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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8 20:59 수정 : 2017.12.08 21:1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문서에 서명해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1993년 9월13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역사적인 중동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밀협상을 진행해 ‘오슬로 협정’으로 명명된 이 협정은 현대 중동분쟁의 시작인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오랜 염원이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 합의했다. 이스라엘과 별개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한다는 ‘2국가 해법’은 중동 평화협상의 최대 산물이었다.

합의 이행은 간단치 않았다.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될 영토 문제가 가장 난제였다.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될 서안과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에서 이 땅들을 점령하고는, 특히 서안 지구에 이스라엘 주민들을 계속 정착시켜왔다.

둘째는 예루살렘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6일전쟁에서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는 예루살렘 전체를 자신들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유엔은 일찌감치 1947년에 예루살렘을 국제특별관리지역으로 규정했고, 이곳을 국제도시로 만들자는 계획이 국제적 합의로 지켜져왔다.

원칙대로 하자면, 서안 지구 등에서 이스라엘 주민들은 철수해야 하고 예루살렘은 국제도시가 돼야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등 아랍 쪽은 현실론을 수용해줬다. 서안 지구를 이스라엘 정착촌 규모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눠서, 이스라엘 주민과 주권을 보장해줬다.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통제하는 주요 도시들인 A구역, 이스라엘이 치안을 담당하고 팔레스타인이 민정을 담당하는 B구역, 이스라엘이 완전히 통제하는 C구역으로 나눠졌다.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돼도 사실상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점점이 박힌 이상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이 장악하는 C구역이 서안 지구 전체 면적의 3분의 2가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오슬로 협정 반대 여론이 높았고, 협정을 주도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5년 극우파 유대인에게 암살됐다. 이때부터 오슬로 협정은 사실상 휴지로 변해갔다. 라빈 암살 뒤 오슬로 협정을 반대하던 강경우파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가 됐다.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정착촌 철수는 고사하고 확대에 나섰다.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행정위원회 산하 ‘예샤 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6월 현재 서안 지구 내 공식 인가된 이스라엘 정착촌은 121개이고 이스라엘 시민 38만2021명이 거주한다. 동예루살렘에는 30만명의 이스라엘 시민(아랍계 시민 포함)이 거주한다. 서안 지구 정착촌 중 아리엘은 인구 1만8천명으로 도시화되는 등 4개 정착촌이 도시 규모다.

서안 지구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둘러싼 분리장벽, 그리고 이 정착촌을 연결하는 보안도로(도로 양쪽에 장벽 설치)들이 거미줄처럼 그어져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정착촌과 이를 잇는 도로들로 완전히 분절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행태는 서안 지구에 점점이 정착촌을 알박기해서, 이를 확장해 결국 서안 지구를 이스라엘의 영토로 굳히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럼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되나? 지중해에 면한 폭 11㎞, 길이 40㎞의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을 몰아넣는 것이다. 인구 185만명에 인구밀도가 1㎢당 5046명인 가자 지구는 거대한 수용소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세워지든 말든 이스라엘은 별 상관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이스라엘의 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인정한 선언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시간을 더 벌어줄 것이다. 평화협상의 진전과 타협 가능성은 더 멀어지고, 그동안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서 정착촌을 더 확장할 것이 분명하다. 평화협상이 다시 타결돼도 그 결과는 확장된 정착촌을 인정하는 현실에 부딪힐 것이다.

중동 평화협상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조성한 현실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계속 요구하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논리도 그것이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평화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아니라 ‘가자 수용소 공화국’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정의길 국제에디터석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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