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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6 18:51 수정 : 2006.01.17 15:22

사막에서 뽑아올린 석유는 송유관을 통해 알제 항구까지 수송된 뒤 거대한 유조선에 실려 주로 유럽으로 수출된다. 알제리국영석유회사 제공

고유가 시대 중동의 새바람 ② 알제리-석유와 평화

거리 메운 자동차·집집 위성 안테나…‘오일머니’ 열풍
지중해 1270km 고속도로 건설…항만 프로젝트 20개
북아프리카·유럽·중동 잇는 세계 마지막 ‘전략시장’

고유가 시대 중동의 새 바람
알제리의 수도 알제 시내에 봉긋 솟은 디아르사헤다 언덕에 오르면 발 아래로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아랍풍 거리 카스바가 그 사이에 길게 누워 있다. 항구에 정박한 거대한 유조선들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집집마다 달린 위성수신용 접시안테나가 아니었다면, 요즘 이곳에 불어닥친 오일 머니의 열풍을 느끼지 못할 뻔했다.

알제리는 요즘 건국 이래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경제 성장속도가 북아프리카에서 제일 빠른 축에 든다. 2002년과 2003년 연달아 8%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04년엔 6.1%로 다소 떨어졌지만, 지난해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알제에서만 최근 2년 동안 자동차가 20만대나 늘었을 정도로, 사람들의 씀씀이도 커졌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경고까지 나올 정도다.

알제리 경제에 불을 붙인 것은 거대한 오일 머니의 유입이다. 2004년 1배럴에 19달러던 기름값은 지난해 59달러까지 치솟았다. 수출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가스 포함)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은 것이다. 양질의 알제리산 석유는 유황 성분이 거의 없어 항공기 연료로 인기가 높다. 알제리는 지난해 450억달러어치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해 2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알제 시내에서 봉긋 솟은 디아르사헤다 언덕 주변에 늘어선 한 주택단지 옥상에 위성수신용 접시안테나가 빼곡이 모여 있다. 알제/유강문 기자
알제리의 고민은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다. 지난해 12월20일 방문한 공공사업부도 그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페라치 벨카셈 장관 비서실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도로·항만·공항·댐 등 대형 프로젝트 목록을 줄줄이 뀄다. 2009년까지 600억달러를 기반시설 확충에 투자할 작정이란다. 이 모두를 정부 재정에서 충당한다. 그러더니 “돈은 있는데 기술이 없다”고 혀를 찬다.

알제리의 기반시설은 급성하는 경제를 떠받치기엔 터무니없이 열악하다. 1962년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시장경제와 거리를 둔 데다, 1990년대 초반 조심스럽게 추진한 개방마저 극심한 테러와 정치적 혼란으로 좌초했기 때문이다. 알제리는 결국 1994년 국제통화기금(IMF)의 혹독한 관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알제리가 가장 야심차게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1270㎞에 이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2008년 말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개입찰이 진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아시아에서 44개 건설업체가 군침을 흘리고 있다. 항만의 경우, 20여개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알제, 아나바, 오란, 드젠디젠 등 4개 항구가 전체 물동량의 75%를 소화하는 상황이어서 병목현상이 극심하다.

알제리 위치도

12월17일 알제리 국영 통신회사인 알제리텔레콤을 찾았다. 다음달 민영화를 앞둔 이 회사는 알제리 통신정책의 전략본부라고 할 수 있다. 유선전화 보급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알제리는 인터넷과 이동통신 보급을 통해 이런 통신지체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브라힘 오우라레츠 회장은 “지난해 이동통신 가입자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며 “초고속 인터넷망을 확충하는 데 2009년까지 2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제리는 흔히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전략적 시장’이라고 한다. 마그레브로 불리는 북아프리카와 유럽, 중동을 잇는 지리적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호황은 그런 가능성을 실제로 예고한다. 한 외교관은 한때 알제리 경제의 걸림돌로 지적됐던 ‘IBM’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기는 “인샬라”(Inshalla), 걸핏하면 일을 내일로 미루는 “부크라”(Boukra), 사정이 나빠져도 무작정 괜찮다고 자위하는 “말레쉬”(Malishe)의 주술이 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12월20일 알제 시내에서 교통체증에 갇혔다. 옆을 보니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애초 50만명 규모로 건설된 알제는 인구가 300만명을 넘어서면서 주택난이 극심하다. 한 집에 평균 7명이 거주하는 실정이다. 알제에선 집만 있으면 백만장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차를 몰던 카림은 “오일 머니가 알제리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알제/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총 버린 무장세력, 평화·화해 활짝

