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14 17:30
수정 : 2018.10.1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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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터키 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앞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언론인 자말 카쇼기 실종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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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곧 녹음·녹화 파일 “확인하게 될 것”…사건은 안갯속
23일 리야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사막의 다보스 포럼’ 파행 국면
미국·유럽 외교관들 비난 성명 작성 논의·네옴 신도시 구축사업도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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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터키 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앞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언론인 자말 카쇼기 실종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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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가 저명 언론인 자말 카쇼기(60)의 ‘꺼림칙한’ 실종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국제적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이번 사건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무함마드 빈살만(33) 왕세자 역시 ‘젊고 합리적인 개혁가’에서 ‘잔인하고 음험한 독재자’란 평가를 받게 됐다.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결혼 서류 작업을 하러 들어간 뒤 행방이 묘연해진 카쇼기의 행방을 둘러싼 새로운 보도가 나왔다. 13일 터키 언론 <사바흐>는 카쇼기가 차고 있던 스마트 시계 ‘애플워치’에 그가 피살되는 현장의 소리가 녹음됐으며, 이 음성 파일이 약혼녀인 하티스 센지즈가 보관 중이던 카쇼기의 휴대폰으로 전송돼 그의 죽음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그러자 한쪽에선 ‘애플워치’가 살해의 증거라는 주장은 연막을 친 것에 불과하며, 터키 정부가 사우디 영사관을 도청해 카쇼기 사건의 전말을 확인했다는 반박도 나왔다. 사우디와 긴 외교 경험을 가진 한 전직 외교관은 <워싱턴 포스트>에 “빈살만 왕세자의 승인 없이 이런 일은 절대, 절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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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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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정부는 앞선 8일 카쇼기가 당일 영사관에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사우디 정부에 ‘그가 무사히 영사관에서 빠져 나왔다’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트위터 팔로어 160만명을 거느린 카쇼기는 <워싱턴 포스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며 사우디 정권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왔다. 지난해 7월부터 미국에 거주해 온 카쇼기는 그로 인해 “사우디 정부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번 사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공고하게 유지돼 온 미국-사우디의 관계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 4월 무려 3주 동안 미국 전역을 순방한 빈살만 왕세자는 4000억달러(약 453조2000억원)에 달하는 무기구입과 투자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두 나라의 관계를 “대단한 우정”이라고 칭송했다.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행사에서 터키 당국에 문제의 자료를 공유할 것을 요청했다며 “우리는 곧 그것(녹음·녹화기록)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시비에스>(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선 “우리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이고, 가혹한 처벌(severe punishment)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1100억달러에 달하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 계약을 중단할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국제 사회 또한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23일부터 수도 리야드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던 ‘사막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콘퍼런스’에 애초 참석할 예정이었던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유력 인사들의 불참 의사를 밝혔다. <비비시>(BBC) 방송은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장관의 참석도 어려울 것이라 전망하며 “두 사람 모두 불참하면 사우디가 두 핵심 동맹으로부터 큰 모욕을 입은 것으로 비칠 것”이라고 짚었다. <뉴욕타임스>는 “빈살만 왕세자의 꿈이 ‘소름 끼치는 암살 의혹 사건’으로 얼룩졌다”고 표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절대권력을 가져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 불려온 빈살만 왕세자의 충동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독재자적 면모에 국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해 6월 왕세자에 책봉된 그는 사촌 형 무함마드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 등 반대파 왕족과 전·현직 장관 200여명을 체포하고 피의 숙청을 벌였다. 국방부 장관을 맡았던 2015년에는 예멘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으로 현재 예멘에선 끔찍한 인도적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론 풍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개혁·개방의 바람을 일으키며, 아랍 지역을 바꿀 ‘젊은 지도자’ 상을 완성해왔다. ‘비전 2030’ 계획 아래 올들어 여성의 축구장 입장과 운전, 입대가 허용됐으며, 35년 만에 상업 영화관도 재개관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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