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07 16:04
수정 : 2017.12.07 22:52
|
6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이 건설한 분리장벽 위에 그려진 유대교도 모자를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습의 벽화 앞을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베들레헴/EPA 연합뉴스
|
이스라엘 무력으로 만든 ‘현실’ 인정이 해법이라는 논리
예루살렘 공유 여지 뒀으나, 이스라엘의 양보는 무망
프리드먼 “트럼프는 자기 지지층만의 대통령” 개탄
|
6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이 건설한 분리장벽 위에 그려진 유대교도 모자를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습의 벽화 앞을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베들레헴/EPA 연합뉴스
|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으로 중동 평화 해법은 더욱 험난한 미궁에 빠졌다.
트럼프는 6일 “나의 선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시작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중동 분쟁에서 가장 난제였던 예루살렘의 지위를 이스라엘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버린 이번 조처가 중동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예루살렘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관할하에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 근거를 둔다. 즉,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늘 우리는 마침내 명확한 것을 인정한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이다”라며 “평화 과정을 진전시키기 위해 오래전에 했어야 할 조처”라고 강조했다.
|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문제는 현대 중동 분쟁의 발단인 팔레스타인 분쟁이 강자인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만들어놓은 현실을 인정하는 반면 약자인 팔레스타인에는 양보만 계속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뒤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건설될 땅인 서안지구 안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확대해왔다. 정착촌 건설 때문에 오슬로 평화협정은 현재 사실상 파기된 상태다.
트럼프의 이번 선언은 그동안 국제사회가 점령지로 규정해온 동예루살렘을 사실상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고, 이것이 현실이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만들어 놓은 ‘현실’을 문제의 해법으로 수용하자는 셈이다.
트럼프는 이번 결정이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주권의 특정된 범위나, 경합 중인 국경선에 대한 결정을 포함한 최종적인 지위 문제들에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런 문제들은 관련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최종적인 지위, 영역, 주권 문제는 여전히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예루살렘을 자신들이 세울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겠다는 팔레스타인도 예루살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받은 이스라엘이 점령중인 동예루살렘을 놓고 팔레스타인과 타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에 크게 좋고, 팔레스타인도 크게 좋은” 협정 중재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지를 유보하던 ‘두 개의 국가 해법’을 “당사자들이 동의한다면” 지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는 기존 미국의 정책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오슬로 평화협정의 산물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별개 독립국가 안을 ‘조건 없이’ 지지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쪽에서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주도하는 포괄적 중동평화협정 협상이 막후에서 진전을 보고 있다고 흘리고 있다. 하지만 진전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선언으로 그 효과는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미국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했다고 비난했다.
피터 웰치 하원의원(민주당)은 “대통령은 수니 아랍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스라엘 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의 회의론자들과도 진전이 있었는데, 단 하나의 선언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고 비판했다.
친이스라엘 입장의 중동 전문 언론인인 토머스 프리드먼도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트럼프가 이스라엘로부터 하나의 양보도 미리 받지 못한 채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했다’며 “이는 중동 평화 협상에서 지렛대를 스스로 버린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프리드먼은 “미국 대외정책을 취재한 지 거의 30년인데, 아무 대가도 없이 그렇게 많은 것을 그렇게 번번이 포기하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며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자기 지지층만의 대통령일 뿐”이라고 개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