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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1 00:17 수정 : 2018.08.11 01:59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상에 한때 20%까지 폭락
올해 가치 40% 이상 하락…위기 진행중인데 또 날벼락
트럼프, 미국인 복음주의 목사 구금 놓고 터키에 보복
장기집권 에르도안 대통령, “달러·금 내놔라” 호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다. 브뤼셀/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공격에 터키 리라화가 16% 하락이라는 대폭락을 기록했다. 중동의 주요국인 터키 경제가 급속한 위기에 빠져들게 됐다. 15년간의 장기 집권에 이어 지난 6월 대선 승리로 ‘21세기 술탄’으로 등극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큰 위기에 봉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아침(현지시각)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율을 두 배로 올린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강한 달러에 비해 급속히 (가치가) 내려가는 터키의 화폐 리라와 관련해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배로 올리는 것을 방금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알루미늄은 (관세율이) 20%가 되고 철강은 50%가 된다. 터키와 우리의 관계는 지금 좋지 않다”고 했다. 터키는 지난해 미국에 10억달러(약 1조1295억원)어치의 철강 제품과 6천만달러어치의 알루미늄 제품을 수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터키 리라화는 폭락을 거듭하며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한때 20% 이상 떨어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터키 화폐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상 하나만으로 이 정도의 타격을 받은 것은 이미 위기가 심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리라화는 올 들어 달러 대비 41%나 가치가 떨어졌다. 화폐 가치의 급속한 하락 속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5%를 돌파하며 인플레이션 위기도 닥쳤다. 리라화 표시 10년물 채권 금리는 20.8%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나오기 전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경제 전쟁에서 지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단결과 헌신을 요구했다. 그는 “베개 밑에 달러나 유로, 금을 갖고 있다면 은행에 가져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인 베랏 알바이락 재무장관은 인플레이션을 누르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갑자기 두 배나 올린다면서 내세운 명목들 중 하나는 리라화 폭락이다. 리라화 가치가 낮아졌기에 터키 상품의 미국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 미국 업체들이 불리해졌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처로 리라화 가치는 더 떨어졌다.

베랏 알바이락 터키 재무장관이 10일 경제 위기에 관한 기자회견 도중 얼굴의 땀을 닦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관계가 좋지 않다”는 말로 표현한 외교적 갈등이다. 미국은 자국 시민 앤드루 브런슨 목사가 터키의 쿠르드족을 도왔다는 이유(테러 지원)로 2016년 12월 구금되자 그의 석방을 요구해왔다. 터키 정부는 브런슨 목사가 2016년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시도 배후에 있는 것으로 지목된 재미 이슬람 성직자 페훌라흐 귈렌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시민 1명 때문에 군사 동맹 관계에 있는 터키를 몰아붙이는 것은 11월 중간선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브런슨 목사는 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인데, 선거에서 이들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는 근본주의적 성향인 복음주의자들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열렬한 복음주의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터키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미국 정부는 설득이 통해 브런슨 목사가 송환될 것으로 한때 기대했으나, 터키 정부는 지난달 그를 석방한 직후 가택연금 조처를 내려 미국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터키 정부는 최근 특사를 워싱턴에 보내 타협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브런슨 목사의 구출 작전을 꾸미고 있다고 말해 미국 정부의 화를 더욱 돋운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해 리라화 하락과 양국 무역 문제를 논의하는 등 대응에 부심했다.

리라화 폭락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 또다른 극단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의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완력 행사가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트럼프발 위기’에 유럽 증시가 하락한 데 이어 이날 오전 미국 증시도 하락세를 보였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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