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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7 18:57 수정 : 2005.04.27 18:57

“부쌓기에만 치중…집권세력과 공생관계”
앤더슨 미 코넬대 교수

“동남아시아에서 90년대 사회 개혁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동남아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는 화인들이 개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민족주의 연구의 권위자 베네딕트 앤더슨(69)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26일 오후 서강대에서 한국동남아연구소와 서강대 동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동남아의 부르주아 과두제’ 강연에서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말문을 열었다.

앤더슨 교수는 70년대까지 군부나 우파의 독재정권이 집권해 온 동남아 나라들이 80년대 이후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했지만, 중산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인(거주국의 국적을 취득한 화교)들이 공적인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개혁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민주화나 개혁이 성공하려면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력이 중산층이 나서야 하는데, 동남아 화인들은 경제적 성공에만 치중할 뿐 정치나 공적 영역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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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국에서 주로 농사를 짓던 화인들은 자연재해나 아편전쟁 등의 정치적 변화를 계기로 동남아 각 지역에 정착했으나, 현지 문화에 동화하지 못해 현지의 사회·정치적 문제가 ‘내 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칸 영화제에서 <열대병>(2004년)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타이 영화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이 정작 타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이와 연관시켜 설명했다. 타이의 민족주의적 문화나 정신을 표현한 작품에 화인들이 동질감을 느끼지 못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동남아 화인들이 각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화인 인구는 3.5%에 불과하지만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73%에 이르는 지분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나 타이, 필리핀 등에서도 소수의 화인들이 전체 민간 자본의 50% 이상을 갖고 있다.

화인들에게 부가 집중되면서 집권세력과 화인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 갔다. 화인들은 세금으로 집권층의 재정을 채워줬고, 집권층은 이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해 줬다. 화인들의 유교적 가부장 문화와 동남아 나라들의 압제적 권력구조가 비슷한 것도 이들이 정치 개혁에 나서지 않는 한 이유라고 앤더슨은 덧붙였다.

앤더슨 교수는 대표적 저서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1983년)에서 민족의 개념을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라고 규정해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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