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9 17:27
수정 : 2019.04.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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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 레바논 시돈에 건설한 해안 성곽. 출처: 브리태니커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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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저널 오브 휴먼 제네틱스’ 발표 논문
레바논 시돈성 발굴 유해들 유전자 분석한 결과
서유럽 출신 + 현지인 + 혼혈로 다양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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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 레바논 시돈에 건설한 해안 성곽. 출처: 브리태니커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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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세기에 성지 회복을 명분으로 레반트 지역(예루살렘 등 지중해 동부 지역)을 짓밟은 십자군 병력의 다수가 지금의 유럽 출신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레바논·벨기에 공동 연구팀은 18일 <아메리칸 저널 오브 휴먼 제네틱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십자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레바논 항구도시 시돈에서 발굴한 십자군 유해들을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시돈성에서 발굴한 13세기 남자 유해 9구의 유전자를 주변 지역의 중세시대 유해들 및 현대인들의 것과 비교했다. 이 중 3구만 서유럽 출신으로 판명됐고, 4구는 현재의 레바논 지역 출신으로 분석됐다. 다른 2구는 서유럽 출신과 근동 지방 출신 유전자가 섞여 있었다. 이 ‘혼혈’ 2인 중 하나는 부모가 레바논 지역과 유럽 출신으로 추정됐다. 다른 ‘혼혈인’은 중동의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족 또는 사우디인과 스페인 또는 바스크(주류 스페인인들과는 다른 바스크족이 사는 스페인 북부 지역) 출신의 부모를 둔 것으로 분석됐다.
초기 십자군운동의 선봉에 선 것은 지금의 프랑스 지역을 점령한 게르만족 지파인 프랑크족이다. 독일과 영국 왕조도 십자군운동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십자군이라면 서유럽인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통념과는 다른 유전자 분석 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십자군 진영과 그에 맞서 싸운 아랍인들이 함께 매장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발굴 현장 상황을 보면 유럽인들이 현지인들과 한 패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
이를 전제로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됐다. 첫째는 유해의 주인들이 숨질 당시에는 십자군운동이 개시된 지 100년쯤 지난 때였기 때문에 서유럽인들과 현지인들이 결합해 많은 후손을 낳았다는 것이다. 십자군운동이 진행된 200여년간 유럽인 수십만명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진퇴를 거듭하며 왕국·공국·백국을 세웠기 때문에 이들과 현지인들의 통혼은 흔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지중해 연안의 근동 지방 원주민들이 다른 지역에서 십자군을 격파하러 온 무슬림들과 맞섰을 가능성이다. 연구팀은 “시리아, 터키, 이라크, 이집트에서 출병해 십자군과 싸운 아랍인들은 이번에 발굴한 근동 지역 출신자들과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슬람이 중동을 석권한 뒤에도 남아 있던 현지 기독교인들이 십자군 편에 섰을 것이라는 가설도 제시됐다. 연구팀은 현재의 레바논 기독교도들은 중세시대 이 지역 거주자들과 유전적으로 거의 일치하지만, 레바논의 무슬림들은 십자군 이후 터키 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과 유전자가 섞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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