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13 15:52
수정 : 2018.03.13 20:40
시리아 내전 7년, 아동을 향한 전쟁을 멈추어야
나는 시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벌써 12년 전 일이다.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 시리아는 여행자의 천국이자 낙원이었다. 나는 터키 국경에서 육로로 입국해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한동안 지냈다. 길거리처럼 햇살이 편편히 들어오는 지붕 아래 나무가 심어져 있고, 로비에 있는 테이블마다 물담배가 놓여 있는 평화로운 게스트하우스였다.
중동의 겨울은 제법 서늘했다. 거리의 간판에는 한 글자도 독해할 수 없는 아랍어가 잔뜩 쓰여있었다. 나는 여행자답게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과 노닐었다. 후세인이나 모하메드 같은 이름의 남자들이었다. 그들과 거리로 나와 아침마다 과일주스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세례자 요한의 성소가 있는 우마이야 모스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무슬림들은 끊임없이 찾아와 시간에 맞춰 기도했고, 기독교도들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의 신에게 기도했다.
가끔 근교에 있는 고대 유적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길에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아이들은 자유로웠다. 크고 신비로운 눈을 가진 아이들은 호기심에 돌아다녔고, 이방인을 보고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후세인과 모하메드와 함께 평화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나에게 재미 삼아 아랍어를 가르치며 중동의 주사위 게임을 가르쳤고, 내가 신기해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권했다. 친절하고 포근한 나라였다.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는 내게 사람들은 꼭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시리아라고 답했다. 가기 힘든 곳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순박함이, 그들의 영혼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2011년부터 대한민국 국민은 시리아 입국이 불가능해졌다. 그리워하던 그들을 12년 만에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유적과 함께였다. 최고의 문명이 남긴 유적은 산산조각 나고 후세인과 모하메드는 몰살당하고 있었다.
그 땅에서 ‘21세기 대학살’이 일어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는지는 정확히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유엔마저 집계를 포기했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전쟁은 이 문명의 땅에서 세 시간마다 아이 한 명씩을 죽였다. 내가 사랑했던 아이들이다. 게다가 시리아인 560만명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린 쿠르디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스로 밀항하던 새벽 배가 뒤집혔고, 쿠르디는 조그마한 청바지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해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지난 20년간 세계는 평화로워졌다. 이 문장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은, 참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을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최근 발행한 2018 보고서 <아동을 향한 전쟁>에 따르면, 분쟁지역에서 고통받는 아동의 수는 그 20년간 75%가 늘었다. 그 숫자는 2016년 기준으로 3억5700만명이다. 전 세계 아동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다. 그 중 절반인 1억6600만명은 하루에 세 명 이상 사망하는 심각한 분쟁지역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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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시리아 알레포에서 한 소년이 ‘시리아 어린이 죽이기를 멈추라’는 손팻말을 들고 반전 시위를 하고 있다. 아흐메드 메케이흐/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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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동을 죽이고 강간한다. 유엔 등에서 확인한 것만, 지난 12년간 최소 7만3023명의 어린이가 전쟁으로 죽거나 장애를 입었다. 같은 기간 동안 아동 성폭력은 1만7515건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절대 이 숫자가 정확하지 않으리란 점이다. 전쟁 중에 벌어진 강간을 숫자로 셀 수가 있을까. 필경 저 숫자에서 짐작할 수 없을 만큼의 수를 곱해야만 실제 성폭력을 당한 아동의 수가 될 것이다. 그 헤아림에 마음이 비통해진다. 게다가 같은 기간 동안 병사가 되어 사람을 죽여야 했던 아동도 4만9640명이며, 납치당해 강제로 결혼하거나 노예가 된 아동은 1만4327명이다.
역시 집계된 숫자만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평화를 논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진다.
대신 나는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이 그곳에서 아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모든 이들과 행동을 지지한다. 세상이 잘 알지 못하는 참혹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내가 하지 못해, 우리가 하지 못해 그들이 대신하는 일이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나는 평화를 지지한다. 부디 후세인과 모하메드와 쿠르디와 수많은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본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지독한 하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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