15만명 목숨 빼앗은 테러 종식

알제 시내 복판에 있는 오뎅광장 주변에 최근 공중전화가 생겼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은 알제리의 평화를 상징하는 작은 징표라며 반가워 했다. 이른바 테러 시대엔 거리에서 전화를 건다는 것을 꿈도 꾸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1992년 알제리 최초의 다당제 선거에서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승리가 굳어지자 군부가 선거를 무효화했고, 이로 인해 촉발된 테러는 알제리를 갈기갈기 찢었다. 분노한 이슬람구국전선은 시민들에게까지 그 분노를 떠뜨렸다. 알제리 정부는 이에 맞서 탄압의 채찍을 휘둘렀다. 지난해 1월 알제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테러 종식을 선언하기까지 적어도 15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100만명의 아이들은 언어 장애와 우울증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알제리는 지난해 9월 ‘평화와 화해를 위한 헌장’을 국민투표에 붙여 통과시켰다. 무장세력은 총을 버리고, 정부는 이들을 사면하는 내용의 이 헌장은 부트플리카 대통령이 추진해 온 평화 로드맵의 결정판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한때 2만8000명에 이르렀던 무장세력은 현재 800∼1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은 지방을 무대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정부의 평화공세에 포위된 상태다.

알제리의 평화를 보여주는 것이 대학의 변화다. 학생들은 이제 테러의 공포보다는 취업의 험난함에 힘겨워 하고 있다. 알제리의 실업률은 20%를 웃돌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70%에 가깝다. 동시통역을 전공한다는 반사는 “알제리에선 마땅히 일할 데가 없다”며 “유럽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데자위 알제대 부총장은 “알제리는 지금 모든 것이 과도기에 있다”고 말했다.

알제/유강문 기자

하미드 테마르 투자청 장관
“한국기업 적극적 투자 기대”

하미드 테마르 투자청 장관

알제리는 오일 머니의 세례를 받고 있지만 혼자 힘만으론 경제 발전을 지속하기 힘들다. 알제리가 국영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외국인 투자와 기술 이전을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월20일 만난 하미드 테마르 투자청 장관은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알제리는 아직 총체적인 투자전략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700억 달러 인프라 공개입찰, 대형사업은 10년 세금 감면”

-알제리의 투자환경을 소개해 달라.

=현재 7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건설 공개입찰에 미국과 터키, 영국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아직 반응이 없다. 공개입찰에선 어떤 차별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기술을 갖고 있고, 공기를 맞출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알제리는 인구 7천만명의 북아프리카 지중해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겨냥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기대한다.

-알제리의 투자유치 전략은 무엇인가?

=알제리는 외국인 투자를 법령으로 보장한다. 대형 사업에 투자하면 10년 간 세금을 감면해주고, 땅도 공짜로 줄 수 있다. 아마 개별 투자계획을 법령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알제리는 외국인 투자를 환영한다. 외국 기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술을 제공하고 노동조건도 훌륭하다. 알제리 사람들은 외국 기업에서 일하면 여가생활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민영화를 앞둔 알제리의 국영기업들이 과잉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투자자가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먼저 투자자가 잘 돼야 윈윈게임이 가능하다. 초기에 투자자가 사업적인 이득을 보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 그러나 사업은 사업이다. 알제리 파트너의 이익도 중요하다.

알제/유강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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