 안되는 지역으로 전락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런 메카니즘이 바로 이 지역의 정치적 압제와 빈곤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주민들과 경제전문가, 인권운동가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한 이 보고서를 보면,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은 1년에 두달은 목화농장에서 일해야 한다. 타지키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어린이 노동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임금은 거의 지급되지 않거나 자주 체불된다. 노동조건이 열악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토지개혁이 미진해 토지소유권이 애매하거나 아예 없는 상태에서 농민들은 옛소련 시절부터 현금화가 쉬운 작물인 면화 재배를 강요당해 왔다. 이곳에서 생산된 면화는 곧바로 유럽이나 미국의 거대 기업들로 보내져 유명 브랜드의 의류로 탈바꿈한다. 우즈베크와 카자흐스탄에 걸쳐 있던 아랄해는 한때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해였지만 면화 재배를 위해 과도한 관개시설을 한 결과 사막으로 변해 환경재앙을 야기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나라들이 인권상황이 가장 열악한 국가로 꼽히는 것은 이러한 강제동원식 노동이 정치적 압제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우즈베크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은 1990년부터 철권통치를 해오고 있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1999년 ‘종신 대통령’을 선언하고 모든 야당활동을 금지시켰다. 타지키스탄에서도 목화농장주 출신인 에모말리 라흐모노프 대통령이 1992년부터 장기집권 중이다. 그는 2003년 개헌을 통해 202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미래가 없는 상황’에서 이 지역 농민들이 선택한 대안은 도시로의 탈출과 이슬람주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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