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6 14:39
수정 : 2018.01.1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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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각)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횃불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투니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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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진원지…벤 알리 몰아냈으나 실업·물가·부채 경제난
연초 증세·물가인상 담은 재정법 시행 반발…다시 혁명 기운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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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각)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횃불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투니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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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아랍의 봄’의 진원지였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맞아 다시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아랍의 봄 국가들 가운데 이례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이룬 듯 보였으나, 실업과 긴축에 이어 증세와 물가인상까지 떠안게 된 가난한 시민들이 다시 한번 반정부 시위 대열로 모여들고 있다.
아랍의 봄 7주년 기념일인 14일(현지시각), 수천명의 시민이 튀니지 수도 튀니스 중심부에 있는 하비브 부르기가 거리에 운집했다. 2011년, 튀니지를 23년간 철권통치한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를 국외도피로 물러나게 한 진앙지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불었던 아랍의 봄 기운은 이집트·리비아·시리아·예멘·바레인 등으로 퍼져나갔고 그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날 시민들은 붉은 하트가 그려진 풍선을 쥔 아이들을 데리고 승리의 역사를 기념하는 행진을 하려고 모였다. 시민들은 순식간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대로 변모했고, 결국 이날 밤은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프랑스 24>는 “아랍의 봄 이후 7년이 지났지만 튀니지에서는 여전히 혁명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빈곤·청년실업과 더불어 극빈층에게 직격탄이 되리라 우려되는 새 재정법을 지목했다. 시위 현장엔 “정부 사퇴!” “재정법 철회” “혁명을 축하하는 나라가 불타고 있다” 등 구호가 울려퍼졌다.
베지 카이드 에셉시 행정부는 1일부터 부가가치세와 사회공헌세 등 세금과 일부 물품의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재정법을 시행했다. 이 조처는 35%에 달하는 청년실업률과 10% 수준의 생필품 인플레이션으로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끓고 있던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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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정당·노조·기업인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튀니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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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수인 포우드 엘라르비(48)는 막대에 빈 바구니를 거꾸로 끼워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재정법은 튀니지의 가장 가난한 계층을 타깃으로 한다”며 “우리 경제는 이 바구니처럼 거꾸로 되어 있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주고 있으며, 바구니는 정부 재원처럼 텅 비어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매일 물가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 하지만 튀니지인들은 영민하고 그것을 방치하지 않는다. 1984년엔 빵값 인상에 저항해 시위했고, 2011년엔 벤 알리를 축출했다. 오늘 우리는 바구니(바스켓)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한 오사마 나자르(25)는 2011년 혁명이 남긴 과제를 언급했다. 그는 “오늘은 기념일이고, 우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여전히 요구해야 할 것들이 있다. 혁명은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많은 걸 줬고, 개인의 자유도 얻었다. 언론은 자유롭고, 사회도 기관들도 자유롭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자르는 교대를 졸업했고, 국가 자격고사도 통과했다. 정상적으론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하지만, 다른 많은 또래들처럼 나자르도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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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각) 튀니지 수도 튀니스 인근 에타다멘에서 열린 아랍의 봄 7주년 기념식에서 소녀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에타다멘/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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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 튀니지 국민 68%는 경제가 “매우 나쁘다”고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12월 튀니지의 국가 부채를 우려하며 “긴급 조처”와 “결단력 있는 조처”를 촉구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2015년 튀니지에 29억달러(3조862억원)의 차관을 제공했다. <뉴욕타임스>는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는 민주주의 이행을 도운 공로로 201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경제를 살리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혁명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젊은층도 많다. 정부가 벤 알리 정권 하에서 부패에 연루된 사범들을 대거 사면해 혁명 취지를 무색케 한데다, 지난 7~12일 시위에서 800여명을 체포하는 등 시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은 빨간코 광대 복장을 하고 시위에 참가했다. 법대생 라나 벤살렘(22)은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부는 우리를 트러블 메이커로 만들려고 하지만 우리가 평화적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광대 복장을 하고 여기 왔다. 우리는 사회 정의를 촉구하는 젊은 활동가고, 학생이고, 예술가”라고 말했다. 벤살렘은 “우리는 7년이나 기다렸다. 이번에 침묵을 깨려고 여기 왔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튀니지 정부와 정당들은 기념일 하루 전인 13일 긴급회의를 열어 특단의 빈곤층 지원책을 내놨다. 연초부터 이어진 시위 조짐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을 보면, 복지비 지출을 1억7000만디나르(약 745억원) 늘려 빈곤층과 중산층 25만 가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실업자에게 무료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빈곤층을 위한 주거 정책을 개혁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튿날 시위를 보면, 다시 혁명의 불을 지피기 시작한 시위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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