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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라크 시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수도 바그다드 도심 해방광장의 담벼락에 스페인어로 “승리할 때까지,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혁명 만세”라고 쓰인 그라피티가 쓰여 있다. 이라크에선 최근 석달 가까운 시위로 400여명이 숨졌으며 내각이 총사퇴서를 제출했다. 바그다드/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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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압둘라흐만 파르투스 하이다르/바그다드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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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라크 시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수도 바그다드 도심 해방광장의 담벼락에 스페인어로 “승리할 때까지,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혁명 만세”라고 쓰인 그라피티가 쓰여 있다. 이라크에선 최근 석달 가까운 시위로 400여명이 숨졌으며 내각이 총사퇴서를 제출했다. 바그다드/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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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중세 이슬람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지역은 인류문명의 중심지였다. 20세기 말 냉전 구도는 해체됐지만 이라크는 오히려 21세기 들어 전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2011년에야 끝났다. 2013년부터 5년 동안은 국제사회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싸움터가 됐다. 국민은 고질적인 정파·종파·민족 분쟁과 세력 다툼, 오랜 전쟁에 따른 정치 불안과 극심한 경제난에 지칠 대로 지쳤다.
지난 10월부터 이라크 시민은 격렬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사망자만 400명이 넘지만 정치권의 ‘근본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는 금세 잦아들 것 같지 않다. <한겨레>는 이라크 바그다드대의 압둘라흐만 파르투스 하이다르 교수(역사학)가 최근 이라크 시위의 배경과 의미, 전망 등을 짚은 특별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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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흐만 파르투스 하이다르 이라크 바그다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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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두달 넘게 이어지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폭력 사태 때문이다. 공공 서비스와 정치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라크에서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시위운동은 참가자 규모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그리고 질적으로 다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현 정치판의 전면적 전복을 요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현재 시위는 바그다드와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다수 지역에 한정돼 있는데, 이들 지역은 16년 전부터 지금의 시아파 정권을 지지해왔다. 지금의 위기가 벌어진 시점이 중동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 첨예한 분쟁과 직결돼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라크는 그 분쟁의 중요한 한 축이다.
10월1일의 첫 시위는 아딜 압둘마흐디 총리가 정부를 꾸린 지 1년 만에 일어났다. 압둘마흐디 총리는 특정 정당 소속은 아니지만 의회 내 시아파 블록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실질적인 결정권자는 아니었다.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 등 이라크 3대 세력의 군형과 타협에 바탕한 복잡한 정치 방정식에서 모든 당사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현 시위 사태의 발발은 대중의 빈곤 증가와 생활 여건의 급격한 악화, 특히 고학력자를 비롯한 젊은층의 높은 실업률에서 비롯했다. 부의 불공정한 분배도 시위의 촉매가 됐는데, 이는 특권을 독점한 엘리트 집단과 보통 사람 사이의 완전한 단절을 보여준다.
압둘마흐디 총리가 약속한 전면적 개혁은 모두 실패했는데, 이는 정부에 대한 신임 상실로 이어졌다. 정치 엘리트 집단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대는 지배집단이 부패와 정실주의에 찌들고 수천억달러(수백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석유 판매 이익을 흥청망청 쓰거나 훔친다고 비난한다. 이는 시아파의 유력 지도자인 무크다다 알사드르가, 현 정부의 구성에 기여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반정부시위의 물결을 타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지지하며 정국 혼란을 조성하려 한다는 증거이다.
나아가 이슬람국가 격퇴전 이후 이라크 정치의 지배적 세력이자 현 위기를 촉발한 주요 원인인 시아파 정당들의 분열과 경쟁, 지난 2년 동안 친이란파 정당과 분파들의 득세, 일부 시아파 정당들이 상실감과 위축을 느껴 세력 균형을 되찾으려는 시도 등도 사태를 복잡하게 한다.
