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05 17:28
수정 : 2018.06.0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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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람 알투나얀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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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여성 운전 허용’ 되면서 사회 변화 바람 불지만
이면엔 여성운동가 체포하며 “반대 의견 묵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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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람 알투나얀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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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현실이 됐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아흐람 알투나얀은 4일 에스엔에스(SNS)에 운전면허증 사진을 올리고 이렇게 적었다. 그 앞에 적은 문장은 외국인에겐 다소 생경한 감사 인사다.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신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지지에 감사합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자, 감사합니다. 신께 감사합니다.”
이날 사우디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10명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했다. 미국, 영국, 레바논 등 다른 나라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적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간단한 운전 시험과 시력 검사를 거친 뒤 면허증을 나눠줬다. 알투나얀은 운 좋게 그 10명 안에 포함됐다. 다음주께 2000여명의 여성 운전자가 추가로 면허증을 받는다. 사우디가 24일부터 여성 운전을 전면 허용하기로 하며 이뤄지는 조처다. 이제 여성이 운전할 수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뉴욕 타임스>는 사우디의 이번 결정에 대해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씁쓸해 하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18일 ‘운전할 권리’를 위해 싸우던 여성 운동가 아지자 알유세프와 이만 알나프잔 등이 체포한 뒤 석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당국은 17명 중 8명을 일시적으로 풀어줬을 뿐이다. 수사 당국은 “적대적 외부 세력에 협력하면서 재정적·도덕적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를 대며 이들을 중죄를 저지른 인물로 취급하고 있다.
체포된 여성 대부분은 1990년 11월 수도 리야드에서 차를 몰고 여성의 운전할 권리를 외친 여성 운동계의 ‘대모’들이다. 여성 운전 금지에 항의하며 첫 시위를 벌인 ‘그날의 주인공’들은, 여성의 운전이 허용되는 역사적 장면을 철창 안에서 바라만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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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여성이 면허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사우디 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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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뒤 사우디 사회는 들썩였다. 압둘아지즈 국왕은 칙령을 통해 “이슬람 법에 따라” 여성의 운전 허용을 명령했다. 이 조처는 빈살만 왕자가 주축이 된 개혁 정책인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사우디 정부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 경제를 다각화하면서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조처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후 사우디 정부가 쏟아낸 정책들엔 잇따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난 1월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허용됐고, 2월엔 여성의 군 입대도 가능해졌다. 4월엔 35년 만에 수도 리야드에 상업 영화관이 개관했다. 첫 상영작은 할리우드 최신 영화 <블랙 팬서>였다.
여성 운전 허용을 계기로 사우디 사회의 변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택시를 타거나 운전사를 고용해야 했던 여성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으면 행동 반경이 넓어지게 된다. 사우디 정부도 21%에 불과한 여성 고용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공유차량업체 ‘우버’의 운전사 교육을 받은 여성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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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아라비아 6월호 표지 Boo George/Vogue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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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혁·개방은 철저히 왕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왕실의 이해와 어긋나는 개혁 요구는 묵살된다. 지난해 11월엔 성직자·사업가·왕족 350여명의 숙청 작업이 진행됐다. 최근 체포된 여성 운동가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대 징역 2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잡지 <보그>는 6월호 아랍판 표지사진으로 하이파 빈트 압둘라 알사드 공주가 운전석에 앉은 모습을 실었다가 비웃음을 샀다.
<타임>은 사우디 여성 단체들이 개혁 정책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부의 억압에 대해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려는 시도이자, 더 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막으려는 의도”라며 우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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