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15 09:08
수정 : 2018.02.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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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이 14일 정부 청사에서 사임 연설을 하고 있다. 프리토리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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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혐의 783건 등 각종 부패 의혹
집권당이 사임 결정 뒤 최후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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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이 14일 정부 청사에서 사임 연설을 하고 있다. 프리토리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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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건의 범죄 혐의 조사와 집권당의 사임 결정에도 버텨오던 제이콥 주마(75)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4일 (현지시각) 결국 사임했다. 2009년 취임한 뒤 약 9년 만이다.
주마 대통령은 이날 30분가량의 방송 연설을 통해 “남아공 대통령에서 즉각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그는 “당과 지지자들이 내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를 바란다면 수용해야만 한다”면서 “그들은 그러한 권리가 있으며 이는 헌법에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 12월 시릴 라마포사 부통령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대표에 선출된이후 조기 사임을 종용한 당의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주마 대통령의 사임은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사임 결정 최후통첩에 따른 것이다. 그는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남아공 국영텔레비전과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나에게 매우 불공평하다”며 “누구도 나에게 사퇴할 이유를 얘기해주지 않았다”며 자진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경찰이 이날 오전 주마 대통령의 부패 혐의와 관련해 그와 긴밀한 관계인 인도계 유력 재벌 굽타 일가의 자택을 수색하기도 했다.
주마가 전임인 타보 음베키에 이어 불명예 퇴진의 길로 몰리면서, 넬슨 만델라 이후 사반세기 동안 통치를 이어온 아프리카민족회의의 권위에도 쇠락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주마 대통령은 그동안 8번의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다. 온갖 부패 혐의와 추문에도 건재하다고 해서 ‘테플론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테플론은 내열성이 뛰어나고 음식이 눌어붙지 않아 프라이팬 코팅재로 쓰는 물질로, 쏟아지는 비난에도 강한 맷집을 과시하는 정치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1999년 집권한 음베키 전 대통령을 2008년 당내 권력투쟁 끝에 몰아내고 집권했다. 2014년 연임에 성공했고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으로 10년간 옥살이를 했고, 학교 교육은 못 받았지만 카리스마와 대중 친화력으로 권력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 부진과 함께 부패 스캔들이 꼬리를 물면서 줄곧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남아공은 2010년 브릭스(BRICS) 국가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신흥시장으로 주목받았으나 현재 실업률이 28%에 이른다. 그는 집권 전부터 부패와 성폭행 혐의에 시달렸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뒤 흑인 지도층에 접근하려는 사업가들한테 둘러싸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09년 첫 당선 직전에 유럽 방위산업체들한테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벗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대법원이 18개 죄목의 혐의 783건을 다시 조사하라고 결정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사택 단장에 국고를 썼다가 뱉어내기도 했다. 인도 출신 재벌 굽타일가와 유착해 그들이 국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주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 자리를 시릴 라마포사 부통령에게 내줬다. 라마포사 부통령은 당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등 ?아프리카민족회의의 통치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통령 사임을 추진해왔다. 의회는 이르면 15일이나 16일 라마포사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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