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3 17:12
수정 : 2018.05.1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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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위대한 귀환 행진’이 벌어진 지난 3월 30일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행진 시위로 팔레스타인 주민 16명이 이스라엘 군의 발포로 사망하는 등 2014년 이후 최악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라말라/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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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건국 70년은 팔레스타인 재앙 ‘나크바’ 70년
테러·게릴라 투쟁, 인티파타 이어 ‘위대한 귀환 행진’
이스라엘 주적들은 제거됐지만 분쟁은 되레 광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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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위대한 귀환 행진’이 벌어진 지난 3월 30일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행진 시위로 팔레스타인 주민 16명이 이스라엘 군의 발포로 사망하는 등 2014년 이후 최악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라말라/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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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인 1948년 5월14일은 현대 중동 분쟁의 원점이다.
그날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독립을 선포했다. 유럽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독립과 건국을 축하하는 축포는 곧 다른 이들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날은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있던 아랍계 원주민들에게는 ‘나크바’(재앙)의 시작이었다. 75만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집과 고향에서 쫓겨났고, 500개 마을이 땅 위에서 지워졌다.
70년이 흐른 14일,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또 다시 대비되는 풍경이 교차할 것이다. 이날 예루살렘에서는 이곳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미국의 대사관 개관식이 열린다.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기념하는 최대 행사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땅 곳곳에서는 타이어를 태우는 검은 연기, 최루탄과 물대포, 실탄이 난무할 것이다. 지난 3월말부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펼치고 있는 ‘위대한 귀환 행진’이 절정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고립된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 70돌을 맞아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 내의 고향 땅으로 행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발포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가르는 장벽에 접근하면서 지금까지 45명이 숨지고 20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11일 시위에서도 이스라엘 군의 발포로 1명이 숨지고 176명이 부상해, 14일 벌어질 충돌을 예고했다. ‘위대한 귀환 행진’은 팔레스타인 주민들 입장에서는 3번째 국면의 투쟁이다. 첫번째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주도한 테러와 게릴라 투쟁이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붙잡고 살해한 테러가 그 정점이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여객기 납치와 테러가 벌어졌다. 이스라엘 독립 직후부터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주변의 아랍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4차례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시작으로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두번째가 1987년 말부터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티파다(민중봉기)다. 팔레스타인 청소년이 돌멩이를 들고 이스라엘 탱크에 맞서는 장면으로 상징되는 인티파다는 1993년 9월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6년 동안 단속적으로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주민 1200명이 사망한 ‘대가’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을 마련한 오슬로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하지만 오슬로 평화협정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들어설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밀어붙이면서 현재 휴지 조각이 됐다. 이 과정에서 파타당 세력을 이끄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세속주의 지도력은 쇠퇴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주의 세력인 하마스가 득세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규정한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는 명분으로도 작용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세번째 국면의 투쟁이 지금 ‘위대한 귀환 행진’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투쟁은 과거의 두 차례 투쟁 국면에 비해서는 이스라엘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완전히 봉쇄되고 고립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오로지 장벽에 접근하며 자신들의 희생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투쟁은 단지 불타는 타이어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로만 상징된다. 발포하는 이스라엘군들의 시야를 막으려고,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타이어를 태워 피우는 연기다.
포연이 아닌 타이어의 검은 연기는 70년이 지나면서 바뀐 중동 분쟁의 정세를 상징한다. 중동 분쟁은 이제 포연을 야기하는 전투병력들이 아니라, 타이어의 검은 연기를 피울 수밖에 없는 비전투원들에 의해 일상화됐다는 의미다. 이는 이스라엘에 맞설 수 있는 정규 전투력을 가진 국가나 집단이 소진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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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스라엘 군인이 지난 5월 10일 시리아와 이스라엘 국경에 있는 골란고원에서 메르카바 마크 4호 탱크 옆에 서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시리아에 주둔 중인 이란군의 로켓 공격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이란군의 무기고와 보급시설, 정보센터 등 수십 곳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골란고원/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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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건국으로 촉발된 중동 분쟁은 이스라엘의 주적들이 거세되는 한편 중동 전역으로 분쟁이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이스라엘은 독립 때부터 1973년까지 주변 아랍국가들과 4차례의 전쟁을 벌인 끝에 첫번째 주적이던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집트에 이어 두번째 주적으로 떠오른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쟁으로 제거됐다.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던 유일한 주변 국가였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도 2002년부터 발발한 내전으로 이스라엘의 주적 명단에서 지워졌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인 ‘6일 전쟁’을 통해 중동에서 군사 강국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와 맞물린 주변 아랍 국가들의 세속주의 지도력의 무능은 중동 전역에 이슬람주의 세력 확산의 배경이 됐다.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이슬람혁명은 그 신호였고,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의 보수주의 왕정뿐만 아니라 세속주의 수니파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이란과 싸워온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중동에서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하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마저 내전에 휩싸이자 이란의 영향력이 확산됐다.
이란은 수니파 아랍 국가들에게 최대 위협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세번째 주적으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8일 이란과의 국제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이스라엘은 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해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 내의 70여개 이란 군사시설을 공격해 무력화시켰다. 이스라엘로서는 세번째 주적인 이란을 거세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그 배후에는 미국의 지원이 있고, 사우디와 이집트 등 수니파 국가들도 암묵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에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에 열세인 데다 핵협정에 발목이 잡혀 적극적 대응을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 70년 만에 중동의 최대 군사 강국으로 자리잡고, 거대 수니파 국가인 이집트와 사우디를 암묵적인 동맹국으로까지 순치시켰다. 이스라엘 건국이 방아쇠를 당긴 중동분쟁은 중동 전역으로 퍼지며 이스라엘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이스라엘의 코 앞으로 귀환하고 있다. 광역화한 중동분쟁 와중에 국제적 관심에서 멀어지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피우는 타이어의 검은 연기가 다시 이스라엘을 덮고 있고, 접경한 시리아에서는 이란과의 대결이 어른거린다. 중동은 여전히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분쟁의 땅으로 남아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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