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만의 일본 총리 방문…이란 대통령 만나
“무슨 일 있어도 무력충돌 피해야” 자제 권고
13일 이란 최고지도자 만난 날 유조선 피격
이란 “수상한 사건”…지난달 이어 혐의 부인
아베, 북과 정상회담, 러시아와 평화조약도 추진
북·러한테는 면박만…가시적 성과는 못 내
13일 오만만에서 유조선 프런트 앨테어호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AP 연합뉴스
‘전후 외교 총결산’을 내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란을 방문해 이란과 미국의 갈등 중재에 나섰지만, 13일 공교롭게도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 근처에서 피격당하면서 중동의 갈등은 높아지고 아베 총리는 타격을 입게 됐다.
<로이터> 통신은 다행히 유조선 2척의 선원 44명은 근처를 지나는 상선들에 구조됐고, 이란 선박에 넘겨져 이란 남부 항구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이날 일본 유조선 ‘고쿠카 커레이저스’호와 함께 오만만에서 공격을 받은 ‘프런트 앨테어’호의 노르웨이 선사는 어뢰 공격 같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은 지난달 오만만에서 발생한 사우디 유조선 2척에 대한 공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석유 금수를 세계적으로 강제하면서 충돌 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맞서 주요 석유 운송로인 페르시아만을 봉쇄할 수 있다고 위협해왔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당시 “(유조선들을 파손한) 기뢰는 이란 게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이란도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이번 공격은 지난달 것보다 더 과감하고 심각하다. 당시에는 유조선 선체에 구멍이 나는 정도였지만, 이번에 고쿠카 커레이저스의 경우 3시간 동안 두 차례 공격으로 엔진실에 화재가 발생했다. 프런트 앨테어는 선체의 중심을 폭발물이 강타해 화염과 연기가 치솟았다. 페르시아만에서 출발하는 세계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더 높아지고, 유조선들의 활동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번에도 “의심스러운 공격”이라고 비난하며 연루 가능성을 적극 부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12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하는 중에 일본 유조선이 공격받았다는 점에서 누군가 시점과 대상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공격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12일부터 일본 정상으로서는 41년 만에 이란을 방문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무력충돌은 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겠다며, 2015년 이란 핵협정의 중요성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 쪽은 아베 총리의 중재 시도가 무색하게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3일 아베 총리를 접견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그가 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난 트럼프와 어떤 메시지도 교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앞으로도 그에게 답변해줄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이란은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미 핵협정과 관련해 미국과 쓴 경험을 했으며, 이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유조선 피격까지 발생해, 아베 총리가 올 초 시정연설에서 선언한 ‘전후 총결산 외교’는 난기류를 만났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마주앉고 싶다고 여러번 밝혔지만, 북한은 이달 2일 “아베 패당의 낯가죽이 두텁기가 곰 발바닥 같다”고 반응했다. 또 쿠릴열도 남단 섬들을 돌려받고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러시아에 적극 구애를 했지만 “일본은 (미국 영향을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나”(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라는 모욕적 말을 들었다. 그의 이란 방문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기대치를 낮추려는 듯, 아베 총리의 행보는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차원이지 미-이란 갈등을 직접 중재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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