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13 16:46
수정 : 2018.03.13 20:53
세이브더칠드런, 요르단 캠프에서 46명 인터뷰
“내 나라는 시리아에요”
고향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없어
“여기 캠프에서 안전함 느끼지만
누군가 우릴 죽일까 겁도 나요”
시리아에선 끝모를 참상이…
아이들은 하루 걸러 한끼 먹고
학교는 3분의 1이 폭격에 파괴
“전쟁외 아무것도 모른채 자라”
“나는 여기(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태어났어요. 캠프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타레크는 2011년 시리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일곱살이 됐다. 국제구호개발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이 요르단 난민캠프에서 타레크와 동갑내기인 시리아 어린이 46명을 인터뷰해 13일 <한겨레>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은 “시리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모두 시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일곱해,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된 전쟁은 아이들의 추억을 그나마 안전한 이웃 나라 난민캠프 속에 가둬놓고 있었다.
2011년 3월15일 시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된 지 만 7년이 지났다. ‘아랍의 봄’이 일렁이던 2011년 초, 시리아 남부 데라에서 소년들이 학교 담벼락에 “당신 차례야, 의사”라는 낙서를 남길 때만 해도 이 사건이 온 나라를 집어삼키는 계기가 되리라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영국에서 유학한 의사 출신 세습 독재자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을 비판한 열다섯살 소년과 친구들의 낙서는 참화의 시발점이 됐다. 아사드 정권은 아이들을 체포해 몇주간 고문했고, 독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시민들은 3월15일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아사드는 질겼고, 반군은 분열했고, 국제사회는 무관심하거나 전략적 이해관계를 우선했다. 결국 시리아인권관측소 추산 50만명이 숨졌고, 유엔난민기구(UNHCR) 추산 560만명이 피란민으로 국외를 떠도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갓 여덟살이 된 아이들의 기억은 파편적이고 표현력도 제한적이다. 시리아 어린이들의 머릿속,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슬픔과 공포를 인터뷰 내용만으로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중 성숙해 보이는 야잔의 “시리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시리아는 내 나라예요.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린 거기 살았었어요. 캠프에서 안전함을 느끼지만 누군가 우리를 죽일까 겁도 나요”란 말 속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야잔은 아버지·할아버지와 시리아 남부에 살았으나,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와 요르단 자타리 캠프에 산다. 피란 올 때 기억도 없고, 캠프에서 “양파·마늘·채소를 많이 재배하고, 레이싱 게임을 하고, 여동생과 노는” 삶이 기억의 전부다.
2년 전 요르단 아즈라크 캠프에 도착한 알리는 또래들 중에선 ‘시리아 추억 부자’다. “시리아에서 숨바꼭질하던 기억”도 나고, 고향에서부터 알던 친구 세명도 같은 캠프에 머물고 있다. 장미농장에서 일하는 알리의 아버지는 하루에 0.7~1요르단디나르(약 746~1065원)를 번다. 부모와 삼형제가 먹고살기에 빠듯한 게 아쉽지만, 시리아에 있었더라면 삶은 더 각박했을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13일 발표한 ‘시리아 위험 지역에서 온 목소리’ 자료를 보면, 식료품 값이 치솟은 시리아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루 걸러 한번씩 밥을 먹이며 목숨을 부지하는 상황이다. 한 구호 직원은 시리아에서 “사과를 처음 봐서 사과를 두려워하는 남자아이를 만났다”고 말했다. “바나나를 껍질째 먹고, 음식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빵을 숨기는 아이”도 있었다. 한때 곡창지대였던 동구타는 최근 정부군의 공습이 집중되면서 빵 가격이 주변보다 16배나 상승했는데, 동구타의 한 교사는 “아이들이 수업 중에 배고픔으로 쓰러지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시리아에선 학교 3분의 1이 파괴됐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교육시설에 대한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1~2월에만 동구타의 학교 60곳 이상이 폭격으로 손상됐다. 난민 아이들도 절반 가까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운이 좋아 학교에 다니는 난민캠프 아이들에겐 학교가 친구들과 만나는 놀이터이고, 글과 수를 배우는 배움터이며, 안전을 느끼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나디아는 “학교에 가서 배우고 읽어요. 선생님을 좋아해요. 영어로 숫자를 셀 수도 있어요. 알파벳으로 이름과 나이 쓰는 법을 배워요. 학교에서 친구들도 사귀었어요”라고 자랑했다. 레나는 “(시리아에선) 어떤 것 아래에 숨어 있었고 공습 소리를 들었어요. 무서웠어요. (캠프에서는) 선생님한테서 안전함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헬레 토르닝슈미트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는 “300만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라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즉각적인 휴전을 이뤄내고 당사자들 간 타협의 자리를 마련해, 너무 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 폭력이 영속적으로 종식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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