압둘마흐디 정부는 여론의 압박에 밀려 최근 의회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과도 내각으로 전환했다. 그에 앞서 압둘마흐디 총리는 정국 안정을 시도하며 최빈곤 가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더 많은 고용 창출에 특히 신경 써서 시위대의 요구 일부를 수용할 뜻을 밝혔었다. 이라크의 입법·행정·사법 당국들도 시위대의 요구에 부응해 상당한 결정과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이런 수단들로는 지속되는 대중시위를 종식시킬 순 없었다.
정부가 발표한 개혁안과 결정들도 실행되기는 어렵다. 지금의 시위 사태를 불러온 경제·안보·정치적 위기가 어떤 한순간에서 비롯한 게 아니며, 현 정부가 그런 위기들을 해결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운동에서 과도한 폭력이 행사돼 지금까지 400여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쳤는데도 이라크 정부는 책임을 부인하며 정체불명의 제3자 세력이 보안군과 시위대에 동시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위대는 현재 ‘정치 엘리트 집단에 대한 전면적 거부’, ‘현행 헌법의 폐지’, ‘종교·분파·혈통 집단의 제휴에 기반한 현 정권을 대체하는 시민 정권의 수립’까지 요구한다.
이라크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의 개입이 현재 위기의 엄혹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지만, 어떤 나라도 이라크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모든 증거와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이라크 위기는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인 긴장·대립과 관련돼 있다. 두 나라 모두 이라크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를 분쟁 국면에 끌어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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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라크 바그다드 시민들이 이라크 보안군의 폐쇄된 건물에서 물건들을 담벼락 너머로 옮기고 있다. 이라크 시민들은 지난 10월부터 극심한 생활고 해결과 부패한 정치권의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바그다드/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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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동안 이란은 이라크에 정치, 경제, 심지어 안보 분야에까지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행사하면서 이라크를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우회하는 중요한 출구로 삼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에 지상군 5000여명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지배 엘리트 집단에는 미국에 우호적인 협력자도 많다. 그러므로 이라크 위기 상황의 악화가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전반적으로 제한하려는 ‘최대의 압박’ 전략과 상관이 없지 않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라크 사태를 보는 대다수 관측통들은 미국이라는 행위자가 이라크 시위대를 직접 지휘하거나 공공연히 개입하려 하진 않는다고 믿는다. 비난이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대신, 미국은 이라크 정치 세력의 전면적 교체를 추구하는 대중 시위를 활용해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라크 시위대가 이란의 영향력에 맞설 필요성을 제기한 슬로건이 미국의 전적인 지지를 받는 건 놀랍지 않다. 최근 미국이 이라크 정치인 4명을 이란과 협력한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라크 정부의 안보·정치 권력은 지금도 반정부 시위가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의 지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이란에 충성스러운 시아파 군벌 지도자들은 시위대의 배후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고 대놓고 비난한다. 이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비롯해 이란 정부 관리들이 발표한 주장과도 같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가까운 미래에 이라크 위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이라크 정치 상황은 불투명하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향후 사태의 전개는 다음 세가지 중 하나로 흘러갈 것이다.
첫째,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이라크 정치의 실질적인 변화는 없이 핵심 지도자들만 바꾸는 것이다. 최근 압둘마흐디 정부의 사퇴 발표가 이런 맥락이다. 둘째 가능성은 현재의 이라크 위기가 내각 교체 수준을 넘어 정부 전체 시스템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위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셋째 시나리오는 시위운동이 무력으로 진압되고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이라크의 수많은 군벌과 무장세력이 충돌하는 내전이 벌어지면서 취약한 국가 통합이 해체될 수도 있다. 미국과 이란을 포함해 이라크 안팎에서 현 이라크 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들은 이라크가 그런 사태로 빠져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쪽에도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첫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이미 정치 엘리트 집단이 시민의 개혁 요구에 응답함으로써 시위를 통제하고, 조기총선 이전까지 압둘마흐디 총리를 잠시 대체할 인물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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