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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2 05:17 수정 : 2005.12.02 09:44

지난 10월24일 로켓포와 차량폭탄 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시내 팔레스타인호텔 근처에서 대형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바그다드/AP 연합

이라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06년 이라크 주둔 미군을 일부 감축시킨다는 계획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라크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11월30일(현지시각) 애너폴리스의 미 해군사관학교 연설에서 “이라크에서 완전한 승리”때까지 ‘철군 시간표’를 거부했다. 미 국방부와 백악관에서 흘러 나오는 ‘시나리오’들은 내년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 일부를 감축하더라도 이라크전은 2007~2008년까지는 계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백악관 관리들이 최근 잇따라 “이라크군이 치안을 떠맡을 준비가 됐다”며 병력 감축 계획을 밝히면서 ‘이라크 탈출 전략’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 국방부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12만5천여명의 이라크 주둔 미군(이번달 이라크 총선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16만으로 증원된 상태) 중 일부를 내년 봄부터 철군시키기 시작해 내년 가을까지 8~10만명으로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제 이라크전은 끝나는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이라크인 수감자 학대를 처음 폭로하는 등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이면에 있는 주요 뉴스들을 보도해온 <뉴요커>(12월5일치)의 시모어 허시는 백악관 전쟁 계획 담당자들을 취재한 결과 미국이 현재 감축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완전 철군은 물론 대규모 감축을 승인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고 보도했다.


일단 2008년 여름까지 미군이 전투에 투입될 것이라는 기존 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한 국방부 관리는 “(현재 거론된) 병력 감축 계획도 조건부이고 이라크 상황 변화에 달렸으며 철군에 대한 시간표도 없다”고 단언했다. 허시는 현재 흘러나오는 병력 감축 계획의 대안으로 미군은 지상군 병력을 일부 감축하는 대신 미국이 저항세력에 비해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공군력을 이용해 공습을 강화하는 것을 유력한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전한다. 미군 지상군의 많은 부분이 미 공군력으로 대치된다는 뜻이다.

체니 미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패트릭 클로슨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우리는 전쟁을 축소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으며, 전투를 수행할 병력 배분을 변화시키길 원할 뿐이다. 이라크 보병이 미군 공군력의 더욱 강한 지원을 받는 것이다. 이라크군은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공세에만 투입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클로슨은 “대통령은 2004년 대선에서 재선됨으로써 이라크전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승인을 받았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과의 전쟁이 끔찍한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와 동맹들은 승리할 것이다. 쿠르드와 시아파가 미국 편에 서는 한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7년 전쟁의 중간에 와 있으며 80%의 이라크인들은 우리의 메시지를 수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군력으로 병력 축소를 만회한다는 안에 대해서는 국방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습을 강화하면 미군과 이라크군 전투 능력을 크게 강화시키겠지만, 이라크인 사망자가 크게 늘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라크군과 합동작전을 벌이는 상태에서 공습 목표물을 정할 때 이라크군이 개입하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비판론자들은 피해자가 되는 이라크인들의 반발을 더욱 키우면서 저항세력만 강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앤드류 브룩스는 “공습으로 저항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가? 절대 아니다. 한 지역에서 공습을 계속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 또다른 저항세력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후반부에 들어 점점 공습에 의존했던 베트남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저항세력에 대한 공습을 계속할 수록 더 많은 희생자와 원망, 더 많은 저항세력들이 계속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신념도 이라크전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국방부 관리들은 지적한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고 있어 물러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미군과 정보 담당 관리들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는 것이 개인적 사명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며, 이 때문에 공화당에서까지 정치적 압력이 나오고 있지만 굴복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의 한 전직 고위관리는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신이 자신을 보냈고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04년말 이라크 현지 조사를 통해 “우리가 이라크에서 지고 있다”고 보고했지만 대통령은 이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부 관리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전은 국내정치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다음 대선은 2008년말이고, 부시 대통령 임기 안에 이라크전을 중단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라크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 10월 민주당 성향의 아메리칸프로그레스센터의 로렌스 코브와 브라이언 커툴리스는 ‘전략적 재배치’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들은 2006년 동안 이라크 주둔 미군 중 4만6000명을 귀국시키고 20000명을 아프가니스탄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재배치하며, 14000명은 쿠웨이크와 걸프지역에 배치시켜 6만명만 이라크에 남긴 뒤, 이라크 상황이 진전되면 2007년말까지 대부분의 병력을 감축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반테러부대’를 이라크에 남겨 쿠웨이트등 걸프지역에 주둔한 미군과 함께 합동으로 반테러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 아이디어는 민주당의 대표적 매파 정치인으로 꼽히는 존 머사 하원의원이나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의 아이디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의원은 11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이라크 철군 시간표를 작성해야 한다”며 2006년 동안 미군 5만명을 재배치하고 2007년에 나머지 10만명을 재배치한 뒤 소규모 군대를 이라크나 국경지대에 배치해 테러리스트에 맞서야 한다고 제시했다. 스콧 매클래런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바이든 의원의 아이디어는 우리의 철군안과 비슷하다”며 처음으로 백악관이 철군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결국 현재로선 2007~2008년까지는 상당한 규모의 미군(과 다국적군)이 이라크에서 전투를 벌이고, 이후에도 반테러부대 형태로 이라크 주둔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통과 다음 단계는… 이라크 정부 관리들(오른쪽 줄)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표단이 이라크 헌법안이 통과된 지난 10월25일 바그다드 중심 그린존에서 만나 회의를 벌이고 있다. 바그다드/AFP 연합

좌파 성향의 잡지 <뉴폴리틱스>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의 원대한 목표를 많이 낮추기는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목표인 석유 통제권을 확실히 굳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라크를 빠져나올 가능성은 적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의 안보연구기관인 ‘옥스퍼드 리서치 그룹’은 11월말 보고서에서 이라크전이 앞으로 수십년 동안 더 계속될 것이며, 미국과 영국군은 오랫 동안 이라크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정교한 정세 파악과 대안을 마련해 적극적인 철군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면 이라크에 있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수렁에 발목 잡힐 가능성이 큰 셈이다. 결국 현재 나오고 있는 이라크 감군 안은 미국내 정치 등을 고려한 ‘전략적 재배치’로 봐야하며, 실제로 이라크 전쟁을 끝내기 위한 철군이나 대규모 감축으로 보기는 어렵다. 7월 이후부터 미 의회 등을 중심으로 이라크군 철군론이 계속 흘러나오는 동안 이를 강하게 뿌리치던 부시 행정부가 갑자기 대규모 병력 감축 계획을 들고 나온 이유는 국내 정치가 가장 큰 이유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모두 지적하는 것처럼, 공화당 내부에서 이라크전에 발목잡혀 끝없이 추락하는 현 상태로는 내년 11월 의회 선거와 2008년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압력이 워낙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모든 이라크전 전략들이 ‘이라크전의 이라크화(Iraqization)’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관리들은 공통적으로 “이라크인들이 준비가 되면 우리는 물러난다” 즉 좀더 많은 책임을 이라크 정부와 군에 넘길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이라크 정부는 시아파 종교 색채가 강한, 현 이라크 정부는 아니다.

미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이란과 종교적, 정치적, 인적으로 가까운 현 시아파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구심은 커져 왔다. 이란과 밀착된 시아파 정권에 대한 미국과 영국 등의 거부감은 이라크 내 세속주의자들에게 눈을 돌리도록 만들고 있다. 즉, 12월15일 이라크 총선을 통해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와 아메드 찰라비가 손잡은 친미정권이 등장하리라는 희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뉴요커>는 최근 미 국무부와 CIA, 영국 총리실의 일부 관리들은 시아파 세속정치인 이야드 알라위 전 과도정부 총리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의 한 전직 고위관리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최근 알라위를 돕기 위한 소규모 공작팀을 보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고위 관리들을 두루 만난 아메드 찰라비 부총리도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알라위와 찰라비 모두 시아파이긴 하지만 세속주의적 정치인들로 후세인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정부에 협력했던 정치인들이다. 알라위는 지난해 과도정부를 이끌면서 이라크 상황을 악화시켰고, 찰라비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거짓 정보를 미국에 제공하는 등 많은 문제를 드러냈던 인물이다. 찰라비 부총리는 현재 이라크 석유 산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라크 정세의 분기점이 될 총선을 앞두고 알라위는 ‘이라크내셔널리스트’를 이끌고 자신을 시아파와 수니파 모두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찰라비 부총리는 ‘이라크국민의회’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서방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내에서는 지지보다는 비난이 더 큰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리처드 닉슨 정부에서 국방장관이었던 멜빈 레어드는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미 의회가 남베트남 정권에 대한 지원을 끊지만 않았다면,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라크전에서 이라크 정부의 역할을 늘리고 미국이 계속 지원하는 것이 미국이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전문가들은 ‘자국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는 외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 국제부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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